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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다시 일어납시다(수 8:1-9 )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다시 일어납시다
<여호수아 8:1~9>


여러분께서 기도하여 주셔서 이번 미국에서 성회를 은혜 중에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여 사랑하는 여러분을 만나게 되니 그저 감사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번 성회도 승리 적으로 마쳤고 세계지도력개발원의 교역자 세미나도 퍽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 세계지도력개발원(Global Christian Leadership Institute)을 비영리법인으로 등록을 마치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사역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위해서 계속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어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때부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범사에 순풍에 돛단배처럼 그저 형통하는 줄로만 생각하고 그렇게 기대하기가 쉬운데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데 여러 가지 난관에 직면했던 것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으로 직면한 난관인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습니까?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말로 부지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르기가 쉽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기보다는 늦게 일어나는 것이 쉽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가지가 쉽습니다. 공부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을 차지하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게으르면 안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지난날에 우리는 일하지 않고, 땀흘리지 않고, 먹는 것을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사람이 양반이고,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을 상민이라 했습니다. 더구나 군정 30여년을 지내면서 한탕주의가 생기게 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풍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어도 벼락부자가 되고, 벼슬을 해도 벼락감투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벼락맞을 생각입니다. 일하지 않고, 땀흘리지 않고 먹는 사람을 불한당(不汗黨)이라 합니다. 도둑놈입니다. 하나님은 도둑놈을 키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풍성한 삶은 수고를 통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도전을 통해서만 이 신앙의 풍성한 삶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의 땅은 전력투구의 정신을 가지고 용기와 정성과 노력으로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잇는 곳에는 빛이 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옛글에도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란 말이 있습니다. 뜻이 간절하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이 생깁니다. 성공에는 끈기가 필요하고 승리에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훌륭한 일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7전8기의 눈물 나는 노력 끝에 성공과 승리의 영광스러운 월계관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난관을 앞에 두고 이것을 극복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귀한 교훈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하면 앞서가고 게으르면 뒤서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앞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앞서 인도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약궤가 뒤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뒤에서 우리를 호위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언약궤가 그들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궤를 보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백성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길을 걷게 하십니까? 우리를 강하게 훈련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립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일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나 수비고 평탄한 길로만 인도하시지 않으십니다. 쉽고 평탄한 것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때로는 거칠고 괴롭고 험한 길이지만 망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요단강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가 성결해서 내가 쓸 수 있나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큰 그릇, 비싼 그릇이 문제가 아니라 깨끗한 그릇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못하실 일이 없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제사장들에게 '요단에 들어서라'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단강물에 들어섰습니다. 그러자마자 요단강물이 쫙 갈라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제가 해결되면 믿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믿으면 해결된다"고 하십니다. 아직도 해결의 전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 앞에는 어두운 구름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행진은 계속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요단강물에 우리의 발을 담급시다. 우리의 발이 잠기자마자 볼 것입니다. 주님이 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요단강을 건넜더니 여리고성이 우뚝 서서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여리고성을 점령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손가락하나 건드리지 않고 여리고성을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잇습니까? 우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삶의 초점을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두려워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을 돌면서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리고성 함락 작전에서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자유라 잠시 보류시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만일에 그들에게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했다면 분명히 무리 중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으면 그 말에 동요되어 행진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침묵을 명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조용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은혜를 방은 중에 능력을 얻습니다. 마음이 들떠서 흥분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조용해야 바로 생각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고 내 의무를 바로 깨달아서 그것을 바로 실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것은 인간의 순종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순종은 문둥병이 낫게 했습니다. 가나 혼인집 하인들의 순종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했습니다. 베드로의 순종은 깊은데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낚게 했습니다. 온전한 순종은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느 성경학자의 말대로 '한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성을 여러 번 돌게 하셨습니까? 자기 백성의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여 열세바퀴를 돌고 함성을 질렀더니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성이 아이라는 성인데 여호수아는 사람들을 보내서 알아보았더니 여기고 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이고 다 가서 고생할 것 없고 2,3천명만 보내면 아주 간단히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만 듣고 3천명의 군사를 올려 보냈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성 사람들이 다 일어나 결사적으로 대항하는데 쫓겨 도망하다가 서른 여섯 명이 죽고 돌아온 사람들은 마음이 녹아 물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슬픕니다. 우리로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이제 아모리 사람에게 멸망시키려 하십니까?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요단 저편에 있는 것이 좋을 뻔했습니다. 이 주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 이름이 끊어지면 하나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엎디어 기도만 하지 말고 일어나라.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패전원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 전투에서 어떻게 그처럼 비참하게 패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에서 승리한 후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줍니까? 우리가 축복을 받았을 때 우리가 은혜를 충만히 받았을 때 우리가 성공했을 때, 그 순간이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위기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과의 전투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아침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 전투에서는 여리고성 전투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도 없습니다.


자만심이 초래한 무서운 오해를 보세요. 그들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랬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불가능하던 일이 성취되는 것을 자기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들은 착각했습니다. 여리고성을 자기들의 힘으로 무너뜨린 것을 생각했습니다.


승리 다음에 오는 자만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자만심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자만심은 그들을 넘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의 부족입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전리품에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간 이란 사람이 욕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금과 은을 보자 탐심이 가득해서 눈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손대지 말아야 할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자기 것으로 훔쳤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그 한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패한 것입니다.


만일에 아간이 자기의 행동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나 한사람쯤이야'하는 생각으로 나 혼자 은밀히 취한 행동이 혼자만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간을 아골 골짜기에서 돌무더기를 쌓아 처치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죄를 제거하고 나니까 다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후에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은 아이성을 무난히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2장 15절에 보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제해버리는 골짜기가 없이 우리 앞에 소망은 없습니다. 이것은 민족의 장래만 그런 것이 아니고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골 골짜기는 괴로움의 골짜기입니다. 험하고 위험합니다. 요단 평지에서 가나안땅으로 올라가려하면 반드시 이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에도 아골 골짜기가 있습니다. 어둡고, 음침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아골 골짜기에 들어서면 우리는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러한 깊은 골짜기에도 위는 열려 있습니다. 위에는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위에는 밝은 태양이 있습니다.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골 골짜기를 걸을 때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 9월 11일 미국에서는 상상도 예측도 못했던 테러사건으로 많은 인명이 피해를 입었고, 재산의 손실을 보았고, 체면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당장 전국에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시편 23편을 인용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받을 것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사니이다"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위급한 때 119를 돌립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911을 돌립니다. 이번 사건이 9월 11일에 일어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 미 국민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을 911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의지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는 가운데 위에서 내리시는 새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이 골짜기가 아무리 험하고 어둡지 마는 소망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God Bless America!


역대하 7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낮아 질대로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패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전의 드라마를 생성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에서 있어서 아간 이라는 한 사람의 범죄는 민족적인 커다란 비극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비극은 치료될 수 없는 비극은 아니었습니다. 패배의 원인이었던 아간 이란 사람이 제거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시기 원하셨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백성을 향해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백성에게 승리를 보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백성에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구약의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고행하는 것도 싫었고 민족적인 감정이 좋지 않은 니느웨로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와는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까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민족이 범죄 하므로 인해서 고난이 있을 때 그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 전에는 아무리 다른 방면으로 인간의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짐을 당했고,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다가 요나를 삼켰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했습니다. 이때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잘못했을 때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옛글에도 '인유무과'라고 했습니다. 사람으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실패를 깨닫고 회개하여 바로 서면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 링컨처럼 실패를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는 실패 속에서 교훈을 얻어 더 커다란 시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실패할 때 마귀는 내게 찾아와서 '이제는 끝장났다. 포기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할 때 하나님은 내게 찾아오셔서 '이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귀의 말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에서의 비참할 정도의 패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앞에서 그 패전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 범죄를 제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도 다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를 다 이끌고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가 전투를 치르지 않고도 아이성을 정복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승리가 최선을 다하고, 전력을 기울일 때에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 911 미국의 테러 사태로 미국이 잃은 것도 많습니다. 세계무역센타빌딩에서 이른 아침부터 회의하던 미국의 최고 두뇌가 희생된 것은 건물의 붕괴손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일로 인해 느슨해있던 미국이 긴장되고 온 국민이 하나로 뭉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제의 승리를 위해서 전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도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내 삶은 내가 제일 잘 압니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내가 잘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십니다. 우리에게 얼마의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능력을 가지고 전력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위해서 다시 일어나 전력투구의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려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여리고성의 전투와 아이성의 전투는 전략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오늘의 전투를 위해서는 오늘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양식을 위해서는 오늘의 만나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는 오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의 전략 어제의 방법이 오늘의 전략 오늘의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제의 은혜를 가지고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 오늘의 은혜를 위해서, 오늘의 축복을 위해서, 오늘의 양식을 위해서, 오늘의 열매를 위해서 오늘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하고 나서 주님의 말씀을 기다렸고 하나님은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승리의 지침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말씀대로 행했을 때 그들은 승리 했습니다. 그들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번영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를 통해 교훈 받아 다시 일어선 것처럼 우리 모두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납시다. 일곱 번 넘어졌지만 여덟 번 일어서면 됩니다.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함은 여호와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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