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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관계 맺기(눅 5:27-32)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6.

관계 맺기

누가복음5:27-32

 

논지 : 성도는 죄인을 피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죄인을 만나 인간관계를 맺고 복음을 전하여 회개케 하여 생명을 구원한다.

 

1. 레위 선택됨 (27-28)

 

1) 레위라고 하는 세리가 오늘 성경에 나옵니다.(27a) 마태복음에는 이 동일한 인물은 마태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9:9-13) 세리라고 하면 오늘날로 치면 세무공무원이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무공무원은 세금을 걷어서 국가의 여러가지 일을 잘 하게 하는, 귀한 일을 하는 그런 분이 바로 세무공무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세리는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든지 인정을 받는 그런 직업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의 국가에서 세금을 걷는 법과 규칙을 정해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갔는데 백성들의 생활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세금을 걷어갔습니다. 법과 규칙 자체도 아주 가혹하게 만들어졌는데, 그 일을 집행하는 세리들은 한술 더떠서 정해진 것보다 몇배를 더 걷어서, 정해진 만큼은 국가에 들여놓고 나머지는 다 개인적으로 자기가 착복을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사람들에게 많이 착취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세리 그러면 사람들에게는 탐욕적인 사람, 무자비한 사람, 가혹한 사람,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이렇게 세리들이 세금을 걷어서 그 세금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쓰여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나라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고 하는 그런 일들에 쓰여져야 하는데, 그렇게 쓰여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당시에는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정부, 정복자들에게 그 세금이 들어가서, 정복자들 좋은 일에만 사용이 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아무 혜택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세리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그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다 정복자들을 위하는 일이고 일할 사람들 편에서 보면 매국노요 원수같은 사람으로 생각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세리를 미워했습니다. 경멸했습니다.

 

또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세리를 죄인으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레위는 비교적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생활도 넉넉하여 남부럽지 않게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증오의 대상이고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 주위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넉넉하게 살았지만,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데 보람있고 기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가운데에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보람있고 가치있는 인생인가? 내 이 직업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된 일인가? 그 문제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습니다.

 

2) 그렇게 회의를 가지고 있는 채 갈등을 가지고 있는 채 삶을 살아가는 중에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시다가 일을 하고 있는 레위를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레위를 보셨다고 하는 것은 통찰력을 가지고 레위의 사람됨됨이를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27b)

 

그 당시의 세리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레위를 보니까 탐욕적이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혹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됨됨이가 진실되고 신앙심이 있는 것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레위 마음 가운데 있는 그 회의와 갈등, 그런 것들을 예수님께서 간파를 하셨습니다. 레위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수용성이 높다고 하는 것은 복음을 전했을 때에 그 복음을 잘 받아들인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의 수용성이 낮다고 하는 것은 복음을 전했을 때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주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한 상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떨 때는 복음의 수용성이 높을 때가 있고 낮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상시에 평안하고 아무 문제가 없이 살아갈 때에는 일반적으로 복음의 수용성이 낮습니다. 그럴 때에는 복음을 전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다든지 삶의 큰 변화가 있게 되면 복음의 수용성이 높아서 그럴 때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잘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때보다, 질병에 걸려서 건강에 어려움을 겪을 때 복음의 수용성이 높습니다. 편안하게 자유롭게 삶을 살아갈 때보다 감옥에 갇혀서 자유를 잃었을 때가 복음의 수용성이 더 높습니다. 가정에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다든지, 자녀가 무슨 말썽을 피운다든지, 혹은 또 나쁜 문제 뿐만 아니라 좋은 문제로 큰 변화가 생겼다든지, 그럴 때가 다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때입니다. 그럴 때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3)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그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것을 보셨고, 그리고는 레위에게 “나를 좇으라”고 부르셨습니다.(27c)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자, 인생길을 나와 함께 가자, 나와 동행하자, 그렇게 레위를 선택하시고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 가시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예수님 걸어가신 길은 희생과 고난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일생을 희생하시고 고난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시는데 레위를 택하셔서 ‘나하고 같은 길을 가자’, 어려운 길을 가자고 초청을 하신 것입니다.

 

4) 레위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죄 가운데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됐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28) 오늘 성경에 28절 말씀을 보니까 레위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정된 직업, 좋은 수입 이 모든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모든 것을 헌신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헌신이라는 것은 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을 헌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를 믿고 새로운 사람이 되면 가치관이 완전히 바뀝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나를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 삶을 살아왔는데, 예수 믿고 나서부터는 예수만을 위해서 삶을 살기 때문에,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고 예수님꼐 내 모든 삶을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같은 경우에는 자기 직업, 자기 소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인생 전체를, 자기 시간을 주님을 위해서 바쳤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런 종류의 헌신 말고도 가령 자기 직업을 가진 채, 자기 소유를 그냥 가지고 있는 채 여지껏 까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삶을 살던 것을 이제는 바꿔서 자기의 직업과 자기의 모든 소유를 사용해서 주님을 위해서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또다른 헌신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을 만나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급진적인 결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2. 잔치 베푸는 레위 (29)

 

1) 레위가 이렇게 사람이 새사람이 되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잔치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29절 말씀을 보면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됐어요.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큰 잔치를 베풀어서, 자기의 새로운 영적 생일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원한 것이지요.

 

그리고 내가 이제 새사람이 되고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표를 한 것입니다. 내가 이전의 그 세리가 아닙니다, 탐욕으로 뭉쳐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던 세리가 아닙니다, 이제는 내가 예수 믿고 완전히 새사람이 됐습니다. 이제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게 됐습니다. 내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버리고 희생하고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게 됐습니다. 모든 친구들 앞에서, 모든 자기 아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믿게 된 것, 자기가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공표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변화 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어떤 분들은 성경 찬송을 신문지 같은 것에다 둘둘 말아가지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교회를 다니지요. 그런데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고 변화가 되면 예수님이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새사람이 됐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 나 예수 믿는 사람이요, 이렇게 변화된 사람입니다, 공표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레위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고 그 사람들에게 자기 믿음을 공표했습니다.

 

2) 또 사람들을 전부 모아서 예수님을 초청해서 자기 친구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죄 가운데에서 죽어가는 죄인들, 그 사람들과 예수님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님게로부터 복음 증거하는 말을 듣고 변화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요. 세리의 친구니까, 다 세리든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사람들, 혹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종교적인 지도자로부터 정죄받아서 죄인된 사람들, 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 전부 모아서 예수님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레위는 자기 자신과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전부 모아서 자연스럽게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만든 것이지요.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하고 예수님하고 만나는 접촉점을 만들었습니다. 접촉점이라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의미있는 만남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접촉점을 만들 필요가 있는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기쁜 문제가 있을 때, 전화함으로 접촉점을 가지게 됩니다. 혹은 편지를 보냄으로, 혹은 카드를 보냄으로, 혹은 작은 반찬 같은 것을 만들어 보냄으로 접촉점을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집에 어떤 사람이 뭘 배달하러 왔어요, 그저 배달와서 배달한 물건 받고 말고 하는 것은 특별한 만남이 아닙니다만,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차 한잔 하시라고 하고, 차를 대접을 하는 그 순간서부터 의미있는 만남, 접촉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웃에 있는 식구들을 초청해서 같이 식사합시다, 우리 집에 모셔놓고 같이 식사를 하게 될 때에, 그 때부터 인간관계가 새롭게 형성이 되는, 관계를 맺는 접촉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읽는 잡지에 보니까, 어느 교회의 여전도회에서 하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부인들이 남편, 믿지않는 남편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믿지 않는 남편들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물론 먼저 다 신청을 하고 회비도 내고 그리고는 부부를 초청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의 식당에 잔치를 마련하고 오라고 하면 잘 안오거든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교회의 문턱에 들어서면 무슨 큰 일이 나는 줄 알고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닌 다른 식당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중립적인 장소입니다. 교회가 아닌 다른 중립적인 장소에다가 자리를 마련하고, 그리고는 목사님이 가서 예배드리고 설교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다른 교회 안의, 혹은 신앙 좋은 교수님, 자녀교육이라든지 건강문제라든지 그런 것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시고 강의를 듣고, 그런 일들을 통해서 접촉점을 만드는 것이지요.

 

레위는 자기 친구들을 전부 초청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접촉점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친구들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꾼 분,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분, 그 분과 자기 친구들을 예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서 소개를 한 것이지요. 레위가 직접 나가서 자기 친구들에게 나 이렇게 예수 믿게 됐다, 나 이렇게 변화됐다 하는 것을 직접 전하지 않구요, 지금 이런 방법은 자기 친구를 잔치를 만들어서 자기 친구를 예수님께로 안내하고 인도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내가 직접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런 훈련이 잘 안되어 있으면, 우리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린다든지, 혹은 성경공부를 한다든지, 그래서 훈련이 잘 된 구역장님이나, 훈련이 된 분, 혹은 교역자나 초청해서 같이 만나게 하고, 그래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고 안내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위는 이렇게 잔치를 베풀어서 자기 친구들을 예수님과 만나는 기회를 만들고 자기 친구들을 구원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불신자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접촉점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다가가서 불신자들을 만나고 불신자와 접촉점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번 주말이 설날입니다. 설날같은 기회는 좋은 접촉점이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만남, 그런 접촉점을 잘 살펴서 지혜롭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죄인 구원 (29b-32)

 

1) 예수님께서 세리의 집에 들어갔어요. 세리의 친구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생님인데, 세리들 죄인들 그런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질 하고 비방을 하였습니다.(30)

 

그들은 사회적인 종교적인 편견에 사로잡혀서 죄인들을 비방하고 정죄하고, 죄인들을 만나지 않고 죄악된 세상과는 접촉을 피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우리가 거룩하게 경건하게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죄인들을 정죄를 많이 하구요, 또 죄인들과의 접촉을 피합니다. 죄인들과 접촉하면 죄에 물들까봐, 또 죄인들과 접촉하면 내가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인데, 이 명예가 손상이 될까봐 그래서 접촉을 못하지요. 저녁에 명동에 나가보니까, 명동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희한한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여기 앉아 있는 분들 보니까 대개 까만 머리 아니면 하얀 머리인데, 명동에 가보니까 색깔이 아주 다양하고 찬란합니다. 머리카락 색깔이요. 어떤 사람은 자기 한 머리에 색깔이 여러가지에요. 참 아주 희한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옷차림도 얼마나 현란하고 찬란한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뭐 용기가 없어서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예를 들어서 점잖은 목사가 명동의 그 아주 찬란한 사람들하고 같이 포장마차 같은 곳에 국수 먹고 앉아 있으면 여러분은 지나가면서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 목사가 정신 나갔네, 이런 생각을 할겁니다. 우리가 다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의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죄인으로 정죄하고 그 죄인들을 만나는 예수님을 비방을 했습니다.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죄인들을 만나지 않으면 그들을 구원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2)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과 회복의 사역이다.(31-32)

 

우리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방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불명예스러운 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죄인들에게 다가가서 그 죄인들의 낮은 자리까지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 아닙니까? 병든 사람이 있는데, 그 환자에게서 내가 병이 옮을까봐 아예 가까이 가지도 않아요, 그러면 무슨 의사가 그렇겠습니까? 의사는 환자에게 다가가서 그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의사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재판관이 아니고 의사입니다. 죄인들을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고 죄인들에게 다가가서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그 생명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하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우리가 다 죄인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의 자리까지 낮춰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죄인된 사람들과 격리되어서 교회 안에서 우리 성도들끼리만 모여서 우리 믿음을 지키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만 원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본래 사명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의 사명은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친구삼고 그들과 인관관계를 맺고 그들 속에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 사람들과 자꾸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네에서 반장을 많이 맡으십시요. 통장은 뭐 좀 생기는 게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반장은 생기는 게 없어서 아무도 안하려고 합니다. 귀찮게만 생각하고. 예수 믿는 우리가 반장을 맡아야 합니다. 반장을 맡으면 집집바다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잖아요. 반장 맡으면 반상회를 소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반상회를 소집해서 반 일도 하고 복음 전하는 일도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지요. 남자분들은 조기축구회에 들어가십시요. 조기축구회 같은 곳에 들어가서 믿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친구가 되고, 축구도 하고 복음도 전하고 그런 일들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위의 전도할 사람이 없다, 이런 말씀을 하지 마시고 안 믿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친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과 인간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태신자를 작정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지난주에 우리가 중보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앉아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하고 담대해진 능력을 가지고, 기도하고 지혜를 얻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들, 세상 속으로 흩어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십시요. 그들과 인간관계를 맺으시고 그들과 친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생명을 구원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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