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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은(창 49:22-28 )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하나님의 축복은

창세기 49:22~28

 

 

 

유대인들에게는 아름다운 전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아들들을 불러놓고 축복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그렇게 축복해 주었고,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야곱이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오는 것을 내다보면서 열두 아들을 불러 하나 하나에게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은 특별히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좋은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생기가 넘치고 왕성한 모습입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특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샘 곁의 나무와 같습니다. 생명샘이 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샘 곁의 나무와 같습니다. 생명샘이 되시는 하나님 곁에서 그 축복이 풍성한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나라는 비교적 물이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수자원의 고갈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동지역은 사막이기 때문에 물 값이 기름 값보다 비싸고 물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구약역사를 보아도 양을 치는 목자들이 물 때문에 서로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래서 '샘'이란 말만 들어도 생기가 돌았고, 그 자체를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나무도 샘곁에서만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샘과 같아서 항상 새로운 생수로 솟아나기 때문에 샘곁에 심겨진 나무를 풍성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의 생이 마칠 때까지 언제나 하나님 편에 가까이 서서 주님과 더불어 함께 하며 교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큰 축복을 안겨 주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게 역사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가정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보디발 장군 집에 종으로 사는 동안, 그 가정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있는 동안 바로 왕과 온 애굽이 복을 받았습니다. 기근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애굽 민족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기근을 면하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나뭇가지로 담을 넘어 멀리, 그리고 넓게 축복을 나누어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샘 곁에 우리 삶의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샘 곁에 심겨진 나무는 우리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창고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고, 그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모든 충만한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다함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용인 기도동산을 만들면서 생수를 개발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양질의 물이 많이 나오는지 만 5일 동안을 계속 뽑았는데도 수원이 마르지 아니하고 넘쳐 났습니다. 아주 좋은 샘이 개발된 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 기도동산의 샘물 정도가 아닙니다. 넘치고도 넘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만족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차원이 다른 영적인 것입니다. 사실 영적인 축복이 아닌 물질적인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불행합니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면 생명과 활력을 얻게 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에게 삶의 근거를 두고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열매맺는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주위 환경에 따라서 받는 영향이 큽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했지만 애굽에 얼마 동안 내려가 있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는 멀어진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서 크게 실패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되었고, 그래서 승리적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과 대결하고, 그러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이것을 보람과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새로운 마음과 의로운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 자신 안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복음을 배척하든 말든, 이 복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귀중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잡고 있는 손을 놓치게 되면 그 순간 세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는 동안 우리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으로 주님과 더불어 생명 있는 연합이 이루어져 살면, 이것이 바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 샘 곁의 무성한 가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그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는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지내시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분도 많으십니다. 감정이나 유행, 변천을 따라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좋은데, 바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무지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진리를 올바르게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확실한 분별력으로 진리를 굳게 붙들고, 이것을 마음속에 귀중한 보화로 간직하지 않으면 그 진리로 인한 기쁨을 맛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폭풍이 휘몰아치는 어둡고 험악한 밤을 당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닻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깊은 사랑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는 매사에 능란하고 지혜로운 아이였습니다. 그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의 꿈을 보아서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생각을 알 수가 있습니다. 꿈이란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대개의 경우 일상 생활에 품고 있는 생각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밤중에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은 그의 관심이 형들의 관심하고는 그 차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꿈쟁이라고 조롱하기도 하고, 마침내 그 땅에서 완전히 손보아 없애버리기로 모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요셉이 애굽에 종의 신분으로 들어가자마자 성경에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종으로 돈 주고 샀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보호하시려고 만전을 기했습니다. 요셉은 비록 종의 신분이었지만, 그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상전이 볼 때도 모든 일을 마음놓고 맡겨도 될 사람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노예의 신분으로 보디발 장군의 집안 살림도 맡아 하는 청지기가 된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가정의 총무 책임을 지게 되었고, 그가 책임을 지게 되면서 그 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그 후에 요셉이 무서운 시험을 당했습니다. 상관의 아내의 유혹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요셉이 한 말은 너무 은혜스럽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요셉과 함께 하셨고 의의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더구나 요셉의 하나님은 요셉의 기쁨이었기 때문에, 그는 감히 하나님을 슬프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로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가면 감옥 안에 복이 임했습니다. 요셉은 전옥 밑에서 감옥의 일을 보게 되었고, 같은 방에 있는 죄수들을 돕는 상담역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의 나뭇가지는 항상 담장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쳤습니다. 어떻게 요셉이 이런 복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요셉은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샘 곁에 심겨진 열매가 풍성한 나뭇가지였습니다. 그 샘은 무엇입니까?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처럼 삶의 뿌리를 하나님의 깊은 샘에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환경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찍이 가정에서 자라면서 아버지 슬하에서 경건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가 생활처럼 되어 있는 애굽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앙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가정을 떠납니다. 군 복무를 위해서 부모님 슬하를 떠납니다. 직장 때문에 가정을 떠납니다. 새 가정을 이루고 부모를 떠납니다. 그런데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믿음의 뿌리를 샘 곁에 내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생활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일시적인 감정의 물결에 휩쓸려서는 안됩니다. 특별성회를 하는 동안은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고, 열심이 생기는데, 그 뜨거운 계절이 지나가 버리면 아무 것도 없는 허탈감 속에 빠지고 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마약이라고 악평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거품처럼 떠올랐다가 가라앉고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면, 그런 말을 들어 마땅합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감상주의가 아닙니다. 환상, 환각은 더욱 아닙니다. 기독교는 생명입니다. 감상주의에 빠지는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회에서 무능한 사람으로 도태되고 맙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이기 때문에, 그 가지가 힘차게 뻗어나가 사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 모두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결코 가뭄이 드는 일없이 언제나 푸르게 힘차게 뻗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은 큰 축복입니다.

 

샘 곁에 심겨진 나뭇가지라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의 은밀하심이 그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아서는 열매를 맺게 하는 나무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이 나무 뿌리가 공급받는 샘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밀하심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신비로운 것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축복을 내리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영원한 기업의 상속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축복은 무궁무진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수 샘은 무진장입니다. 하나님의 샘은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여러분, 샘 곁에 심겨진 나뭇가지는 언제나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합니다. 사막지대는 수분이 없기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있다면 모래뿐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사막지대를 여행하는 나그네들은 물을 많이 준비해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길을 잘못 들거나 물을 만나지 못하면 목이 타서 죽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막지대에 나무가 자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밑에는 샘이 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호수가 있습니다. 이 호숫가에는 나무가 울창합니다. 이 호수를 우리는 오아시스라고 합니다.

 

이 메마르기가 사막과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시들고 마르지 아니하고 싱싱하게 뻗는 나뭇가지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삶의 근본에는 영원히 솟는 샘이 있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족합니다. 의욕이 넘칩니다. 사랑이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며 승리 생활을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중단되는 법이 없습니다. 비가 오면 흐르는 시내가 아니고,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에 계속 흐릅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어린 시절에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것이 아닙니다. 늙어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은혜 받기를 원하고 또 우리 평생 은혜 속에 살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의 나무가 하나님의 샘 곁에 심겨지면 됩니다.

 

시편 128편 4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이런 계속적인 축복, 다함이 없는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그리고 하시는 사업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은 다른 축복을 동반합니다.

 

샘 곁에 심겨진 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사실 나무가 일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샘 곁에 심겨져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데, 무슨 떠들썩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한 가운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보면 열매 맺는다고 떠들고, 은혜 받았다고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참 열매도 참 은혜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선한 사업 한다고 신문에 기사화하고 선전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삶의 방법과 너무 다릅니다. 예수님은 정말 선한 일은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샘 곁의 무성한 나뭇가지처럼 담장을 넘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영향력은 멀리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축복이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만을 위하여, 또는 내 가족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담장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어다"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 생활 표어를 "일어나 빛을 발하자"로 정했습니다. 빛을 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축복이 담장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축복은 절대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도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해치지는 못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활쏘는 자가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건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어떤 역경에 처해도 능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요셉의 간증대로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이 요셉의 간증이 저와 여러분의 간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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