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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3권-10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281-303

by 【고동엽】 2022. 3. 2.
[처음 목차 돌아가기]
 
 

281.압록강에 빠진 쪽 복음
 
언더우드 박사와 아펜셀러 박사가 1885년에 정식 선교사로 들어 온기 전에 신교 북음은 저 북편 만주를 통해서 압록강을 건너 한국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일찍이 스코툴랜드 장로교회에서 만주에 선교사 몇 분을 파송 했습니다. 봉천에는 로스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중국에서 선교할 때에 한국 청년들이 봉천에 여행을 갔다가 그 선교사를 만나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기 시작한 유명한 얘기를 우리가 다 잘 압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꼭 사실인지는 모르나 사실이기에 이런 얘기가 생겼겠지요. 그 로스 선교사가 한국의 믿는 청년들과 같이 마가복음의 쪽 복음을 만주에서 우리말로 제일 먼저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전도를 위해서 전도 인을 시켜 이 책을 궤짝에 넣어 가지고 압록강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압록강에 와보니 우리 정부에서는 철저한 쇄국정책을 쓰던 때인지라 강변에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일체 왕래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아무리 이 책을 들여오려야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들어오지는 못하고 그만 그 책은 전부 압록강 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로스 선교사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는 마음이 좋을 리 없었지만 입맛을 몇 번 다시더니 하는 말이 “과히 상심하지 맙시다. 내 생각에는 앞으로 압록강 물을 먹는 사람들은 다 예수를 믿게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가운데도 압록강물을 마시고 예수 믿으신 분 몇 분 계실 것입니다. 사실 해방 전까지 한국의 기독교가 제일 많은 곳이 평안북도였고 평안북도 가운데 제일 많은 곳이 압록강 좌우 언덕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된 모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저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 어떻게 전파가 될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수학을 거두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해야합니다.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밝을 때도 씨를 뿌리고 어두울 때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노방전도도 계속합시다. 문서전도도 계속 합시다. 파송전도도 계속합시다. 우리 개인 전도에도 특별히 힘을 씁시다.   <응보의 세계>에서

 

 
 




282.‘웨스트민스터 아벨’ 예배당
 
몇 해전에 제가 영국 런던에 잠시 머물렀을 때에 영국에서 유명한 예배당인 웨스트민스터 아벨이라고 하는 오래되고 유명한 예배당을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중세시대에 아주 훌륭하게 지은 예배당입니다. 또한 영국 역대의 유명한 왕들, 정치가, 목사, 문학가 등 여러 위대한 분들의 무덤이 전부 이 예배당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상하게 생각되실 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 예배당에 들어가면 돌담에다 전부 이름을 새겼는데 그 속에는 이미 세상 떠난 유해가 다 있습니다. 거기의 마루에도 거의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 이름 안에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던 이들의 유해가 마루 아래에 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  하시는 말씀이“우리 영국 풍습은 이상합니다 유명해지면 죽은 다음에 여러 사람이 밝고 다닙니다.”사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기 보면 영국의 유명한 이들의 무덤을 다 볼 수 잇는데 이 무덤 저 무덤을 구경하다가 제 마음 가운데 무슨 생각이 났느냐 하면 아프리카에 가서 개척 선교를 했던 리빙스턴이라는 선교사의 유해가 어디 묻혔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안내하는 이에게 물으니 오른쪽 복도를 가리려 주었습니다. 가보니 흰 대리석을 마루에 놓았는데 거기“데이비드 리빙스턴”이라 쓰고 그 아래 생년월일, 별세 연월일을 쓰고 성경구절을 하나 새겨 놓았습니다.
“또 이 우리 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리빙스턴은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이 우리 에 들지 않은, 영락교회라고 하는 교회 울타리 안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다른 양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양들을 인도하시기 원하십니다.
필경 아프리카 대륙에도 이 주님의 다른 양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나는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에 가겠다” 이 성경 구절이 그 일생의 운명을, 사명을 확정한 성경 구절이라고 해서 그의 무덤 위에다 새긴 것입니다. <주님의 다른 양들>에서

 

 
 


                                               
283.하나님의 신임 



충성된 사람은 역경에서 더 충성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쉬울 때에는 우리가 충성 된지 충성되지 않은지 알 수 없습니다. 역경을 당할 때에 우리의 참된 충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몇 해 전에 학생들 앞에서도 얘기했지마는 다시 소개합니다.

 

 
 




284.  5 달러 짜리 충성


자기의 일생에 대한 경험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사람의 책을 보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소년 때 자기 이웃에 큰 부자가 사는데 그 부잣집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그것을 잘 가꾸는 그런 집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부잣집의 여주인이 와서 하는 말이“얘 ! 너 우리 잔디 좀 깎아보지 않겠니? 내가 생각해서 보수를 주마”
그래서 그 소년은 기계를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잔디를 깎았습니다. 그 때 그 여주인이  와서, “오 ! 너 잔디를 잘 깎았는데 1달러밖에는 안 되겠구나”
하며 1달러를 주었습니다. 그 후 한 일주일이 지난 다음 그 여주인은 다시 그 소년을 불러서,
  “얘 ! 오늘 너 다시 우리 잔디를 좀 깍지 않으련? 지난번보다 좀 더 잘 깎아보아라”
소년은 다시 기쁜 마음으로 전주일 보다 좀더 잘 깎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잣집 여주인은,
  “오 ! 수고했어, 지난주보다는 좀 좋아졌어, 그러나 2달러밖에는 줄 수 없어”
 하면서 2달러를 주었습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났을 떼에 그 여주인은 다시 그 소년을 부르더니,“얘 ! 오늘 너 우리 잔디 좀 또 깎아 보시 않으련? 아주 너희 성의를 다해서 열심히 깎아보렴, 얼마나 잘 깎는지 한 번 보고 싶어”
이번에 그 소년은 자기 마음을 다하여 성실히 충성되게 잘 깎았습니다. 긴 풀이 하나도 없이 다 깎고 큰 가지가 나온 것은 찾아서 낫으로 깎고 잘 다듬었습니다. 훌륭하게 잘 깎습니다. 그 집의 여주인 와서 보고는 기쁜 얼굴을 하며 5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 이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1달러 짜리, 2달러 짜리 일하지 말고 5달러 받을 수 있도록 일하여라”
여주인이 그 소년에게 한 이 말이 항상 마음에 기억이 되어, 그 소년은 언제든지 자기가 맡은 일은 내가 1달러, 2달러, 5달러 짜리로 일할 수 있는데 언제든지 나는 5달러 짜리로 일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두말 할 것 없이 후에 크게 성공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는 성직을, 국가에는 국가의 모든 책임을, 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책임을 다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우리를 신임하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수 있기에 맡깁니다. 충성 되이 하겠기에 맡깁니다
  요컨대 우리가 이것을 맡아서 1달러 짜리만큼 감당할 수도 있고, 2달러 짜리만큼 감당할 수도 있고 5달러 짜리만큼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임을 배신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신임>에서

 

 
 




285.그리스도인의 품격(절제)


우리 몸 안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본능이 잇습니다. 이 욕망과 본능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절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을 근거로 하는 여러 가지 시험이 내 속에서 솟아날 때 이것들을 이겨야 합니다. 이것을 잊으려고 하면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억하실 줄 압니다만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 1장 5절에 그리스도인의 품격의 요소를 열거할 때에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286.검은 말과 흰 말


옛날 헬라 사람들이 인간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덕을 말할 때에, 절제를 말한 사실은 제가 이미 말씀 드렸을 것입니다. 옛날 헬라 사람들이 아덴에 있는 청년들에게 특별히 항상 권한 말씀은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 말씀입니다.
하나는“네 자신을 알라”하는 권면(勸勉)입니다. 이것은 절제입니다. 전에 플라톤이라고 하는 철학자는 인간생활이란“검은 말과 흰 말, 두 말이 끄는 한 수레와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흰말은 이성을 의미했고 검은 말은 욕망이나 본능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레가 넘어지지 않고 바로 가려고 하면 흰말이 수레를 어거(馭車)해서 나가게 해야지 검은 말에게 맡기면 수레가 아주 외딴 데로 떨어져서 부서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절제를 의미합니다. 

 

 
 

 
 
287.군자 유 삼 계’


우리 동양의 위대한 성현 공자께서도‘군자 유삼계’(君子有三戒)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고 우리에게 교훈 하여 주었습니다.‘소지시에는 혈기미정이라 계지재색(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하라. 젊었을 때에는 혈기가 미정한 때인데 색에 특별히 경계하라고 하였습니다.‘급기장야 혈기방강 계지재투’(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라 즉 커서 장년이 된 후에는 혈기가 아주 강한 때인데 싸움하는데 경계하라고‘급기노야 혈기기쇠 계지재득’(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하라고 나이가 들면 혈기가 쇠한 때인데 그 떼는 욕심이 많아지니 얻는 것에 주의하라고 우리에게 경계했습니다.
그 말씀도 한 마디로 말하면 절제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여기 보면 모든 일에 절제를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먹는 데, 입는 일에, 쓰는 일에, 거처에, 모든 욕망, 모든 본능을 잘 다스려서 절제의 생활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이 적절합니다.

 

 
 




288.술에 대한 속담


제가 여러 나라의 술에 대한 속담을 모아 놓은 것을 잠깐 보았는데 이런 속담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번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물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더라”독일의 속담입니다.“인간의 두뇌에 알코올을 붓는 것은 기계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으니라”미국의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의 격언입니다.“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느니라”이것은 중국 사람의 격언입니다.
“술은 악마의 피니라”서반아 사람의 격언입니다.“술상이 길면 목숨이 짧아지느니라”불란서 사람의 속담입니다.“앞문으로 술이 들어가면 뒷문으로 지혜는 달아나느니라”이태리 사람의 속담입니다. “술 먹는 개”이것은 한국사람의 속담입니다. 속담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결과를 보고 자연히 그런 속담이 생기는 것입니다.

 

 
 




289.《탈무드》의 포도주 이야기


유대 사람들은 구약 이후에《탈무드》라는 책을 읽습니다. 구약 이후의 위대한 랍비들의  교훈 집입니다. 거기에 무슨 얘기가 잇느냐 하면 옛날 노아가 처음으로 포도 원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포도 원을 만들고 포도를 심을 때에, 악한 마귀가 밤에 와서 양의 피와 사자의 피와 돼지의 피와 원숭이의 피를 비료로 주고 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포도나무는 잘 되었을 것입니다. 포도가 많이 열리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 포도에서 나는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마다 처음에는 양과 같이 순해지고 좀더 마시면 사자와 같이 포악해지고 좀더 마시면 돼지처럼 미련해지고 그리고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별별 것은 다한다고 합니다. 술 얘기가 나오면 술 먹는 게 죄인가? 라고 다 얘기하지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술 먹는다고 그것은 죄가 아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술이 백 죄의 어머니가 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290.‘나의 사인(死因)은 담배’


술 먹는 얘기하면 담배도 생각나요.
여기에 대해서 한 가지 얘기만 하고 지나갑니다. 여러분도 아마 다 읽어보았을 거 에요. 며칠 전 신문에 보니까 미국의 어떤 신문기자 마크 월러스라고 하는 분이 자기가 죽기 전에 자기 죽음에 대한 기사를 다 써놓고 죽었습니다. 그 기자는 매우 똑똑한 기자입니다. 그 제목은 무엇이냐 하면‘나의 사인(死因)은 담배다’였습니다, 자기 얘기를 썼는데“나는 열 네 살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하루에 두 갑씩 42년을 피웠는데 결국은 폐암이 생겨서 나는 죽노라”이런 기사를 죽기 전에 써놓고 죽었습니다.

 

 
 




291.퀘이커 교회 창립자


퀘이커 교회를 창립한 죠지 폭스는 본래는 어떤 구둣방의 직공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친구와 함께 술집에 가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한두 잔 마시니 취했습니다. 서로 많이 마시기 내기를 합니다. 그리고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누구든지 돌아가면서 자꾸 마시다가 못 마시는 사람이 그날 저녁 술값을 다 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쯤 돌아가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합니다. 있던 돈을 다 내놓으면서,“나에게 가진 것이 이것뿐이니 이거나 받아라, 미안하지만은 나는 먼저 가겠다”하고는 돌아왔습니다. 어두운 거리를 혼자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이런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그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너 죠지 폭스야 보지 않느냐?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다 방탕으로 내려가고 늙은 사람은 다 흙으로 내려간다. 성결한 생활을 하라”그날 저녁에 완전히 회개하였습니다.
  성 어거스틴을 회계시킨 유명한 성경 구절인 로마서 13장 12절 이하에“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절제>에서

 

 
 


                                                 
292.정신적 자세 



경관들의 아주 필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는 우리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각종 범죄자를 잡아내어 양민으로 하여금 안도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일이야 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없으며 또한 위험하기도 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범죄자에 대하여서도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사실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죄는 미워하나 사람은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많은 범죄자들은 사실상 정신적 환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범죄자들에 대하여도 공의와 자비가 같이 수반될 때 옳게 처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까지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죄인을 그 죄대로 처치하여 벌을 줄뿐더러  그 벌을 통하여 죄인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는 때는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곧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민주경찰의 정신적 자세>에서

 

 
 




293. 민주주의 교육
 
다수민족이 혼합하여 한 국가를 형성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민족주의 교육이란 말은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레이지즘(Racism) 이라고 하여 민족 관념은 가급적 기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다릅니다. 한국은 단일 민족으로 형성된 국가입니다. 우리는 또한 단일 민족으로서의 언어와 풍속과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래의 미풍양속과 고유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점을 보전하며 또한 계속하여 발전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은 강대국들의 사이에 끼어서 종종 민족적 수난을 당하였고 때로는 외국 민족의 압박 아래서 신음한 쓰라린 경험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겨레는 민족이 곧 국가요, 국가가 곧 우리 단일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 하나 하나가 이 민족의 얼을 철저히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으로써 세계에 공헌할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 고귀한 민족주의가 잘못하면 불건전한 방향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가령 민족 차별주의, 타민족 배타주의, 민족우상화, 지상주의 등, 독일의 히틀러 나찌스주의는 독일 민족 지상주의였습니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독일 민족 이외에 다른 모든 민족을 천시하여 바로 이런 그릇된 민족주의 아래에서 유대인 6백만 명을 개스 챔버에서 독살하는 잔인한 일도 감행하였습니다. 어디서 소위 민족 지상주의 혹은 국가 지상주의가 옵니까? 왜 민족을 우상화하며 국가를 우상화합니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이들에게 옳은 종교적 신앙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제1조에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절대 이시요 지상이십니다.
개인도 민족도 국가도 모두 하나님 아래서 하나님의 지배와 권고와 축복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개인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어떤 민족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민족을 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신앙을 가진 이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기를 힘쓰며, 민족의 권익과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또 다른 민족의 권익과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민족주의를 건전히 지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건전한 민족주의의 정신적 배경이 됩니다.

 

 
 




294. 청교도의 기념탑


1620년에 청교도 120명이 메이풀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거 칠은 대서양을 건너 북미 대륙 플리머스라는 해안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들 청교도 120명 이야말로 오늘의 미국의 기초를 닦은 국보들입니다. 지금 플리머스 해안에 가 보면 그들이 처음으로 발을 디딘 바위에 유명한 기념탑(Monument)이 세워져 잇습니다. 그 탑을 자세히 보면 높은 대 위에 네 사람이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자유의 상징이요, 한 사람은 법의 상징이요, 한 사람은 도덕의 상징이요, 또 한 사람은 교육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 네 사람 위에 다른 대가 하나 더 있어 그 위에는 한 여자가 한 손에는 성경을 펴서 들었고 한 손은 높이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은 이 기념탑의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민주국가를 이룩하기 위 하여는 자유, 도덕, 법,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는 성경을 기초로 하는 거룩한 종교가 필요합니다. 이 종교가 곧 기독교입니다. <민족교육과 기독교>에서

 

 
 




295.캐리의 유명한 말
 
영적 저수지에는 생명수가 한없이 있어서 믿음의 그릇은 자유로이 그 생명수를 떠 마실 수 잇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인도의 첫 선교사로 나왔던 캐리의 유명한 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믿음이 없으면 하늘 나라의 일을 못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였습니다. 위대한 신앙만이 위대한 하나님을 옳게 섬기는 것입니다.  <위대한 비전, 믿음, 사랑>에서

 

 
 




296.바람직한 복음운동


복음운동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 마음속에 이 생명수가 충만한 생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또한 말씀하시기를“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으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충만한 성령 곧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화평(和平)이 충만한 신앙생활은 복음전파의 전제 조건이 됩니다.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충만하면 벌과 나비는 자연히 날아듭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역시 인간을 끄는 힘이 있습니다. 진액(津液)이 풍족한 좋은 나무는 많은 열매를 맸습니다. 

 

 
 




297.성 프랜시스의 산 설교
 
일찍이 성 프랜시스가 하루아침에 제자들과 같이 앗시스 거리를 한 번 돌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후 한 제자가 묻기를“선생님 왜 오늘 아침은 아무에게도 전도를 하지 않고 그저 돌아오셨습니까? ”하였습니다. 그 때에 성 프랜시스는“우리의 걸음걸이와 일생생활이 산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의미신장한 말입니다. 우리의 성품, 생활자체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무언중에 복음전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수 곧 성령을 충만히 받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298.복음의 빛


옛날부터 복음 전파는 먼저 내 가족 그리고 내 친척, 그리고 내 이웃 또는 내 친구들에게 전하여진 것입니다. 무언중에 반드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크리스천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침묵의 크리스천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사무친 것은 입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우리는 입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하고 내게 가까이 있는 이들을 먼저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합니다.
일찍이 들으니 어떤 사장이 자기는 교회의 장로요 또 물론 매주일 교회에 나갔으나 자기비서에게 여러 가지 일을 의논하면서 한 번도 그에게 교회 출석 여부를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주일은 설교를 통하여 전도의 사명을 깨닫고 결심하기를 앞으로 우선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전도하기로 결심을 하고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제일 먼저 만나는 이에게 전도를 하려고 기다리던 때에 자기 비서가 들어오니 제일 먼저 하는 말이“자네, 교회에 나가는가?”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비서가 눈이 둥글 하여지며 “사장님, 이거 웬일입니까! 사실 저도 교회에 다닐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으나 사장님이 말씀이 없는데 감히 먼저 말하기가 두려워서 지금까지 못하였습니다.”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사장은 없습니까? 가까운 이들에게 사업에 관한 일은 또는 세상의 모든 일은 이야기하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해서만은 아무 말이 없는 이는 없습니까?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빚진 자이지만 나와 가깝고 잘 접촉하는 이들에게 이 복음의 빚이 가장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실업인의 바람직한 복음 운동>에서 

 

 
 


 
299.전도 설교     
 
몇 해 전에 제가 우리 교회 첫 예배를 마치고 정문에서 나가는 교우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나는 시내 어느 교회의 장로인데 내 친구를 교회로 인도하기 위하여 늘 같이 첫 예배를 옵니다”하면서 옆에 섯는 자기 친구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이제 이 친구가 영락교회에서 학습도 서고 세례를 받은 후에는 저의 교회로 데리고 가겠습니다.”하였습니다. 그래서 좋다고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한마디 물었습니다.“그러면 왜 처음부터 장로님 교회로 모시지 않습니까?”하였습니다. 그 때 그 장로님 말씀은“아닙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새로운 교인을 위 하여는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하였습니다.
목사님들 자세히 들으십시오. 전도를 목사들의 최고사명으로 여긴다면 왜 전도 설교를 하지 않습니까! 또 심방도 그렇습니다. 사실 심방도 언제나 전도를 중심으로 하여야 합니다. 더욱이 여러분 교회의 예산을 자세히 검토하여 보십시오. 교회의 최고 사명은 전도인데 전도에 대한 예산이 전 예산액의 몇 할이나 되는 가?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전도를 중심 한 교회라고 하면 특별히 교회학교와 학생 및 청년 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선교하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이렇게 첫째는 전도의 강한 부채감, 둘째는 전도의 넓은 비전, 셋째는 교회의 모든 일에 있어서 전도 우선 주의를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자>에서

 

 
 




300.고당 선생의 신앙결단


고당 선생은 1882년 평양 성안의 한 선비였던 조경학 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래 고당 선대는 평안남도 감서군에서 살았습니다. 그 부친은 한학자로서 당시에 이름이 있었으며 생활은 유족한 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5세까지 한학을 전공하였고 또 16세부터는 상업의 경험을 얻기 위하여 포목상과 지물포를 경영하는 한 청년 실업가였습니다.
그 동안 평양에서 날파람동이로 유명하였으며 또한 술 잘 먹기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모친은 종종 술을 끊기를 권면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23세 되던 해에 어떤 분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후에는 곧 금주와 단연(斷煙)을 단행하였습니다

듣는 말에 의하건대 그는 어느 저녁에 그의 술친구를 다 모아 놓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즐긴 후에 가장 엄숙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고 합니다.“나는 지금까지 당신들의 친구로 지내왔지마는 이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였소. 그러므로 나는 오늘 저녁까지 이 생활을 마치고 다음 날부터는 온전히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겠소”이렇게 선언한 후에 그는 단연히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의 기독교학교인 숭실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 때 숭실학교에서는 학생의 연령 제한이 없던 때입니다. 그래서 5년간 공부를 한 후에 숭실 중학교를 마치고 곧 일본 가서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는 그 동안 철저한 신앙생활로서 모든 학생과 청년들에게 모법이 되었습니다. 일본 재학 시절에는 재일 한국 기독교회를 설립하는 데 한 중심 인물이 되었으며 사실 영수(領袖)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구 한국의 국운이 날로 기우러지는 때로서 그는 청년 애국자로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어떻게 하면 민족부흥을 이를 수가 있을까 하는 문제로 그 머리에는 항상 깊은 사려가 있었습니다.

 

 
 




301.고당 선생의 민족 사상


동경에서 학업을 마친 후에 본국에 돌아오자 당시 애국자요 또한 기독교 신자인 남강 이 승훈 선생의 교훈을 받아 정주 오산 학교의 교사로 부임케 되었습니다. 들은즉 고당 선생은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흔히 입던 양복을 벗어놓고 한복으로 갈아입었으며 서양식 모자도 벗어놓고 갓을 썼으며 구두도 벗고 갓 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이런 결단의 배후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하나는 나라는 힘을 잃었으나 자기는 철두철미 한국사람으로 서겠다는 애국애족의 정신이요, 또 하나는 무엇이든지 근검절약 할 뿐더러 자작 자급한다는 정신이었습니다.
고당 선생은 학교에 온지 2년 후에 곧 교장으로 취임되었는데 저는 1916년 고당 선생이 취임한 다음 해부터 그 학교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잘 기억이 됩니다. 언제나 무명두루마기를 입었으며 아침에는 소금으로 반드시 이를 덖고 심지어 비누도 쓰지 않고 옛날부터 팥가루로 비누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는 교장인 동시에 사감이요, 또 지금으로 말하면 교목도 겸한 샘입니다. 그때 그 분은 가족은 평양에 두고 기숙사에서 유숙하였으며 기거일체를 학생과 같이 하였습니다. 듣는 바에 의하면 그때 선생께서는 봉급은 한푼도 받지 아니하시고 전혀 무보수로 학교에 봉사하였습니다.

 

 
 




302. 고당 선생의 실천 교육


당시 오산의 교육은 지금의 사관 학교와 비슷한 철저한 기독교적 민족교육이었습니다. 근처에 사는 학생 외에는 전부 기숙사에 유하였으며 아침 6시에 기상 종과 같이 선생과 학생은 일제히 일어나 운동장에 나가서 체조를 하였고 또 뒷산을 구보로 뛰어 한 바퀴 돌아오곤 하였는데 고당 선생도 꼭 같이 행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방 청소와 정돈을 하였고 조반 후에는 곧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매일 먼저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도회는 언제나 교장 자신이 주재하였으며 또 설교도 하였습니다. 이따금 남강 선생께서 오셔서 설교하신 적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기숙사 각방에서 복습을 하였습니다. 그 때도 교장선생께서는 문 밖으로 조용히 다니면서 공부하는 형편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저녁 10시에는 반드시 소등을 하고 취침하였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청소부가 따로 없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을 조직하여 청소와 수리와 모든 것을 담당케 하였습니다. 가을이 되면 제석산에 가서 오리나무를 찍어 학생들과 직원들이 메어다가 패서 난로에 불을 넣었는데 고당 선생도 언제나 학생들과 꼭 같이 일을 하였습니다.
  고당 선생이 담임한 과목은 내 기억으로는 지리었습니다. 나는 선생께서 사도행전을 공부하였는데 그때 배운 사도행전의 내용을 지금도 많이 기억합니다. 지리도 역시 철저하게 잘 가르치셨습니다. 그리하여 선생이 교육방침은 철저한 기독교 신앙으로서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며 학문과 지식을 배워서 민족중흥에 헌신할 수 있는 애국자를 양성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교실에서 말만의 교육이 아니고 그의 실지 생활로서 모법을 보여 주는 실천교육이었으며 또 학생과 전 생활을 하여 다시 말하면 하루 24시간의 교육이었습니다.

 

 
 




303.고당 선생의 민족부흥의 환상


나는 일생동안에 여러 교수들에게 배웠으나 학생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실지로 모범을 보여 주며 그 전 생애를 희생한 교육가는 오직 고당 한 분이라고 기억합니다.
그 후 그는 3·1운동으로 부득이 오산을 떠나게 되었으나, 그 후 다시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지만 악랄한 일본 당국의 압력으로 아깝게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그분은 평양에 오셔서 기독교 청년회 총무(모두 무보수)로도 수고하였으며, 숭실대학 강사가 되었으나 이것도 일본 당국의 압력으로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설립하고 그 교장으로 취임하기를 모두 원하였으나 이것 역시 일제 압력 아래에서 실현되지 못하였고 다만 이사장으로서 학교를 경영하여 나갔습니다.        
고당 선생은 민족부흥의 환상을 보면서 항상 세 가지를 힘썼습니다.
  첫째는, 이미 말한 교육방법이요,
  둘째는, 근검절약하고 자작 자급하여 경제를 부흥케 하는 물산(物産) 장려 운동이요.
  셋째는,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여 체육에 깊은 관심을 두고 관서 체육회의 회장으로서 언제나 이 방면에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양에 계실 때에는 고아원, 도서관, 백 선생기념관등 여러 공공의 사회시설을 통하여 사회복지와 문화증진에 헌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동안에 조선일보사 사장으로 언론계에 헌신한 적도 있었습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의 장로로서 전(全) 평양교회를 지도하였으며 당시 산정현 교회의 목사는 일찍이 오산에서 자기에게 배운 그리고 신사참배 강요시대에 순교자 중의 하나인 주기철  목사님이었습니다.
실로 고당 선생은 애국 애족의 지사이며 민족중흥의 선구자이며 체육, 언론, 사회, 문화, 각 방면의 지도자였으며, 해방 후에는 반공투사로서 그 최후를 마친 것은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민족의 암흑기에 있어서 혜성과 같이 이러한 지도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당 조 만식 선생은 실로 신앙심과 애국심의 화신이었습니다. <고당 선생의 신앙과 민족교육>에서

韓景職牧師 年譜
1902.12.29 평안남도 평원군 공동면 간리에서 태어나다.
1917~22  오산(五山)학교에서 남강 이승훈 선생과 고당 조만식 선생으로부터 민족교육과 신앙훈련을 받다.
1922~25   숭실전문(崇實專門) 이과(理科)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다.
1924   여름 구미포 해변에서 거닐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주의 종이 되어 민족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다.
1925~26   엠포리아 대학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하다.
1926~29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학과정을 마치다.
1929~31   뉴멕시코주 알바컬키에서 요양하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요양하다.
1932      귀국하여 숭인상업학교와 숭실대학에서 가르치다.
1933~42  신의주 제2교회를 시무하다.
1942~45  보린원 원장으로 일하다.
1945     월남하여 다시 고아들을 위한「보린원」을 운영하며 조선 신학교에서 가르치며 벧아니 교회(영락교회 전신)를 세우다.
1945~73  영락교회를 27년간 시무하다.
1948     미국 엠포리아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다.
1954~57  숭실대학장직을 맡다.
1955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0회 총회장직을 맡다.
1956     한국 기독교연합회장직을 맡다.
1970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다.
1973  서울 영락교회 원로목사(元老牧師)로 추대되다.
1973     아세아 교회진흥원장직을 맡다.
1982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총재직을 맡다.
2000.4.19 돌아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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