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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목양 단상[1,073]〓/영성 사색단상

성가대의 역사

by 【고동엽】 2022. 2. 24.

성가대의 역사

 

 

1. 성경적 배경

 

성가대란 예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조직된 노래(연주)하는 집단이다. 구약시대의 성별된 성가대는 음악적으로나 영적으로 첨병(尖兵)에 해당하는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구약성경에는 성가대의 기원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의 성경구절들은 성가대의 임명, 구성, 자격, 임무, 그리고 필요성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역대상(6:31-48)에는 다윗이 레위인들을 세워 성전에서 찬양하는 자들로 임명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 당시 성전예배에서 찬양의 직무를 행한 인물은 헤만(33), 아삽(39), 그리고 에단(44)이었다.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대상 6:31-32)

 

역대상(16:4-7)에는 다윗과 백성들이 언약궤를 성막에 안치한 후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감사찬송을 드린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그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역대상(23:3-6)에는 레위 자손의 구분과 임무에 대하여 언급하며, 사천명의 성가대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였으니 모든 남자의 명수가 삼만 팔천인데 그 중에 이만 사천은 여호와의 전 사무를 보살피는 자요 육천은 유사와 재판관이요 사천은 문지기요 사천은 다윗의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라 다윗이 레위의 아들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의 각 족속을 따라 그 반열을 나누었더라. "

 

역대상(25:1-7)에는 성전의 기능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조직되어 있던 성가대를 보다 체계적인 24반열로 조직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윗이 군대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아삽의 아들 중 삭굴과 요셉과 느다냐와 아사렐라니 이 아삽의 아들들이 아삽의 수하에 속하여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두둔에게 이르러는 그 아들 그달리야와 스리와 여사야와 하사바와 맛디디야 여섯 사람이니 그 아비 여두둔의 수하에 속하여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헤만에게 이르러는 그 아들 북기야와 맛다냐와 웃시엘과 스브엘과 여리못과 하나냐와 하나니와 엘리아다와 깃달디와 로암디에셀과 요스브가사와 말로디와 호딜과 마하시옷이라 이는 다 헤만의 아들들이니 나팔을 부는 자며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 하나님이 헤만에게 열네 아들과 세 딸을 주셨더라 이들이 다 그 아비의 수하에 속하여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아 여호와 하나님의 전에서 노래하여 섬겼으며 아삽과 여두둔과 헤만은 왕의 수하에 속하였으니 저희와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인이라. "

 

역대하(5:12-14)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성가대와 악기를 연주하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여호와께 찬양과 감사를 드린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파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 부는 자와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역대하(29:25-30)에는 히스기야 왕이 성전을 청결케 한 후 성전에서 시행되던 각종 제사를 재개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왕이 레위 사람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의 명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하셨음이라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히스기야가 명하여 번제를 단에 드릴 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온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 항께 있는 자가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로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저회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니라."

 

느헤미야(12:40-43)에서는 재건한 예루살렘 성곽을 봉헌하는 예배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두 성가대가 교송하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와 나와 민장의 절반은 하나님의 전에 섰고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이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신약성경에는 성가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없이 찬양의 종류와 방법 등에 관한 지적이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다. 신약시대에서 보여주는 성가대의 찬양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적 역할이 아니라, 회중 속에서 성가대의 역할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역사적 배경

 

성가대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중세시대부터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 예전의 영향이 컸다. 서방 교회 예배역사의 두번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주후500-900년은 로마 예배의식 (the Reman Rite)과 갈리칸 예배의식(the Gallican Rite)이 발달한 시기이다. 예전이 발달 함에 따라서 자연적으로 교회에서 노래하는 집단 즉, 성가대의 출현과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중세시대의 성가대는 남성으로만 구성되었으며 높은 음역의 노래를 위하여 소년들도 성가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배의식을 통일하는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은 그레고리 교황(Gregory the Great, 540-604)이다. 그레고리 교황은 "스콜라 칸토룸" (Schola Cantorum 성가대, 후에는 성경학교의 뜻)의 교육을 강화하여 그곳에서 통일된 의식을 가르쳤다. 그는 라테라노와 성 베드로교황 성당 옆에 성직자들의 공동생활을 위한 숙소와 성가대원 양성을 위한 고아원도 지었다. "스콜라 칸토룸"은 그레고리 교황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590년에는 이미 가수들의 조합이 결성 되었던 시기였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중세시대는 특별히 교육받은 성가대 집단의 발생과 구약시대의 제사 개념에 의한 사제들의 음악목회를 특징으로 한다.

 

사실상 중세시대의 성가대 제도는 18세기까지 큰 변화 없이 계속되었다. 현대 성가대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혼성 성가대는 18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West Gallery Tradition"이라는 것이 18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이 전통의 중요한 의미는 첫째, 여성이 성가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과 둘째, 성가대는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성가대는 미국에서 청교도들이 몰고온 "역사적으로 균형 잡히지 않은 음악 문화에 대한 염증" 때문에 시련을 받았지만 그 후 현저한 발달을 가져왔다.

 

뉴욕에 있는 삼위일체 영국 교회는 1693년 성가대원과 오르간 반주자를 영국에서 초청하여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성가대를 조직하였다. 1774년 메사추세스주의 스타우톤에서 빌링스(William Billings 1746-1800)에 의하여 최초로 성가학교(Sacred Singing School)가 설립되었다. 그때 창단된 성가대는 남성 17명과 여성 31명으로 구성된 혼성 성가대였다.

 

19세기에는 메이슨(Lowell Mason, 1792-1872)에 의하여 가창(singing)이 공립학교의 교과목으로 소개되었고, 보스톤 음악협회(the Boston Academy of Music)가 창립되어 성가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음악 활동이 이루어졌다. 메이슨의 제자인 브래드버리(William Bradbury, 1816-1868)는 뉴욕의 침례교도 예배소(the Baptist Tabernacle)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봉사하며 성가음악에 공헌했다.

 

19세기 후반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전문적인 성가대의 가창 인도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것이 혼성 4중창단(the Mixed Quartet)이다. 이 혼성 중창단은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첫째, 성가대와 같이 노래함으로써 자원 성가대원들을 노래로써 돕는 것이고 둘째, 성가대를 대신하여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성가대 음악의 질적 수준이 향상되었으며, 성가대에 독창자를 두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성가합창을 강조한 웨스트민스터 성가학교 등으로부터 본격적인 음악목회 사역의 개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출처 : 주와함께
글쓴이 : jjbb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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