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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경외(출 1:15-22)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2.

생명 경외

출애굽기1:15-22

 

 

 

논 지 :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다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존엄한 것이다.

 

 

 

가. 생명경시 (15, 16, 18, 22)

 

1. 애굽의 왕의 생명경시

 

고대 이집트는 그 당시 세계에서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이집트에는 주변의 다른 소수 민족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별다른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새 왕이 즉위하면서 평화가 깨어졌습니다. 그 왕은 자기네 나라에 들어와 있는 소수 민족인 히브리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나 전쟁이 있을 때에 적과 내통하고 합세할 것이라며 위험한 민족으로 판단했습니다. 또한 국가적인 위기가 있을 때, 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떠나 히브리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게 되면 일시에 노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을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판단하고 그들을 학대하고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정치적인 위험요소는 줄이면서도 경제적인 효용성은 극대화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사람들의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8-14). 그 정책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강력한 정책을 지시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애기를 낳을 때에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고, 여자 아이만 살려 주라고 명령했습니다(15-16). 요즘처럼 성감별의 기술이 발달되었다면 임산부들을 검사하여 여자 아기는 살리고 남자아기는 낙태 시키라고 명령했을 것입니다. 남자의 숫자를 줄여서 인구를 줄이고 정치적인 위협을 줄이자는 의도입니다. 여자의 숫자는 유지가 되어도 위협이 되지 않으므로 노동력은 계속 사용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여러분, 애굽 왕은 인간의 생명을 자기가 정치하는데 있어 하나의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필요하면 살리고 필요 없으면 죽이는 소모품으로 생각했습니다. 자기 정권 유지에 방해가 되면 죽이고, 노동력을 계속 가지기 위해서는 살리는, 인간의 생명을 정치적, 경제적인 판단에 따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경시한 것입니다. 결국 애굽 왕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자기 아들을 비롯하여 애굽 사람의 맏아들이 모두 죽는 하나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다가 자기 아들들이 죽는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현대의 생명 경시

 

그런데 여러분, 오늘 날도 인간의 생명을 수단이나 도구로 생각하는 시류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유럽의 기독교 사상가인 프랜시스 쉐퍼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의 글을 읽어보면, 그 분이 오늘날 현대의 예언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쉐퍼가 그의 책에서 이야기 하기를 “이 시대는 인간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착취하고 다 사용한 뒤에는 폐기 처분해 버려도 좋은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Francis Schaeffer, Everett Koop, 그리스도인의 생명윤리, 16)고 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태인 600만 명을 죽이고, 자기 동족을 300만 명이나 죽였습니다.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손쉽게 대량학살 한 것입니다. 김일성을 비롯한 공산주의 독재자들도 역시 정치적인 목적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죽였습니다. 생명을 경시한 것입니다.

 

정치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재물을 빼앗기 위해서 살인 강도하는 사람도 있고,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들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목적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쉽게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량으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낙태입니다. 태아는 뱃속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눈을 감아 버리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애굽 왕이 애기들을 죽이듯이, 오늘날도 뱃속에 있는 아기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대량살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것입니다.

 

태아는 수정된 순간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고귀한 생명입니다. 1개의 세포가 수정된 지 23일째가 되면 이미 심장이 형성되어 뛰기 시작하고, 45일쯤 되면 뇌가 구성됩니다. 12주가 되면 이미 몸의 모든 형체가 생길 뿐 아니라 손톱과 지문도 발견되고 성 구별도 뚜렷해 지게 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완벽한 하나의 생명이란 것입니다. 존귀케 여겨야 할 생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도 쉽게, 너무도 공공연하게 마치 몸의 귀찮은 부분을 떼어내듯이 낙태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1년에 5500만 명의 아기가 낙태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2억 4천만 인구 중에 160만 명, 한국은 4천 1백만 인구 중에 150만 명의 아기가 낙태로 죽어가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세계2위이고, 인구비례로 볼 때 세계1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신생아로 태어나는 아기는 60만 명인데,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아기는 150만 명이라고 합니다. 2배가 훨씬 넘습니다. 1970년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1700만 명의 아기가 낙태 됐다고 추산되는데, 이는 6.25전쟁의 전사자의 10배가 넘는 수치라고 합니다. 전쟁도 아닌데 전쟁 보다 더 많은 대량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낙태하는 이유로는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가 54.2%로 가장 많다고 합니다. 이 속에는 피임에 실패해서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한 경우가 있고, 또 많은 경우 남아를 선호해서 여아를 낙태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범띠 해, 말띠 해, 용띠 해에는 여자 팔자가 드세다고 해서 여자 아이의 낙태가 급증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중국, 대만,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성비 불균형이 굉장히 심하다고 합니다. 여자아이 100에 남자아이 106이 평균인데, 우리나라는 116, 117, 지역에 따라서는 125,127 로 나가는 지역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하다는 것입니다. 낙태 이유 두 번째는 미혼모의 경우로 16.3%입니다. 문란한 성 풍속과 성 개방적인 생활태도 및 가정의 붕괴로 인하여 낙태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낙태가 의학 기술의 발달과 법의 사문화로 인해 쉬워지게 되니까 성이 더욱 문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낙태의 그 다음 이유는, 터울조절이 9.1%, 경제적 사정이 5.9%, 산모 건강이 4.6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낙태를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경우는 산모의 건강 때문인 4.6% 밖에 없고 나머지 95%는 인간의 생명을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로 생각해서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에 쉽게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종교별로 통계를 냈는데, 무교 32.6%, 불교 46.3%, 천주교 39.4%, 기독교 34.1% (형사정책연구원, 1991)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낙태를 적게 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종교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는 생명경시의 생각이 만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 필요에 따라 쉽게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 옛날 폭력적인 독재자 애굽 왕은 자기 정치적인 목적으로 애기를 죽였는데, 오늘날 우리 시대는 그것과는 별로 다름이 없이 인간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태아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경시의 생각이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나. 생명 경외(17,19)

 

1. 히브리 산파의 생명경외

 

애굽에서 이렇게 생명경시 사상이 강한 중에도 히브리 산파들은 생명을 경외했습니다. 애굽 왕이 추상 같은 명령을 내렸지만, 히브리 산파들은 그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히브리의 남자 아기들을 죽이지 않고 살렸습니다. 이 시대에 전제 군주의 명령을 거역하면 죽을 수도 있고,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자신들의 직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남 살리려다 내가 죽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17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의 명령이 중요하고 무섭긴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왕보다 더 권능 있는 분임을 믿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아기를 죽이라 명령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불이익과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 6번째 계명에서와 같이 살인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고 기초이시므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살을 합니다. 자기 생명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끊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범죄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생명을 주장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조차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살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현재의 삶의 여건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존엄한 한 아기의 생명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생명에 대하여도 경외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히브리 산파들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20-21절 말씀을 보시면, 그 히브리 산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고, 그래서 그들의 집이 왕성하게 되었고, 히브리 사람들은 번성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현대의 생명경외

 

여러분, 우리는 생명 경시의 시대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시대의 풍조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생명을 경외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위인가운데 한 분이 슈바이쩌 박사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쩌(Albert Schweizer)박사는 독일의 고향에 돌아와서 교회에서 설교할 때에 “생명의 경외”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그 설교에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계명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넘겨버려, 동료 인간들의 고통과 생명을 무시하고 사소한 지상의 목표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희생한다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와 다르다 해도 모든 산 것에 대한 자비, 생명에 대한 경외가 도덕률의 시작이요 기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믿고 성경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시대나 유행에 따라서 변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시대, 어떤 환경에서든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은 우리들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가장 존귀한 것이며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막8:36). 여러분, 각 개인은 유일무이하며 특별하며 결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인 것입니다. 생명은 경외하고 존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의과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그런데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다. 그런데 현재 이 부인은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때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이 이 같은 극한적인 상황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이 땅에 태어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의학적인 판단으로 볼 때,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할 수 있는 그 아이가 바로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입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처녀로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미혼모가 되지 않으려고 낙태를 했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하찮은 생명은 없습니다. 하찮게 보이는 어린 생명도 다 존귀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생명을 죽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경외를 받아야 마땅하고 존중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으로서, 생명을 경외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제일 먼저, 우리 성도들은 생명을 경시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알지 못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고 낙태를 경험한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혹은 낙태를 동조하거나 지시한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요한1서 1장 9절에는 말씀하기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하십니다.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제적인 문제나 여러 가지 각종 문제들 때문에 생명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봐야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나라에 만연된 남아 선호사상을 바꿔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혼모가 생기지 않도록 순결교육을 강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이 성을 문란하게 할 염려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학교에서의 성교육이 생명교육과 순결교육에 더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것 보다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결교육을 강화하여 미혼모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혼모가 생겼을 때에 그들을 돌보고 보호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낙태를 반대하는 사회운동 단체들이 있고, 또 그 단체들이 우리나라의 낙태에 관한 법이 약하기 때문에 그 법을 강화시키는 운동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운동들에 우리 성도들이 같이 힘을 합쳐야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시대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생명 경외의 생각을 가지고, 생명경시의 이 시대 풍조와 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생명을 경외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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