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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차 신학세미나(8.20): 이오갑 교수님과의 칼빈 사상 일문일답

by 【고동엽】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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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케리그마 신학세미나 프로토콜(8.20.): 이오갑 교수님과 특별 세미나

 

경건회: 요 21:15-17

베드로의 치명적 사건은 예수 부인의 사건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지만, 고향으로 간다. 예수는 베드로를 찾아가서, 세 번 질문한다. 이전의 베드로라면 당장 사랑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나, 배신 이후의 베드로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또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나? 주님은 우리의 충성심을 묻지 않고 사랑을 물으신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무엇으로 따르는가? 사랑함으로써 따른다.

 

이오갑 교수님의 간단 설명

칼빈은 당시의 가톨릭과 소종파(재세례파)를 반대했다. 그의 종교개혁 신학원리는 다음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1. 오직 하나님으로만

루터가 공로사상을 배격했다면, 칼빈은 가톨릭의 우상화 배격(미사, 성상 등)했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 초월성 얘기할 수밖에 없다.

 

2. 오직 성서로만

칼빈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책으로 보지만, 그렇다고 축자 영감을 주장하진 않는다. 칼빈도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3. 신자들의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개혁

인간의 문제는 끊임없는 욕망인데, 죄에 물든 욕망은 자기 중심적으로 간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하나님마저도 우상으로 만들고, 교리도 자기 입맛대로 만든다. 그러므로 자기부정이 필요한데, 이것은 끊임없는 개혁이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개혁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다양하다. 왜냐면 개혁해야 한다는 이 원리 때문에 그렇다. 지금의 여러 장로교회는 끊임없는 자기 개혁의 결과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한국, 일본, 유럽이 다르다. 칼빈 이후 500년이 지나서 보니 다양한 결과를 가져왔다. 개혁교회의 정체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오갑 교수님과 일문일답

 

문: 종교개혁의 원리에서 '오직 믿음으로'가 빠져있다. 왜 그런가? 그리고 개혁이 발전인가? 아니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답: 칼빈 사상에서 중요한 것을 간추려 보니 나는 '오직 하나님', '오직 성경', '신자의 자기부인'으로 요약했다. 그리고 말씀은 그 자체가 열려 있다. 따라서 개혁은 환언이 아니다. 성령은 현재적 역사다. 말씀이 성령의 역사에 따라 각 개인에게서 다르다. 칼빈은 교리를 명료하게 하는 데 일생을 헌신했다(설교 3000편, 글로 명료화한 것은 기독교강요).

 

문: 칼빈은 율법주의자인가?

답: 칼빈은 칭의를 말한다. 그런데 그는 인간의 약함, 죄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한다. 그래서 그는 실제 목회에서 신앙생활을 타이트하게 강조한다. 이것 때문에 칼빈은 율법주의의 문을 연 사람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장로교가 율법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전통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약하고 죄인이기에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네바 대학의 설립 근거는 목회자 양성이었다. 우리는 칼빈이 신학적 현실주의자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

 

문: 칼빈이 제네바에서 거의 율법적인 것을 강조한 이유는?

답: 당시는 전쟁 상황이었다. 제네바는 사보이 공국 소속이었다(메디치가 통치). 제네바는 가톨릭 주교가 위임 통치했다. 제네바가 자유도시로 성장하려면 주교를 몰아내야 했다. 제네바는 시장 도시였는데, 도시 상인이 주교의 억압을 싫어했다. 그래서 제네바 브루주아는 개신교를 수용했고, 비록 독립을 했으나 위태한 상황이었다. 이 때 베른이 원군을 보냈다(사보이 공국과 프랑스는 대척했기에. 베른은 당시 프랑스 소속). 따라서 당시에 혼란, 무질서는 치명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엄격함이 강조되었다. 칼빈 자신의 성격도 일부 좌우한다.

 

문: 칼빈주의와 칼빈적을 구분하는가?

답: 칼빈주의와 칼빈적을 구분하자. 칼빈 사상에서 위험성은 율법주의화의 개연성이 있다. 나는 역사적 칼비니스트를 동의 못 하겠다. 실제로 칼비니스트는 결코 칼빈적이지 않다. 칼빈적 곧 칼비니언이 좋지 않을까.

 

문: 칼빈의 예정론이 목회 실제에 타당한가?

답: 기독교강요만 봐서는 칼빈의 예정론을 파악하기 힘들다. 칼빈이 주장한 예정론의 필요성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칼빈의 이중 예정은 오늘의 상황에서 수용하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의 예정론이 의미하는 바는 목회적 유용성이 있을 것이다. 이 교리는 가톨릭으로부터 박해의 현실에서 주장한 교리이다. 개신교도들에게는 구원의 확실성이 요청되는 상황이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것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 필요했다.

 

문: 칼빈은 에베소서 1장 4절,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는 구절을 어떻게 보는가?

답: 칼빈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강조한다. 그러나 논리적 맥락은 약하다. 칼빈은 각 개인을 이중 예정으로 선택했다고 본다.

 

문: 그렇다면 칼빈이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가? 집단적, 대표자로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바울도 히브리 사유에서도 개인보다는 대표자로 본다. 집단 인격 개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답: 칼빈의 교리는 논리적 완결성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

 

문: 하나님 영광은 가톨릭도 주장했다. 칼빈과 어떤 면이 다른가?

답: 가톨릭은 율법적 수행 곧 자기 의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채워나간다는 것이다. 소위 관념적 신학이고, 자기가 영광을 받는 신학이다. 따라서 칼빈이 보기에 가톨릭은 신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신학이었다. 구원의 주체를 논할 때, 칼빈은 하나님이 주체라고 봤다. 그런데 가톨릭은 인간이 구원을 획득한다.

 

문: 칼빈이 하나님 주권을 얘기하고 인간의 무 가치성을 주장한다. 그러면 타락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답: 칼빈은 교리적으로는 전적 타락을 주장하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인간 창조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하나님은 법칙에 얽매인 사랑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사랑을 원하셨다. 인간을 그렇게 창조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자유를 잘못 사용한 것이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자유는 파괴되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언가 다른 피조물과 인간은 다른 점이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는 자유가 회복되었다고 본다.

 

문: 칼빈의 성화는 모호하다?

답: 칼빈은 “하나님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구절을 단정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구원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삶에서는 인간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본다. 칼빈에게서 성령의 역사는 나를 통해 드러난다. 내가 성경을 읽는데, 성령이 나를 깨우친다는 것이다. 칼빈에게서는 하나님의 사건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사건인 면이 많다. 칼빈의 가장 큰 특징이 역설 아니겠는가.

 

문: 칼빈의 종말론은?

답: 칼빈의 종말론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세상에 대한 상대화. 이것은 세상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다. 단순히 도피주의, 열광주의, 신비주의가 아니다.

 

문: 칼빈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집어 본다면?

답: 칼빈의 영성이 드러난 것은 위그노, 네덜란드 독립주의자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개혁교회, 한국의 기독교 장로회 등등을 언급할 수 있겠다.

 

문: 칼빈의 신 중심적 사상을 삼위일체 중심적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답: 칼빈의 하나님 이해는 초월한 하나님(신 중심)과 내재의 하나님(그리스도 중심)의 변증법적 해석이다. 심판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의 공존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강하다. 이것을 키에르케고어의 역설로써 긴장 관계의 지속을 말할 수 있다. 칼빈의 신 중심 해석에서 성령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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