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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그리스도인의 생테크(행 20:22-24)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6.

그리스도인의 생테크

사도행전 20:22-24

 

논지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완수)하는 것이다.

 

오늘 설교제목이 조금 이상하지요? ‘그리스도인의 생테크’. ‘생태크’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것도 하나의 신조어입니다. 미국의 직장인들을 상대로 사역하시는 Bob Shank 라는 분이 자기가 사역하는 목회 철학을 정리해서 “Total Life Management”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번역하는 분이 “생테크”로 제목을 붙였습니다. “재테크” 같은 요즘 신조어를 적용해서 “생테크”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생테크” 라는 것은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이 있는데, 그 인생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갈 것이냐는 것이 생테크입니다. 인생을 효과적으로, 생산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Shank는 그 책에서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언제나 측정 가능하고, 주어진 기간 안에 성취할 수 있으며, 일단 성취된 다음에는 새로운 목표로 대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목표는, 그 목표를 결정해 놨을 때, 가시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목표가 달성되면, 또 다른 목표로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살아가면서 목표는 자꾸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은 측정할 수 없고, 평생토록 완전하게 달성될 수 없으며, 살아가면서 단지 재정의되고 재진술 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p.29)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은 눈으로 가시적으로 그 성과를 측정할 수가 없고, 일생동안 조금씩 정의를 수정할 수는 있지만, 똑 같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인생의 목적이 분명할 때, 의미 있는 삶과 균형 잡힌 인생 경영(생테크)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은 없이 목표만 있는 사람은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는 그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른 살에 죽고 일흔 살에 무덤에 묻힌다.(p. 84)고 이야기 합니다. 서른 살까지 목표를 설정해 놓고, 서른 살 까지는 열심히 해나가다가 목표가 완성이 되는 사람이 있고, 완성이 안 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다음 부터는 별다른 목표가 없이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40년동안 인생을 살아가다가 70살에 무덤에 묻혀버리고 인생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자꾸 바뀌는 목표만 따라서 살아가다 보면, 그 목표가 달성이 되든, 달성이 되지 않든 간에 무의미하고 무질서한 인생, 따분하고 지루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가. 바울의 생테크

 

1. 사울의 인생

 

1) 오늘 24절 말씀을 보시면, 사도 바울이 자기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진술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가졌는데,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복음 증거하는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이라는 사람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은 바리새인이고 율법의 선생이었습니다. 매우 똑똑하고, 우수한 엘리트였습니다. 바울되기 전에 사울도 역시 인생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사울도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겠다는 목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의 선생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율법을 가르쳐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순종케 하므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의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일 그 러한 목적을 가졌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울이 예루살렘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들을 목표로 해서 율법을 가르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러한 인생의 목적을 가지지 못하고 다른 인생의 목적을 가졌습니다.

 

 

 

2) 사울은 자기가 판단하기에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박멸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인생의 목적을 가지 있었습니다. 잘못된 목적을 가진 것입니다. 사울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각 집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핍박하였고, 예루살렘에서 목표가 달성된 후에는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려는 목표를 세우고 삶을 살았습니다. 잘못된 인생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3) 비록 잘못된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잘못된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놓고 사도 바울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잘못된 열정과 잘못된 열심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사울의 일하는 자세와 태도를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행 9:1)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인생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니까 그 사람의 태도가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사람의 태도,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4) 그러다가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가 핍박하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행 9:4,5) 사울이란 사람의 자아가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율법의 교사로서, 바리새인으로서 사울이 가졌던 인생의 목적과 인생의 목표가 모두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2. 바울의 인생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바울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바울은 전혀 다른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예수께 받은 복음 증거의 사명을 수행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일생동안 복음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행 20:24). 바울의 그 인생의 목적을 위하여 3번에 걸쳐서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지중해 지역을 다니면서 그 당시의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 전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곳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각 도시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에베소라는 지역에 가면, 어떻게 전도하고 어떻게 교회를 세울 것이며, 고린도에 가면 어떻게 전도하고 어떻게 교회를 세울 것인지 각 선교여행마다 각각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 이제 3차 선교여행을 마치면서, 사도행전 20장에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사도 바울의 목표였습니다. 예루살렘 다음 목표는 로마였습니다. 그는 이 목표를 향해서 나아 갔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데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장애물들이 그를 가로막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결박되어 감옥에 가게 될 것이고, 많은 환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많은 고난과 희생이 예상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생명을 잃어버릴 최악의 상황도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바울의 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복음증거의 사명, 인생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생명을 잃어버릴 위험조차도 감수하면서 그 목적을 향해서 나간 것입니다. 생명을 버릴 각오, 순교할 각오를 가지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3) 24절 말씀에 의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사명이 더욱 소중했습니다. 물론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생명은 온 천하보다도 고귀한 것이어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생명도 사명이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명은 없이 생명만 있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먹고 살고, 쾌락을 즐기는 것만 가지고는 인생의 가치, 생명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에 가치있는 생명이고 의미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생명, 자기 인생을 ‘복음 증거’라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데 전적으로 투자한 것입니다.

 

 

 

나. 그리스도인의 생테크

 

1. 그리스도인의 인생목적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사도 바울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인생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목적도 복음증거의 사명을 수행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그 아들을 보내서 구원하여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장로교신조)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복음 증거의 사명을 수행함으로 인생의 목적을 다 했습니다. 오늘날 목사는 교회에서 또는 선교현장에서 복음증거의 사명을 수행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인생목적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다 교회에서, 선교현장에서 복음증거의 사명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 다 자신의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그 인생목적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인은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회사원은 자기 직장에서 일하면서, 가정주부는 가정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큰 틀은 같지만, 삶의 현장에 따라서 조금씩 그 인생목적이 다른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인생목표

 

자기 삶의 현장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의 목적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인생목표도 너무나 다양합니다. 자기 직업 속에서 때로는 말로, 때로는 성실하게 일하므로, 때로는 그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냄으로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목적을 놓고 각각의 삶의 현장 속에서 목표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은 업무실적, 경영실적을 높이는 것, 또 사무실을 화목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각 삶의 현장에 따라서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대기업에 근무하시는 집사님 한 분을 만나서 대화하는 중에 기도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자신이 근무하는 기업의 사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은 기도제목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제 마음 가운데에, 이 분이 야망이 크신 분이라고 생각이 되어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다음에 설명하기를, 자기가 근무하는 기업을 복음화시켜야 할 텐데 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서 제대로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장으로 책임을 지고, 회사의 업무를 신장시킬 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를 복음화시키고자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장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목적이 분명하고, 그 다음에 회사 사장이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에, 그 목표는 참으로 좋은 목표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과 목표를 잘 분간하지 못하고 혼동하시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목표가 목적인줄 착각하게 되어 삶이 혼란스러워지고, 삶의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서 그때 그때 변화되는 목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학생이 성적이 많이 올라가지 못했다고 자살하는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 학생들은 자기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분간하지 못한 것입니다. 큰 인생의 목적을 세워놓고, 그 목적을 향해서 나아 가다가 목표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데,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가정 주부들 가운데 자녀들이 성장하고 결혼해서 곁을 떠나게 되면 그만 허전해 져서 삶이 무의미해지고 우울증에 빠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목적과 목표를 분간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녀가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되어 있으니까, 자녀들이 떠나고 나면 목적이 없는 인생이 되고만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목적은 이 자녀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워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 목적을 향해서 때로는 자녀의 취직이나 결혼을 놓고 기도하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표가 계속 변하는 것입니다.

 

Christianity Today라는 미국의 기독교 잡지가 있는데, 금년 8월호에 보니까 실리콘 벨리에서 성공해서 큰 부자가 된 마이클 양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이 표지인물로 나왔습니다. 내용을 보니까 실리콘벨리 안에서 IT산업의 경영자들이 모여서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늘 피를 말리는 긴장을 하면서 기업을 경영합니다. 특히 IT산업 같은 경우는 기복이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더더욱 피를 말리는 긴장 속에서 경영해 나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사업이 잘 될 때는 기고만장하고, 사업이 잘 안될 때는 잠도 못자고 불안해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같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기업의 실적이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은 단기간의 목표에 불과한 것인데, 그 목표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뒤흔들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때부터 기업경영의 기복과는 상관없이 평안을 누리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표는 상황에 따라 자꾸 바뀝니다. 또 성취가 될 때고 있고 안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바뀌지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에 따른 그때 그때의 목표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의 목적을 가지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취 가능한 목표를 늘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가 목표가 되었던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이 그의 목표가 되었던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직장인은 인생의 목적을 위한 목표를 직장 속에서 가져야 합니다. 가정 주부는 가정 속에서 목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퇴직하여 직장이 없는 분도 봉사의 목표, 전도의 목표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심지어는 건강이 나빠서 누워있고, 활동을 못하는 분들도 목표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심방을 다니다가 건강이 나빠서 누워있는 분들을 만납니다. 저에게 ‘저는 아무 쓸모도 없는데, 죽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여러분, 활동을 못하는 분들도 기도의 목표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 속에서 복음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인생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그리고 목표는 다양한 목표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현장속에서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분명한 인생의 목적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갈 때에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인생, 활력과 힘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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