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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험! (마 4:1-3)

by 【고동엽】 2022. 1. 27.

예수님의 시험! (마 4:1-3)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입에서 걸핏하면 시험이라는 말이 쉽게 튀어 나옵니다.
일이 잘 안 되어도 시험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가정에 불화가 생겨도 시험 중이라고 말합니다. 사업에 실패를 했어도 시험에 들었다고 합니다. 누구와 다투기만 해도 시험에 들었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일이 잘되면 모두 축복이고 일이 잘 안 되면 모두 시험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막연하게 시험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좀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시험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도대체 시험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 보고 시험이라고 말 합니까? 그리고 시험은 언제 오고, 어떤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입니까? 한번 물어 보십시다. 시험은 신앙이 좋은 사람에게 옵니까? 아니면 약한 사람에게 옵니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옵니까? 아니면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옵니까?
우리들은 지금까지 시험에 대해서 크게 오해를 했고, 그래서 두려워하기도 했고, 시험이 내게 올까봐서 겁을 먹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는 지금까지 시험은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만 오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오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많이 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는 시험이 없습니까? 그 동안 우리는 시험에 대해서 오해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시험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시험이란 무엇인가? 또 시험은 누구에게 오고, 어떻게 오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다는 점입니다.

 

1절을 보면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말 다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다고 하면 우리들이야 시험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시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시험을 당할까봐서 걱정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도 시험이 와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 끝나고 한 발짝만 나가 보십시오. 당장 시험거리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주위를 꽉 메우고 있는 시험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험이 올까봐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험은 언제난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하자면 시험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시험은 알고 보면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유익을 주고 인류 사회에도 공헌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본면 시험은 축복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합니다. 돈도 많이 버렸습니다. 온 가족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본인과 가족은 고생이 많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익이 됩니다.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갑니다. 가서 고생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많은 물질적인 피해를 당한 것을 눈으로 봅니다. 온 가족이 눈물겹도록 고생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깨닫는 바가 아주 큽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깨닫는 바가 아주 큽니다. 여러분 더도 말고 병원 중환자실에 한 번만 가 보십시오. 가 보면 정신이 번쩍 날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질병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심정적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일 질병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주변에서 없어져 보십시오.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엉망이 될 것입니다. 조심도 없어질 것이고, 규칙적인 생활도 없어질 것이고, 노력도, 감사한 마음도 없어지고 나태와 무질서한 생활이 난무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말하기를 죽음은 인류 문명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고 했습니다. 죽는 사람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죽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긴장을 유지하게 되고, 자동차 사고가 있으므로 질서 정신을 갖게 되어 질서가 유지되고, 전염병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위생에 대해서 유의하게 되어 청결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이 세상에 질병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도 없고, 울어야 할 일도 없고, 추위도 없고, 더위도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생각을 한번씩은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가을 날씨 같은 곳에서 살게 되면 사람의 체력이 약해져서 생명이 단명해진다고 합니다 사람은 추웠다 더웠다 하는 기후 속에서 살아야 건강하고 강해져서 오래 사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하나님께서 천해의 자연 조건을 주신 나라입니다. 우리는 일년 사철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주기적으로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맵고 짠 음식들을 주식으로 섭취하면서 체질적으로도 강한 체질을 타고났습니다. 그 결과 오늘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갔다 놓아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연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시험에 대해서 두려워할 것도 없고, 겁낼 것도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 많이 하는 곳에도 시험은 있다는 점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금식을 하셨다면 그냥 대충했겠습니까? 철두 철미하게 금식하면서 기도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그렇게 40일씩이나 금식기도를 끝낸 예수께도 마귀가 겁없이 찾아와 시험을 합니다. 그러면 말 대했지 않습니까? 시험은 심지어 40일씩이나 철저하게 금식기도를 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까지 찾아옵니다. 말하면 뭘 합니까? 시험은 기도 속에도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오해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일주일 금식 기도를 하고 나서 '나는 이제 깨끗해졌다. 시험은 이제 멀리 가 버렸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도 40일을 금식기도한 사람입니다. 모세의 금식 기도는 기가 막히는 기도입니다. 시내 산속에 물이 있습니까? 숲이 있습니까? 낮에는 불볕 더위 속에서 기도했고, 밤이면 얼너 붙는 광야의 추위 속에서 물 냄새조차도 맡지 못하고 40일간을 단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은혜가 충만했겠습니까? 그가 산을 내려올 때는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끝난 것 아닙니까? 사탄이 어디라고 찾아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40일을 금식기도하고 나서 하나님이 깎아서 만들어 주신 돌비 두 개를 들고 산을 내려옵니다. 내려오다 보니까 백성들이 금붙이를 거둬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에 절하고 입을 맞추고, 이것이 우리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그 앞에서 춤을 추고 야단입니다. 그때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는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의협심에서 사람을 쳐 죽인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하나님이 깎아서 글을 써 주신 돌비를 홧김에 내 던져서 박살을 내놓았습니다.
화가 나도 그렇지 나면 그 돌비를 옆에다 조용히 놓고 다른 돌을 집어 던지든지 해야지 그것이 어떤 돌인데 그것을 던져서 박살을 내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모세는 그만 집어 던져서 모두 깨 버렸습니다. 40일을 그렇게 철저하게 금식기도를 하고서도, 하나님을 대좌해서 기도를 한 사람인데도, 그래서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가리울 정도였는데도 모세는 그 버릇을 못 고쳤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 다혈질 때문에 가끔씩 실수를 해서 고민인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참았으면 더 멋이 있었을텐데 참지를 못하니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사람은 40일이 아니라 400일을 금식해도 나에게는 시험이 없다하고 말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시험은 기도 많이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오고, 성공했다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오고, 나는 이제 섰다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오고, 나는 은혜가 충만하다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시험을 무시하고 살되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시험이 언제 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시험이 언제 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할 때 왔습니다. 시험을 대개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시험을 이겨 놓고 나서 3년 동안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을 훈련이라고 하고 연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도 애굽에 가기 전에 이미 40년 동안 강한 시험을 치루고 나서 갔습니다. 요셉도 총리가 되기 전에 이미 고된 시험을 다 치루어 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강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인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고된 훈련과 시험을 치루어 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큰 시험을 미리 이겨 낸 경험이 있으면 그 다음에 주어지는 잡다한 시험들은 문제가 안 됩니다. 어려서 시련을 많이 당해 본 사람은 커서 당하는 시련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린아리들을 키울 때 너무 애지 중지해서 키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때로 매도 맞고, 넘어져 깨지기도 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그렇게 자라야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든가 귀한 집 아이들이 문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무남독녀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귀하게 키웠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매사 칭찬만 듣고 자라고, 편안하게만 자라고, 온실 속에서 화초처럼 자라다가 커서 시집을 갑니다. 시집을 가면 그 환경이 자기집 같지가 않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서 밤늦게 들어와서는 되지도 않는 말을 해댑니다. 이것은 생전 듣지도 않고, 겪어 보지도, 당해 보지도 못한 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용납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갈등이 생기고 그것을 극복해 내지를 못하다가 그만 갈라서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귀한 집 아들이 독자로 태어나서 아주 귀하게 자랐습니다. 이 아들이 군에 가서 딱 한번 기압을 받고 나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어 버렸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욕 한번 들어본 일이 없이 자랐는데, 매 한번 맞아본 일이 없이 자랐고, 수모 한번 당해 본 일 없이 자랐는데 군에 가서 생전 처음으로 욕울 먹고 매를 맞고 기압을 받고 나서 그 수치감과 불쾌감과 모욕감을 이겨 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것을 감당해 내지를 못해서 그만 자살해서 죽어 버린 것입니다.
시험을 당해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세상을 너무 안일하게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욕도 좀 먹으면서 자라고, 매도 맞아 보고, 눈물도 좀 흘려 보고, 때로는 굶기도 좀 해보고 자라야 그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구출된 청년들을 보고서 신세대는 강하다고 칭찬들을 하는데 그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닙니다. 구세대면 모두 강하고 신세대면 모두 약하다는 등식은 고르지 못한 해석입니다. 그 청년들은 분명 신세대이기는 하지만 이미 세상에서 남다른 연단을 받은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강한 것이지 신세대라서 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 청년들이 모두 어느 부잣집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나약하게 자랐어 보십시오. 그 청년들이 어떻게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이미 세상에서 배도 고파 보았고, 땀도 흘려 보았고, 돈이 어떻게 해서 벌어시는가를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던 들의 야생초들처럼 의지가 강했던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그만한 강한 의지를 지니고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왜 그렇게 강합니까? 우리나라는 6,25전쟁으로 3년 동안 3천 만 인구 가운데 15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태인들은 전쟁도 아닌 때에 히틀러에게 1천 만 인구 가운데 600만 명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그 민족이 강해지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처녀들이 총대르 메워 훈련을 시켜도 우리 대학생들처럼 훈련 안 받겠다고 데모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사람은 시험을 통해서 큰 그릇이 됩니다. 큰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시험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네 번째는 예수님이 그 시험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세 번의 시험을 모두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기었으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요 16:33)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다 이기셨습니다. 우리들의 대장 되시는 주님께서 이기셨으니 졸병 되는 우리는 따라기기만 하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느니라' '너희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믿음의 시렴이 너희를 온전케 함이니라.'(약 1:2-3).
지금 한창 시험 중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이 이기게 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시험이 다 지나간 후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아주 강한 신앙의 소유자들로 만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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