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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신비로움! (엡 5:22-25)

by 【고동엽】 2022. 1. 27.

만남의 신비로움! (엡 5:22-25)


가을은 다른 계절보다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교훈을 주는 그런 계절입니다. 우선 가을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쓸쓸해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어수선해지고 어딘지 모르게 공하하고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만나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집니다. 외로운 삶은 더욱 외로워지는 그런 계절이 가을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계절에 짝을 만나고 만난 짝들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룹니다. 그래서 이 가을은 만남의 계절이고 허니문의 계절입니다.
결혼 하면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만남의 신비로움'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부부가 되어 산다는 것은 그곳에 신비로움과 굉장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의 만남 속에는 신비함까지 들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 신비로움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경륜성"입니다

세상에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길거리마다 차고 넘치는 것이 젊은이들입니다. 그러데 그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하필이면 그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 여러분 한번 깊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얼마나 기적 같은 일입니까? 생각해 보면 바로 거기에 신비함이 들어 있고 오묘한 하나님의 경륜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는 이 같은 만남의 신비로움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가면서 쓸데없는 일로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원망하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부부의 관계 속에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결혼하는 젊은 이들을 보면서 "대단한 용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결혼을 했읍니다만 결혼하는 두 젊은이에게 서약을 하면서 "평생을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하겠느냐"하고 물으면 누구 하나 주저하는 일이 없이 "예"하고 대답을 합니다. 얼마나 용기 있는 대답입니까? 1,2년도 아니고 감히 일평생을 두 사람이 함께 사랑하며 살겠다고 주저하지 않고 대답을 합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이것이 바로 신비라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하고도 함께 살기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불화가 많은 시대입니다. 그런데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끼리 만나서 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주저함 없이 대답을 하니 얼마나 믿음 있는 행동입니까? 이 믿음도 알고 보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입니다. 하늘이 주신 마음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한 일이고 오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느끼는 신비로움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부부가 되겠다고 서 있는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상대를 골랐는지 누가 더 낫고 누가 처지고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어쩌면 그렇게 자기하고 똑같은 짝을 찾았는지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생각 없이 그냥 살면 어떤 일에서도 깊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신비함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거기에 신비한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살면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게 되고, 느끼게 되고,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장 이상적으로 만난 부부가 있습니다. 바로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입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참 이상적인 만남입니다. 성경을 보면 일생을 아주 깨끗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부부로 일생을 살아간 사람은 바로

이삭과 리브가입니다. 이삭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심성이 아주 착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은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하고 신앙이 깊은 그런 사람으로 나옵니다. 이삭이 소년일 때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해서 아들을 데리고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산으로 갑니다.
산에 가서 제단을 쌓아 놓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고 결박해 놓고는 칼을 빼 듭니다. 우리는 그때 이삭이 꼼짝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주일학교 때 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때 이삭의 나이가 25세이고, 아버지의 나이는 125세입니다. 이삭은 가장 힘이 왕성했을 때입니다. 스스로 자기 방어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때입니다.
그때 이삭이 다 늙어서 힘이 없는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가면 그만입니다. 힘이 없어서 그냥 아버지에게 죽으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끝까지 순종합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 하니까 죽기 위해서 가만히 있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거기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지금 내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경륜이다 하고 판단되니까 자신이 재물 됨을 스스로 용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순종의 자세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젊은이의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고 그 신앙심이 얼마나 깊다는 말입니까? 오늘의 젊은이들과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가능한 일입니까?

그것은 리브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의 종이라는 사람이 와서 자기가 이곳까지 오게 된 동기를 자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데리고 가야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다 듣고 난 리브가는 거기에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그러고는 아무 의심 없이 종을 따라 나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앞날을 맡기고 순응합니다. 얼마나 순전한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부부는 신앙이 같아야 합니다. 신앙의 질도 같아야 하고, 신앙의 방향도 같아야 합니다. 부부가 신앙의 질이 다르고 방법이 다르면 참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삭 부부는 신앙도 이상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순응할 수 있는 부부였습니다.

거기다 이삭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이삭은 평생을 누구의 피를 흘려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축첩을 해본 일도 없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도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축첩도 했습니다. 아들 에서도, 야곱도 축첩을 많이 했습니다.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런 일이 없습니다. 아주 순전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삭은 나이 40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20년이 지났는데도 자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눈을 팔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기만 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부부와도 다릅니다. 아브라함도 조급했지만 그의 아내 사라는 더 조급했습니다. 그래서 몸종을 통해서 자식을 얻어 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편법을 씁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사람이 수단을 써서 가지게 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부부가 얼마나 심각한 갈등을 겪습니까?
그런데 이삭 부부는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수단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에서와 야곱 쌍둥이 자식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이삭의 부부 모습입니다. 부부 생활이 아주 깨끗합니다. 아주 이상적인 부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 같은 생각을 지닌 만남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관계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보면 모두 문제가 많고, 갈등이 많고, 불화가 많고, 장애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정마다 보면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이상적으로 살아가는 부부의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그렇게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아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게 하듯 하라." 여성들은 이 말을 기분 나쁘게 들으면 안 됩니다. 오늘 여성들이 이 말이 기분 나쁘다고들 말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남성들의 속성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남성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남성의 속성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명령하기를 좋아하고, 떠받들어 주기를 좋아하고, 큰 소리 치기를 좋아하고, 왕노릇 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지으실 때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남자들이 큰 소리를 치고 그드름을 잘 피고 하는 것은 모두 그런 속성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들이 남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아내들을 향해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자들은 큰 소리를 못치고 살면 기가 죽습니다. 남자가 기가 죽으면 그때부터 남자는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요즘 간 큰 남자 시리즈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아침에 밥 달라고 하는 남자는 간 큰 남자라고 합니다. 월급 다 어디다 썼느냐고 묻는 남자도 간 큰 남자라고 합니다. 아내가밖에 나갔다가 늦게 들어왔을 때 어디 갔다왔느냐고 묻는 남자도 간이 큰 남자라고 합니다. 요즘 남자들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풀론 풍자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 남자들이 너무나 왜소해졌습니다. 당당하지를 못합니다. 남자들이 이렇게 되면 오래 못삽니다. 남자들이 이렇게 기를 펴지 못하고 살면 숨이 막혀서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남편들을 이렇게 만드는 아내가 있다면 그 아내는 참 무지한 아내입니다. 남자를 몰라도 정말 모르는 아내들입니다.
도시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아들은 편지에 결혼 상대자를 자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아버지가 곧 답장을 씁니다. 그때 아내가 방으로 들어와서 편지 쓰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썼습니다. "내 아들아 기특하구나. 네가 벌써 커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니, 결혼은 달콤하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란다. 부디 좋은 인생이 되어라."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흐믓한 표정을 지으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재빨리 편지 끝에 "첨언"이라고 써 놓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방금 네 어머니가밖에 나갔단다. 이 바보 멍텅구리야, 결혼은 무덤이야." 그러고는 풀로 편지를 봉해 버렸ㅅ브니다. 아내가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얼마나 우수운 관계입니까? 이것은 비극이고 희극입니다. 여거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신 말씀에 기분 나빠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남편들로 하여금 세상을 자신 있게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남편들이 세상에서 왕노릇 하듯 자신 있게 살고 능력을 발휘하고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남편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이 아내들에게 부탁하신 것은 그런 뜻에서입니다.
루터의 전기를 보면 루터가 종교 개혁 당시에 몇 번씩이나 좌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좌절의 자리에게 일어나게 한 것은 그의 아내 카테리나 폰 보라였습니다. 그때마다 루터에게 굉장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 성공은 그래서 아내 덕분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부로 짝을 지어 주신 것은 이렇게 서로간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 성경은 남편들에게 당부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남편들에게 특별히 아내를 사랑하라고 당부한 것은 여성의 속성 때문입니다. 남편들은 여전히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웅장하고 엄청나고 비전 있는 꿈과 야망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지만, 여성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여성들은 아주 오밀조릴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주 하찮은 말 한마디에 감격해 하고 또 그 하찮은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고 그럽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일을 위해서 살지만 여성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성경이 특별히 아내들에게 당부하기를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신 것은 "여성은 남자의 속성을 알라"는 말이고, 또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당부하신 것은 "남성은 여성의 속성을 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복종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두 요소가 바로 피차 남남끼리 만나서 평생을 원만하게 살아가게 하는 양식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결국에는 두 사람뿐입니다. 부부밖에는 없습니다.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지만 부부와는 격이 다른 관계입니다. 부모는 부모이지 부부일 수는 없습니다. 또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자식도 소중한 존재이지만 알고 보면 그 인생도 따로 있습니다. 자식도 장성하면 부모 곁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부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 관계가 신비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잘 엮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생이 잘 조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결혼의 계절 가을이 시작됩니다. 가을은 만남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이 가을을 보내면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점검해 보고, 수정도 하고, 되돌아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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