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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울 때에 할 일(시 56:1-3) : 두려움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두려울 때에 할 일

시편 56:1~13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 시편 56편 3,4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위지 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이 시는 저 유명한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성경에 나타나는 가장 용감한 사람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였고 하나님은 다윗을 들어 쓰셨습니다. 다윗이 아주 젊은 때입니다. 이스라엘 옆에는 블레셋 나라가 있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한번은 블레셋군대 적장 골리앗이 이끄는 군대가 이스라엘 진영 맞은편에 진을 치고 골리앗이 아침과 저녁으로 이스라엘 군대에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면서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군대에는 골리앗을 도전할만한 사람이 나서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골리앗이 큰 소리로 도전해 오면 이스라엘 군대는 항오에 숨기가 바빴습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국가의 운명을 염려한 사울왕은 마지막 카드로 옛날 흔히 하던대로 "저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쳐 물리치면 그를 왕의 사위로 삼겠다"고 방을 내 걸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누구하나 골리앗과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년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님들을 위문하기 위해 일선에 왔다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도전하는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소년 다윗의 피가 끊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인 우리 이스라엘 군대를 저렇게 모욕하는 놈이 도대체 누굽니까?" 옆에서 있던 어떤 군인이 벌벌 떨면서 대답했습니다. " 이 사람, 저가 누구라니? 블레셋 백전노장 골리앗인데 우리는 저 사람만 나타나면 간담이 서늘해지고 다리고 물처럼 녹아서 맥을 못쓴다네. 우리는 항오에 숨는 게 일이야 지금 대왕께서는 방을 내걸고 골리앗을 물리치는 사람에게는 공주님을 주신다고 해도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어" "그래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이때 옆에서 있던 맏형 엘리갑이 듣고 화를 내면서 "너는 아버지 양이나 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와서 건방진 말을 하는냐? 너는 가만히 보면 교만한데가 있어, 어서 꺼져라"고 야단쳤습니다.

 

이때 다윗이 형에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형님, 내가 무엇을 했습니까? 내가 한 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군사가 다윗의 말을 듣고 사울왕을 찾아가서 이스라엘에 블레셋 적장 골리앗의 도전자가 나타났다고 고했습니다. 사울왕은 얼마나 반가운지 당장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 앞에 나타난 골리앗의 도전자가 어린 소년임에 사울은 놀랐습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면서 또 놀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용감하고 담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말에는 신념이 가득했고, 그의 눈은 빛을 발했습니다. 너무 기특해서 사울은 다윗에게 자기가 입던 군복을 입히고, 놋 투구를 머리에 씌우고, 갑옷을 입히고, 칼을 차게 했더니 도저히 불편해서 입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벗어 놓고 손에 막대기만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갔습니다.

 

블레셋 적장 골리앗이 방패든 사람을 앞세우고 나아오면서 소리치는데, 전에는 이스라엘 진영에 검은 개 하나 얼른거리지 않았는데 사람이 나오는데 가까이 다가서 보니 가가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란 말이요. 블레셋 적장 골리앗은 어이없이 생각하며 업신여기며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저주하며 "너 내게로 와 봐라 내가 네 고기로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리라"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이때 소년 다윗이 전쟁역사상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러면서 다윗이 주머니의 돌을 하나 꺼내서 물매로 던졌는데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 그 자리에서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블레셋 적장을 죽여 버렸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일약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두려워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구약 사무엘상 21장 10절에 보면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 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가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물리친후 국민들 사이에서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이란 말이 돌아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비록 자기 사위이지만 시기심의 불이 타기 시작했고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쫓아나셨습니다.

 

다윗은 가정적으로는 장인이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므로 가히 손을 댈 수 없다는 자세로 피하여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약해지게 되고 겁도 났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강한 것 같다가도 약해지고, 용감한 것 같다가도 비겁해 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다윗뿐입니까?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야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이방에서 수입하여 온 바알신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이 아합왕의 왕후 이세벨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의 권위를 가지고 아합왕을 책망하고 유대땅에 비가 내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가 적은 유대 땅에 3년 6개월이나 비 한방울 내리지 않으니 가뭄이라기 보다는 온 땅이 타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합왕은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엘리야가 저주해서 이 땅이 타고 있다고 분해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왕이 엘리야를 찾다가 만난 길에서 화를 발하며 엘리야를 향하여 이 민족이 재앙을 당하고 있는 것은 "엘리야, 너 때문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하나님의 사람과 바알신 선지자와 대결로 어느 신이 참 신인가 확인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신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신의 선지자 400면이 갈멜산 위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누가 침 신인가를 겨루게 되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담대히 외쳤습니다. "당신들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 끼어서 머뭇머뭇하려고 합니까?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으세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자기 혼자서 바알신 선지자 수백명을 앞에 놓고 그것도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의 후원을 뒷받침하고 있는 그들과 담대히 싸웠습니다. 여러분은 그 대결의 결과를 잘 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이신 것을 확증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약속한대로 바알신과 바세라신 선지자를 한칼에 죽여 버렸습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용감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불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패배한 왕후 이세벨은 사람을 엘리야에게 보내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중에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처럼 용감하고 담대했던 불의 선지 엘리야는 왕후 이세멜의 공갈을 받고 열왕기 19장에 가보면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불의 선지 엘리야도 두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

 

두려워하는 것은 심리적 현상인데 이것은 사실 어린애 같은 일입니다. 어린애는 어두운데 혼자 있으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어두운데 혼자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내 심령의 상태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두운 환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가운데 더욱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워한다는 것은 근심과 걱정 때문에 염려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내 생활에 갑자기 와서 부딪힐 때 우리의 생활이 산산 조작으로 분열되기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고 마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이렇게 외부환경의 위험과, 우리 내부의 죄로 인한 공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왜 동산나무 뒤에 숨었습니까? 하나님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두렵습니까?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지 않아도 두려워서 숨게된 것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니다. 두려워서 도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약할 때 두려워합니다.

 

사람의 몸이 약해지면 백병이 침입하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약해지면 어려운 환경에 들어가게 될 때 그것을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그 고통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두려울때에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갑자기 환난의 날을 당합니다. 환난은 누구에게나 밀어닥칩니다. 환난은 예고 없이 밀려옵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하여 오늘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믿음으로 주안에 사는 사람들의 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의지 할 이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일시적인 어려움에 직면 할 때 두려워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별로 어려운 일을 만나지 아니하고 아주 평범한 생을 보내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심지어 의식주가 문제가 될 정도로 아주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업가 중에는 젊어서부터 사업을 했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너무 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아주 망하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나 새 사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고 해도, 치밀하게 계획하고, 과단성 있게 집행해 나가며, 근면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고 번성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럴 때 조금 잘못하면 마음이 약해지기 쉽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고, 두려워서 아주 깊은 데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힘든 것은 사실이나 잠시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신념과 패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남은 자녀를 내가 어떻게 키우나 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도 지나고 보면 잠시뿐입니다. 이 고통이 날을 잘 이겨내는 동안 자녀는 자라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볼 때 그때의 고통이 잠시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고통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려움 때문에 두려워하지는 맙시다. 그리고 두려운 때 다윗의 간증을 기억하십시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 하리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생에 밀어닥치는 어려운 일과 잘 싸워 나아갈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전에 소년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형들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종의 신분으로 종살이를 충성스럽게 잘 감당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뜻밖의 시험도 당했으나 잘 이겼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시험을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예상 못했던 누명을 쓰고 고생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요셉은 가가 당하는 어려움을 잠시 당하는 고통으로 생각하고 잘 참았습니다. 그럴수록 요셉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광명의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요셉은 젊은 나이에 애굽왕 바로의 버금가는 실력자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젊은 날에 당한 어려움을 잠시뿐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형들이 동생 요셉 앞에서 무서워 떨고 있을 때 요셉이 눈물을 흘리며 형들에게 한 말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형님들 두려워 마세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워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당한 고난은 잠시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였더니 이렇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위 환경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주님의 능력의 팔을 꼭 붙드세요.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도 지난 일년동안 정말 뜻밖에 어려움을 당해서 두려운 때가 있었지마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였더니 주님의 능력의 팔이 나를 안위해 주셔서 오늘의 축복이 있게 된 것을 체험하신 분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나온 생을 돌이켜 볼 때 잠시 당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마는 이런 때일수록 주님을 더욱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도우심을 맛보신 분도 여러분 계실 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죄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은 죄로 말미암아 심령이 상할 때로 상하고 더러워 질 때로 더러워 졌습니다. 칼빈의 주장대로 모든 인류는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깨어진 거울 같아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게 시리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범죄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형벌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류는 이 형벌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형벌이 두려워 떨고 있는 인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이 죄의 형벌의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참 평안과 자유 함을 얻을 수 잇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 감격한 일입니까! 누구든지 아무리 큰 죄, 아무리 더러운 죄를 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오기만 하면 주님은 절대로 내어쫓지 아니하십니다. 주님이 용서 못할 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어떻게 될까? 놀라운 것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필요 없는 두려움에 쌓여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놀라운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이 일을 완수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서 믿으라는 말과 의지하라는 말은 같은 뜻의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이미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른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영혼이 구원받은 것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일은 우리 육체의 구원뿐입니다. 이 육체는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마지막 날을 알리는 나팔 소리에 우리의 몸이 순식간에 변화하여 영화롭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우리는 마지막날에 어떻게 될까하여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의지 하기만 하면 됩니다.

 

더구나 주님을 의지하면 인간의 숙명적인 원수인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의 말처럼 두려운 날에는 주님을 의지하세요. 인간생활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인간의 고통의 종지부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 고통과 두려움이 죽음으로 다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하신 주님의 팔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울 때 살아 계신 주님을 의지하세요. 주님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생각합시다. 이사야 12장 2절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주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 심이라"했습니다. 다윗은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 하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내가 주를 의지하므로 두려움이 없으리이다" 했습니다. 다윗은 두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님을 의지하므로 두려움이 없이 살았습니다.

 

여러분, 병들었을 때 고침 받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병들기 전에 병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은 더욱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의심과 두려움이 생길 때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귀한 일은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고난과 두려움을 넘어서고 의심이 살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잠시 당하는 고난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감옥에서 고생하면서도 그처럼 늠름하게 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에 말씀했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하였고 내가 너를 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도 타지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 두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어려움 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한해를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우리의 앞날은 보장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 할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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