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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시 112:1-7)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행복한 사람

시편 112:1-7

 

정신이 온전한 사람 치고 ‘아! 나는 불행하고 싶어라. 나는 불행하고 싶어라. 온 세상의 불행이여, 다 내게로 오라.’고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정말 행복하게, happy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환경에 있을까요? 150평 빌라를 사서 그 집에서 한 달에 생활비를 삼천만 원씩 쓰면서 살면 행복할까요?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느끼고, 마음으로 제일 많이 우는 사람들이 부자들입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가난해도 오히려 행복도가 세계에서 제일 큽니다. 한 달에 오천만 원을 쓰면서 살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한 달에 칠십만 원만 쓰고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환경도 중하지만, 환경이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인생의 나이가 행복과 불행을 가늠합니까?

 

세 주 전인가 네 주 전에 서울의 유명한 교회에 집회를 갔을 때, 그 목사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연세가 얼마예요?”

 

“저에게는 두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고향과 나이는 비밀입니다.”

 

“제게만 말해 주세요.”하시면서 그 목사님이 먼저 목사님 나이를 밝히셨습니다. 할 수 없이 제가 “목사님만 아세요. 저는 ○○살입니다.” 했더니, “그렇게 젊으세요? 일찍 떴다. 젊어서 좋겠습니다. 젊어서 좋겠습니다. 아, 목사님. 젊어서 좋겠습니다.” 하시며 얼마나 부러워하셨는지 모릅니다.

 

제가 정말 그렇게 젊습니까? 그 목사님은 저보고 젊다고 하셨지만, 중학생들에 비하면 어떻습니까?

 

어느 좌담회 때 사회자가 중년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인생의 나이 몇 살 때 제일 행복하겠습니까?”

 

“허, 삼십 대가 좋겠지요.”

 

그때 삼십 대가 “아니오. 이십 대, 청춘의 피가 펄펄 끓는 이십 대가 좋겠지요.”라고 하자, 이십 대 청년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십 대가 뭐가 좋아요? 돈 벌지 않아도 되고, 장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런 걱정 없이 부모 품에서 사는 십칠팔 세, 그때가 좋지요.”

 

그러니까 사춘기 아이가 “무슨 말씀이에요? 유치원 직전의 아이 때,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그때가 제일 좋지요.”

 

그 말을 듣고 한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인생의 모든 나이는 즐겁고 행복한 거예요. 어릴 때나 젊을 때나 장년 때나 늙을 때나 다 행복한 거예요.” 할렐루야!

 

이것이 참으로 멋있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나이가 칠십이 되었는데, 괜히 사십 대처럼, 아가씨처럼 해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 나이에 걸맞게 살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나이에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됩니까?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에 비하면 만족감이 있을지 몰라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만나면 열등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도 명문 대학 출신과 비교하면 기분이 조금 좋지 않을 것이고, 명문 대학 출신이라도 그 학교 최고 일류 학과 출신과 비교하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또 최고 학과 출신이라도 수석한 학생을 보면 열등감이 있을 것이고, 우리 나라 최고 대학에서 수석 졸업을 한 사람이라도 세계 최고 대학 출신을 만나면 기가 죽을 것입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백억을 가지고 있어도 이백억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가난하고, 내가 이백억을 가지고 있어도 천억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가난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이 절대로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세계에서 제일 부강한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에 살면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우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또 미국에 거지가 삼천만 명입니다.

 

1992년 4월 29일 폭동 때, 우리 교민들이 수십 년 간 이룬 코리안 타운의 모든 가게가 잿더미가 되었지 않습니까? 이천 삼백여 개의 큰 상점들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합법의 나라인데 그때는 불법 천지였습니다. 무법 천지였습니다. 흑인들이 몰려와서 그냥 불을 지르고, 뺏어가고, 발로 우리 교민들을 밟았습니다. 그래서 이십 년, 삼십 년 동안 쌓아 놓은 탑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때 우리 장로님들과 함께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이런 방송이 나왔습니다.

 

‘교민 여러분, 지금은 어려운 때입니다. 합법 불법을 따지지 마시고 무기를 챙기세요. 무기를 구해서 지니세요. 그리고 흑인들은 고춧가루를 싫어하니 고춧가루를 준비했다가 흑인이 접근하면 뿌리세요. 밖에 나가지 마시고 집에 계세요.’

 

그때는 집이 불 타는 것보다 목숨을 잃을까 봐 겁이 나서 우리 교민들이 덜덜 떨었습니다.

 

그때 한 의사 장로님의 말씀을 라디오를 통해 들었습니다.

 

“하늘 아래 지구촌에는 미국이 천당이라 해서 미국에 왔더니 미국도 천당은 아니구먼요.”

 

그러니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이 땅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중하지만 그보다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하다.”

 

참으로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환경이나 다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디에 가도 행복을 누립니다. 불행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 속에 있어도 불행합니다.

 

그 사람이 중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에 두 가지를 말해 줍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섬길 때 “할렐루야!”하며 기쁨으로 행복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그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것을 다 갖추어도 하나님 없이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안정이 될 수 없습니다.

 

갓난아기는 아무리 좋은 장난감, 좋은 과자, 좋은 옷을 다 안겨 주어도 엄마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이 조금 부족해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그것이 참 만족인 줄로 믿습니다. 아기는 장난감이 없고 좋은 옷이 없어도 엄마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계시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께 이사가신 집사님이 너무 기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섭섭해서 울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교회를 몰랐답니다. 예수님을 몰랐답니다. 그런데 6년 전에 전셋집에서 이사를 가야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 집으로 이사 올 사람이 없어서 전셋돈을 받지 못해 이사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집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답니다.

 

“아주머니, 지금 방을 보러 가는 사람이 있으니, 잘 보여 드리세요. 집 정리를 잘 하시고 보여 드리세요.”

 

‘이제 됐다! 오늘 방을 보러 오는 사람에게 잘 보여 주어서 이 집에 이사 오게 하고 나는 이사 가야지.’

 

그래서 청소를 하고 기다리는데 두 분이 들어오더랍니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차 한 잔 드시고 이 방도 보시고, 저 방도 보세요.”

 

두 분이 씩 웃기만 하고 방을 볼 생각을 않더랍니다.

 

차 대접까지 하고 나서야 방을 보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전도하러 온 양곡교회 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아주 썰렁하더랍니다. .

 

그런데 전도하러 온 우리 권사님과 또 한 집사님을 보니 마음이 끌려가더랍니다.

 

‘괜찮은 분들이네. 참 귀한 분들이네.’

 

그래서 교회에 왔다가 은혜를 받았답니다.

 

“이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그렇게 싫어하던 남편도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언제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행복해 한답니다.

 

그 집사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희가 올린 열 가지 기도 제목을 해마다 다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제 남편이 승진 발령을 받아서 서울 본사로 이사가게 되어 좋은데, 양곡교회를 떠나게 되어서 ….”

 

그렇게 말하는 그 집사님의 얼굴에 행복이 드러났습니다.

 

우리 교회의 또 한 집사님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늘 가정에서 부인과 싸우고 부인을 괴롭혔는데,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목사님, 저는 이렇게 행복한 생활이 있는 줄을 몰랐어요. 이런 기쁜 생활이 있는 것을 저는 몰랐어요”하며 제게 와서 울었습니다.

 

정말 하나님 가까이에 있을 때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셨으면 즐겁고 기쁘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한 아내는 남편 앞에 늘 기뻐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남편의 시중 들면서, 밥상을 차리면서, 빨래하면서,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면서 기뻐해야 됩니다. 남편으로 마냥 기뻐할 때 그 남편도 기쁜 것입니다.

 

부모님의 생일 상을 차리는 며느리가 ‘우리 어머님 생신인데…’ 하며 기쁘게 차리면, 그 어머니가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무슨 생신이 이렇게 자주 돌아오나?’ 하면서 마지못해 차리면 그 어머니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제자가 기쁨으로 배우고, 또 숙제도 기쁨으로 해 오면 그 제자는 선생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은 다 받았지만, 어떤 사람은 기쁨으로 믿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렇고, 어떤 사람은 마지못해 믿는데, 기쁨이 충만해서 믿는 자가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입니까?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00편 1절, 2절에도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기쁨으로 섬기라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배 드리러 올 때도 기뻐하고, 예배 드릴 때도 기뻐하고, 교회 봉사하면서도 기뻐할 때, 하나님의 사랑 받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2편 1절에 다윗 왕이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다윗은 왕이지만 왕 자리에 앉아서 “여봐라!” 하며 다스릴 때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나아갈 때, 예배 드리러 갈 때 제일 기뻤습니다.

 

그 다윗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9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국고를 열어 하나님 앞에 바치고, 또 자기 사유의 금 은 보배를 하나님 앞에 다 바칩니다. 하나님의 성전 지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 다 바칩니다. 그러니까 신하들과 백성들도 따라서 기쁨으로 다 바칩니다. 그것을 보고 다윗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다윗이 기뻐서, 기쁨을 가누지 못해서 견디지 못합니다. 헌금을 하고, 자기 창고를 털어 사유 재산, 금 은 보배를 하나님께 다 바치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거지가 되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역대상 29장 28절에 보십시오.

 

『저가(다윗이)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할렐루야!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목회도 마지못해, 죽지 못해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노!’하면 하나님께서 그 목회에 절대로 복을 주지 않으십니다.

 

‘저같이 못난 것을 주님께서 도구로 쓰시니 감사합니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 목회에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기쁨으로 봉사하는 사람, 기쁨으로 헌금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행복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율법,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Blessed is the man who fears the Lord, who finds great delight in his commands.

 

‘크게 즐거워하는 자’가 영어 성경에 보면, great delight입니다. delight도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는 것인데, 거기에 great입니다.

 

위대한, 놀라운 기쁨을 말씀에서 찾는 그 사람이 행복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똑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뻐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해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그에게 모든 것을 부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제 설교 준비를 하기 위해 성경을 읽다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하며 열 번 이상 입을 맞추었습니다.

 

‘나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말씀을 너무 좋아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점수를 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편 119편 103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요즘 꿀은 옛날 꿀과는 다릅니다. 저희가 어릴 때는 꿀 구경도 못했습니다. 설탕도 귀했습니다. 그러니까 시편 저자의 당시에는 꿀이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사자가 죽어 냄새를 고약하게 풍기는, 그 사자의 시체에 벌이 꿀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꿀이 귀하니 삼손이 그 꿀을 퍼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먹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꿀이 귀해서 평민은 일 년에 한 번 먹던지, 한 번도 먹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꿀맛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 ‘성경 말씀이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까? 성경 읽기를 사랑하고, 설교 듣기를 enjoy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복을 다 받는 줄로 믿습니다.

 

시편 119편 165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러분, 성경을 사랑하고 설교를 사랑하되, 크게 사랑하는, 크게 즐거워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구체적인 축복의 항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네 후손이 강성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후손이 그냥 잘 되는 것이 아니라, mighty, mighty 다시 말해서 능력 있는 자녀들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능력 있는 자녀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Almighty God,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후손이 Almighty children은 아니지만, mighty children, 그러니까 하나님을 닮아 능력 있는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도 능력 있게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녀가 잘 되는 것을 보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 되어 떵떵거리며 살아도 자녀가 망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능력 있게 살면, 자녀가 능력이 있어서 어디 가도 성공하고 강해지면, 그 부모도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으며 마음도 훈훈한 것입니다.

 

행복한 자는 누구입니까?

 

자녀가 잘 되어서, 그것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셔서 잘 되므로 흔들 자가 없는 축복을 누리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자녀가 이렇게 능력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고 부모가 성경을 기뻐하면, 그 자녀를 잘 되게 해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

 

모두 이런 복을 받아서 간증할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요와 재물의 복을 받습니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부요와 영화가, 부귀 영화가 그 집에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물론 부자라도 뇌물을 받아서 부자가 되거나, 부정 축재해서 부자가 되거나, 악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면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죄를 짓고 교만하고 방탕하다가 망합니다. 마귀가 주는 재산은 복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열두 제자 중에서 제일 부자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헌금을 슬쩍슬쩍 훔쳐 넣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 은 삼십을 챙겼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서 제일 큰 부자가 가룟 유다였지만,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부자가 아니라 마귀가 준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지 않은 부자는 불행합니다. 그것 때문에 결국 천당에 가지 못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 방법으로, 세상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영원히 망합니다.

 

누가 참으로 복 있는 부자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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