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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기독교강요선] 8장 발제

by 【고동엽】 2021. 12. 17.

케리그마 신학 세미나 / 발제 : 임 기도

 

기독교 강요 1<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15장 창조된 인간의 본성, 영혼의 기능, 하나님의 형상, 자유의지, 인간성의 원초적 순결에 관한 논의

 

* 타락한 인간의 본성 : 인간의 영혼은 거의 부패하였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1. 인간은 하나님의 손으로 흠없이 창조되었으므로, 그 죄의 책임을 창조주께 전가시킬 수 없다.

2. 육체와 영혼의 차이점.

3.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4. 하나님 형상의 참 성질은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다고 말하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5. 영혼의 유출에 관한 마니교의 오류.

 

* 아담의 타락에 비추어 비판받는 철학자들의 영혼관

 

6. 영혼의 그 기능들

7. 참된 근본적 기능으로서 오성과 의지

8. 자유 선택과 아담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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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 인간의 창조

 

(1) 인간 내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1. 15. 1,2>

인간이 하나님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선함을 보여주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두드러진 실례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처음에 말한 바 와 같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에는 창조될 때의 우리의 상태와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의 상태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아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비참한 파멸에서 부패하고 기형이 된 우리의 본성이 어떠한가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인간 창조를 이해하는 것이 거의 유익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현재 처해있는 비참한 상태를 논의하기 전에, 그가 처음 어떤 상태로 창조되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가치 있음은 확실하다. 지금 우리는 인간의 자연적인 악들을 본성의 창시자이신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 위하여 그러한 악들만을 추출해 내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불신앙은 어떠한 결점을 지니고 있든지 그것이 어떤 점에서든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할 수 있으면, 이러한 변명으로서 충분한 변호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신앙은 비난 받으면, 하나님과 싸우고 자기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잘못을 하나님께 전가시키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신성을 더 경건하게 언급하는 듯이 보이기를 원하는 자들까지도 그들의 부패를 고의로 본성의 탓으로 돌리고, 비록 다소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역시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성에 어떤 결함이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수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이 온갖 구실을 다 찾아 그 자신의 악에 대한 책임을 어떤 방법으로든 다른데에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악한 의도에 부지런히 대항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체의 간계를 제거하고 모든 비난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하기 위해 인류의 불행을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 흙과 진흙에서 만들어 졌을 때 (2:7, 18:27) 인간의 교만이 굴례 씌워졌음을 깨달아야 한다. . “흙집에 살고 있을” (4:19) 뿐만 아니라 흙과 먼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 자기가 잘났다고 뽐낸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황송하옵게도 질그릇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불멸의 영의 거처로 삼기를 원하셨으므로, 아담은 마땅히 창조주의 그 크신 관대하심을 자랑할 수 있었다.

 

- 하나님의 형상의 구속사적 의미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을 구원사적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다. 창조와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이라는 구원사 (Heilsgeschichte) 의 각 단계를 통해서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구원사적, 또는 교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그의 사상과 근본의도에 잘 부합된다. (빌헤름 니이젤, 토마스 F. 토랜스, 챨스 파티, L 톰슨, 가브리엘 - PL, 비드메르 등)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을 태초의 상태로부터 정의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인류의 타락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으로부터 완전한 정의를 내린다.

 

칼빈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태초에 아담이 부여받았던 완전성” (integrite)을 의미한다. 그 완전성 덕분에 태초의 인간은 총명해서 올바른 정신으로 즐겁게 살았으며, 잘 정리된 감정들과 순화된 감각들, 그리고 자신 안에 모든 것이 잘 정돈되었으므 .... 자신의 창조주의 영광을 나타내었다 <1.15.3>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그에게서 완전하게 철폐되고, 말소되었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남아 있는 것 마저도 모두가 추하게 일그러졌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했다. < 1.15.3> 이는 타락한 인간에게 아직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더럽혀지고 무너져서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칼빈은 창세기 주석에서 그 형상의 어떤 자취들이 우리들에게 남아있다고는 해도, 그것들은 너무나 부패하고 너무나 불완전해서 그것이 말소되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

 

칼빈은 그렇게 부패한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로부터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밝힌다. “ 구원을 되찾는 출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그것의 회복 가운데 있으며, 그 이유에서 그는 둘째 아담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참된 완전성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1. 15. 4> 여기서 칼빈은 첫째-둘째 아담이라는 바울 신학의 구원사적 관점을 도입한다. 즉 첫째 아담이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자신의 의로 회복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줄 어떤 매개물, 즉 형상을 택한다. 그 형상이 바로 그리스도이고, 그래서 현재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인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 하나님을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해진다 ...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즉 그의 지고한 존엄성으로 인해, 육체의 안목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각들로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으므로, 우리는 마치 거울처럼 그를 통해 하나님을 살펴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밖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하면서 애초부터 그리스도 밖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은 우상이기 때문이다. <1:15 주석 중에서>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사람들에게서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경우, 그들의 형상은 하나의 모호성을 갖는다. “ 현재 이 형성은 성령으로써 중생한 선민들에게 부분적으로 그리고 단편적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하늘에서나 완전한 빛을 얻게 될 것이다.” <1:26> , 신자들이 가지는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일부, 또는 조각일 뿐이어서 여전히 어두움과 불완전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칼빈에게서,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한번 회복된 형상이라고 해도, 그러나 여전히 다시 회복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 “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 ... 으로 새로워진 새 인간에게 있어서, “ 그 회복은 단 순간에 또는 하루만에. 또는 일 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 시간의 지속적인 흐름에 따라서, 말하자면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칼빈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삶의 궤적인 성화의 끝없는 과정을 수반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같이 볼 때, 칼빈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 타락과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 그리고 최후의 완성을 향해 있는 즉 오스만 쿨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간(cet aion-ci) 오고 있는 시간(cet aion qui vient), 또는 이미 (deja)' 아직 아니 (pas encore)' 사이를 산다고 표현되는 신자들의 실존이라는 구원사적 사고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거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창조에 있어서, 완전하게 창조된 아담의 인간성, 그러나 타락에 의해 사실상 소멸된 후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된 인간성,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구속의 은혜 속에서 살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자신 안에 죄와 타락의 뿌리를 가지고 이중적 현실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이루어지고, 발전되는 인간성이라고 이해된다. <이오갑, 칼빈의 하나님의 형상론에서>

 

칼빈의 하나님의 형상론은 그리스도 교회의 전통적인 메시지에 깊히 천착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연법, 또는 자연신학에 열려있다. 그래서 우리는 칼빈의 하나님의 형상론으로부터 도덕이나 인권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늘날 교회 안팎에 만연되어 있는 인간 경시사조나 도덕성의 추락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칼빈의 하나님의 형상론은 그 점에 대해 교회가 교회 자신과 세계에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준다.

 

둘째, 다양한 사상이나 종교, 문화들이 공존해 있는 현대 세계 속에 위치한 그리스도교를 매우 이롭게 한다. 즉 교회가 받은 복음을 선포하고, 그것에 따라 살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해서 존중하며, 최소한으로 적대적이거나 가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줌으로써, 평화롭고 자유롭게 대화하고 선교하는 풍토를 보장해 준다. 그런 점에서 칼빈의 하나님의 형상론은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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