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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눈(잠 15:1-10 )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하나님 아버지의 눈

잠언 15:1~10

 

 

 

여러분께서 기도해주셔서 지난 주간 몽골 울란바토르 갈보리교회 헌당식을 은혜 중에 마치고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아주 아름답게 잘 꾸며졌습니다. 아마 현재로서는 몽골에서 울란바토르 갈보리교회가 제일 훌륭한 예배당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울란바토르 한인교회를 시무하시는 안광표 목사님의 전적인 수고가 있으셨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울란바토르 갈보리교회는 작년 말부터 모이기 시작했는데, 몽골인 올주보이 전도사가 열심히 전도해서 현재 장년이 50여명, 학생들이 6,70명 모이는 훌륭한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우리 교회 북방선교회 회장님이 몽골어로 된 성경책을 100권 전달하면서 창립 1주년이 될 때는 장년이 100명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씀을 했습니다.

 

그 동안 울란바토르 갈보리교회를 헌당하기까지 수고해주신 여러분, 물심양면으로 협력하시고 기도해주신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계속해서 울란바토르 갈보리교회를 통해서 몽골의 많은 심령이 구원받기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 잠언 15장 3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오늘 이 말씀을 중심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5장 2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욥기 34장 21절에는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94편 9절에 보면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우리를 보살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을 살피시며 폐부를 시험하시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십니다."

 

사람은 보통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의 문명과 함께 발전되어온 것 중의 하나가 거울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동판이나 철판을 갈고 닦아서 거울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동판으로 된 거울로 사람의 얼굴 윤곽을 볼 수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유리 거울과 같이 분명하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서 말하다가 "우리가 지금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라"고 했는데, 아마 오늘날 같았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바울이 편지를 보낼 때만 하더라도 구리를 갈고 닦아 거울로 사용할 때이니까, 아마 보기는 보아도 희미하게 보인 줄 생각합니다. 더구나 문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거울의 모양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호텔이나 상점, 심지어 가정집에도 대문짝 만한 거울을 달아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현대문명은 거울의 문명"이란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사람마다 자기의 얼굴을 보기 좋아하고,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니까 몸 전체를 보려고 그렇게 큰 거울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보통으로 자기가 잘 생긴 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나?'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여자들은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장식품으로 몸을 단장합니다. 이렇게 잘 치장을 하고 나갔을 때 보는 사람이 칭찬을 해주면 하루종일 기분 좋아합니다. 이것은 여자만 그런 것 아니고, 요사이는 남자들도 외모를 단장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인 청소년기에, 특히 여학생의 경우, 가장 고민하는 부분들의 하나가 외모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코가 왜 이렇게 생겼지?' '눈 쌍꺼풀은 왜 없을까?' '내 다리는 왜 다른 애들처럼 날씬하지 못할까?' '몸은 왜 이렇게 뚱뚱할까?' '내 가슴은 왜 이렇게 작을까?' 하는 문제로 걱정을 합니다.

 

외모 콤플렉스, 외모 지상주의, 요요현상, 닥터쇼핑, 거식증, 탈수증, 성형중독, 키 키우는 약 복용 등 외모 때문에 생긴 정신병적인 신드롬은 많은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합병증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의 경우 외국의 청소년들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 때문에 눈을 열한 번, 코를 다섯 번, 3년에 걸쳐서 같은 부위를 마음에 들 때까지 모두 스물세 번 수술했다"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예뻐지기 위해서 10개월 동안에 네 군데 병원에서 일곱 번이나 눈을 성형 수술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우리 청소년은 자신을 조절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이렇게 성형외과를 찾아 외모를 수술하는 열풍이 청소년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7월 23일부터 2주간 동안 사이버 폴을 통해 "성형수술을 해서 미인이 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미인 수술을 받겠는가?" 하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짧은 기간 동안에 8,000여 명이 응답했고, 32%가 수술을 받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수치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수치가 나오게 되었습니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여성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잘못된 가치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런 잘못된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외모에 대해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 당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개인이 외모에 관심이 있다면 정치하는 사람은 국민의 여론에 대단한 관심을 가집니다. 국민들의 여론을 조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나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스스로 잘난 줄 알고, 세상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인기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사람이면 얼마 오래가지 못합니다.

 

전에 바벨론 왕 벨사살이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게 보았습니다. 모든 신하와 국민도 그를 높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천여 명의 귀빈들을 초청해서 연회를 배설했습니다. 초대를 받은 그 많은 손님들은 벨사살 왕을 극구 찬양했습니다. 그는 술과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하고 즐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을 들고 나와, 하나님께 드리는 기명으로 술을 따라 마셨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드시는 잔으로 이 벨사살 왕이 술을 마신다는 교만한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담벽에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서 글을 씁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 뜻은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그리고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였습니다.

 

그날 밤에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이 들어와서 바벨론 나라를 멸망시키고 만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높이 평가하는 것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서 얼마의 무게가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어떤 눈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신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어디나 보십니다. 높은 데도 낮은 데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일할 때나 잘 때나, 깰 때나 쉴 때나,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여행할 때나 언제나 살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현재만 살피시는 것이 아니고, 과거도 보시고, 미래까지도 내다보십니다. 그래서 시편 139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태에서 내 형태가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나를 보셨나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우리 인간 생활의 모든 방면을 살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기름을 부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라고 하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새가 사는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그 사연을 말하고 아들들이 있으면 좀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새는 으레 맏아들 엘리압을 보여드렸습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잘 생긴 아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아, 이 사람이 왕이 될 사람인가 보다' 하고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속삭이듯 하시는 말씀이 "외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는 이미 이 사람을 버렸노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이 보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은 보통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사람의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고 그 행동 배후에 숨은 동기를 보십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데를 보십니다. 심리학의 용어대로 말하면 'complex obsession', 다시 말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사람, 그 욕망, 그 사상, 그 심리 증상을 보십니다.

 

 

 

에스겔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를 어떤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 보니까 큰 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큰 벽에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구멍이 너무 작아서 아무리 들여다보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벽을 헐라." 그래서 에스겔은 구멍을 크게 하고 그 벽을 헐었습니다. 그랬더니 큰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문을 열라" 하셔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큰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큰문을 열고 보니까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안에는 온갖 더러운 짐승, 벌레가 있고 그 방벽에는 우상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에스겔이 깜짝 놀란 것은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그 우상에게 분향하고 서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너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하는 일을 아느냐? 이 사람들이 입술로는 나를 섬기노라 하지만, 실상 자기 마음 깊은 곳에는 더러운 것들이 많고, 실상은 우상을 섬기고 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이것을 보지 못하는 줄 알지만, 내가 이렇게 분명히 보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담으로 쌓고, 문을 꼭 닫은 다음에는 '누가 내 속을 알겠는가?'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모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 중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비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139편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에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에 계시나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불안해지고 하나님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동산 나무 뒤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동산 나무 뒤에 숨으면 하나님이 못 보실 줄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이렇게 어리석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노아의 때 사람들의 악한 생각과 행동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아합 왕과 이세벨의 망령됨을 보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아버지를 반역한 압살롬을 보셨습니다. 선지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성막에서 악을 행한 것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대로 갚으셨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무솔리니를 보셨습니다. 히틀러를 보셨습니다. 일본의 동조를 보셨습니다. 모든 독재자를 보셨고, 저울에 달아 보신 대로 갚으셨습니다.

 

전에 다윗 왕도 아무도 모르게 은밀한 방에서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후에 다윗이 깨닫고 시편 51편을 고백한 것입니다. "나의 죄를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짓든지 하나님 아버지 눈앞에서 짓는 것입니다.

 

전에 아간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의복과 금과 은이 탐이 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남몰래 장막 속에 감췄습니다. 누구도 모르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찾아내고 말았습니다. 작은 죄나 큰 죄나 하나님 아버지 눈앞에서 행하는 악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우리의 안과 밖을 똑같이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을 악한 행동과 똑같이 미워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음욕을 품으면 벌써 너희 마음으로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미워하신 죄가 무엇인지 아세요? 외식하는 죄를 특별히 주님께서 미워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 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과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모든 죄가 다 가증하지만, 외식하는 죄는 두 가지 죄를 겸했습니다. 속에 있는 더러운 죄, 그리고 그것을 가리우는 거짓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기 전에는 우리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참 평안을 원하십니까? 우리의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용서를 비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시고 하늘로부터 유쾌하게 되는 날, 참 평화와 담력을 소유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의 눈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땅에서 450년이나 지내면서 종살이하고 무고하게 압박을 받으며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이스라엘 민족의 곤고한 것을 보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슬프고 억울한 사정을 내려다보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민족을 구출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오늘 우리 한국 민족의 사정을 다 살피고 계십니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사정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도 보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전에 나오미와 룻, 외로운 두 여인을 보셨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이 불쌍한 여인들을 보시고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표독하기 이를 데 없는 이세벨을 피하여 멀리 도망하여 로뎀나무 밑에 쓰러져 있는 엘리야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먹을 떡과 마실 물을 주어서 원기를 회복시켜주시고 새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조용하고 은밀한 가운데 무화과나무 아래서 메시야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는 나다니엘을 보셨습니다. 이달리야대 백부장 고넬료는 은밀히 기도하며 남모르게 다른 사람을 돕는 자선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넬료를 군인 장교로만 보았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고넬로의 은밀한 생활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청하게 되고 온 가족이 구원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행하시며, 그를 진심으로 의지하는 이를 찾아서 그를 지켜주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우리의 외로운 사정을 보십니다. 우리의 억울한 사정도 보십니다. 우리의 배고픈 사정도 보십니다. 우리의 흘리는 눈물도 보십니다. 우리의 절실한 필요도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동안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선한 사람을 감찰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불꽃 같아서 우리의 속을 헤쳐보십니다. 내 생각, 내 생활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것은 혹 없습니까? "우리가 만일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죄에서 다 사해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한 가운데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르시기 때문에 자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리석어 하나님이 못 보신 줄 생각하고 아직도 죄를 품고 있으면, 이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 내놓고, 용서받으시고 유쾌하게 되는 축복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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