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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값있는 제사(삼하 24:19-25)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값있는 제사
사무엘하 24:19-25


오늘 오후에 설교 마무리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그냥 살맛이 나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해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좋아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언젠가는 저 하늘의 태양도 변하는데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훌륭한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님들의 학설은 자꾸 변하고, 의사 선생님들이 주장하는 의술도 바뀝니다. 새우에 콜레스테롤이 많으니 먹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은 새우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가르치는 교수가 있으면 그 교수는 처진 교수입니다. 최근에 발표한 학설에 의하면 새우에는 콜레스테롤이 없답니다. 콜레스테롤처럼 보이는 입자가 있지만 그것은 콜레스테롤이 아니라 사람에게 아주 좋은 영양소라서 수술 환자가 왕새우 한 접시씩을 먹으면 좋답니다.
여러분, 학설은 자꾸 바뀝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세가 한 설교나 바울이 한 설교나 스펄전, 디엘 무디, 웨슬리, 윗필드가 한 설교나 제가 하는 설교나 다 변함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해는 변합니다. 제가 3부 예배 때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저 태양은 신비롭습니다. 타도 타도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휘발유를, 석유를, 가스를 누가 공급해 주는 것도 아닌데 자체에서 생산되어 탑니다. 창조 이후로 계속 타도 그 부피나 크기가 변함이 없고 열기와 빛이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살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마태복음 24장 29절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해가 빛을 잃고 별들이 떨어질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Yesterday, Today, Forever,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하나님께서도 변함이 없으시고, 성령님께서도 변함이 없으시고, 말씀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너무 감사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을 생각하니 여러분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제가 참 행복했습니다. 제가 어디에 가서 이런 장로님들을 만나고,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여러분 같은 귀한 교우들을 만나겠습니까? 제가 세계를 다니면서 보아도 우리 교회 성도 같은 분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또 이렇게 비가 오는 어두운 밤에도 2층까지 꽉 차고, 휴가 때에도 여행을 떠나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정말 예뻐서 안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도 담임 목사로서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목회할 때, 제가 은퇴하고 난 후에 어느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든지 우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행복하게 목회하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우들이 교회에서 다투는 일이 없고 언제나 화목하게, 행복하게,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영원히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천국에서도‘예배는 양곡교회가 챔피언이구나.’하시고 하나님께서 챔피언 벨트, 챔피언 컵을 주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변함없이 달음질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무엘상의 강해 설교를 마치고 사무엘하 말씀을 긴 시간 동안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시간시간 은혜를 주셨는데, 오늘 저녁에 사무엘하 말씀이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시간인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갑절의 은혜, 큰 은혜를 여러분과 제게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윗 왕은 갓 선지자에게 “왕이여,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 타작 마당으로 올라가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라는 말을 듣습니다.
“예, 하나님의 사람이여, 명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다윗은 즉시 순종해서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많은 신하들과 신복들이 동행합니다. 다윗 왕은 모든 신복들을 거느리고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으로 갑니다.
아라우나가 타작을 하다가 보니 왕께서 오시는데 뒤에 수행원들이 따라옵니다. 웬 일입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아라우나는 이방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살지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여부스 사람으로 그 땅의 교민으로 살고 있는데, 왕이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자기 집으로 오니 너무 놀랍고 감격하여 왕 앞으로 달려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왕이여, 어찌 된 일이옵니까? 웬 일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아라우나는 그저 좋아서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만일 아라우나가 죄인이었으면 무서워서 두근두근하겠지만, 떳떳하고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기쁩니다. 왕의 방문이 어떤 목적인지 모르지만 그냥 감격하고 흥분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아라우나는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당시 왕은 오늘날의 대통령과 다릅니다. 오늘날의 대통령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통령이 사랑하는 측근이 밍크 코트 한 벌을 받았다고 백성들이 그 측근에게“물러가라! 물러가라!”하니, 대통령이 “안 돼.”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을 보십시오. 대통령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만일 왕 같으면 그렇게 말하는 백성들을 다 쳐 죽일 수도 있습니다. 왕의 입의 말은 법입니다.
또 대통령은 임기 동안 나라를 위해 봉사하다가 때가 되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왕은 죽을 때까지 왕 자리에 있고 다음에 그 아들이 왕이 됩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왕과 다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어느 집을 방문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제 친구는 국무총리가 자기 집에 왔다 갔다고 얼마나 으스댔는지 모릅니다. 나이가 든 청년 때인데도 자기 집에 가면“이 자리는 국무총리가 앉았던 자리야.”하면서 그 자리에는 앉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국무총리가 선거 운동하러 왔다가 자기 집에 잠간 들렀는데도 말입니다. 그래도 그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 지휘자 집사님이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우리 교회에 오셔서 맨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 꿈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꾼 꿈이 아니지만, 예사로운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청와대 비서실장이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기 원하시니, 아무리 바빠도 오셔서 좀 전해 주세요.”
그래서 제가 갔다 왔습니다.
그것도 예사 일이 아닌데, 이 자유로운 시대에도 대통령 방문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당시에 왕이 방문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왕은 신하의 집에도 가지 않는데, 대신의 집도 방문하지 않는데, 왕이 자기 타작 마당에 왔으니 아라우나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제가 이 말씀을 대할 때 아라우나는 참 행복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에 우리 교인들은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라우나는 다윗 왕이 방문해도 흥분해서 그렇게 엎드렸는데, 우리는 만왕의 왕 우리 주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왕중의 왕, The king of kings,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잠깐 들르시는 것도 굉장한 일인데, 우리 집에 오셔서 영원히 계십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영원히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제 집뿐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와 지금 성령으로 계십니다.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엎드려 경배하세. 엎드려 경배하세.”하며 영원히 주님을 경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흥분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윗 왕이 아라우나의 집에서 살지 않고 하루 방문하고 가는 것도 그렇게 귀한데,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영원히 사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천당에서도 같이 사십니다. 할렐루야!
정말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주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윗 왕이 말합니다.
“당신에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왔소.”
그러니까 아라우나가 말합니다.
“왕이시여, 예배를 드릴 때 쓰는 소가 여기에 있나이다. 또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모든 것이 있으니 왕께서 좋은 대로 취하셔서 예배를 드리소서. 하나님께서 왕의 예배를 즐겁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왕을 사랑하는 아라우나는 왕 앞에 아끼는 것이 없습니다.
소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2,30년 전에 우리 나라에서 소가 농가 재산 목록의 몇 번째였습니까? 땅 다음으로 소를 귀히 여겼습니다.
아라우나가 그런 소를 그냥 드립니다.
소 멍에와 농기구도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그것도 예배를 드릴 때 불 태워서 쓰라고 그냥 드립니다. 모든 것을 왕이 원하는 대로 쓰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면 아끼는 것이 없습니다.
제 아내가 저에게 밥상을 차려 주면서 밥이 아까워 밥을 펐다 들어내었다 하지 않습니다. 생선 한 마리를 주면서 ‘큰 것을 줄까? 작은 것을 줄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까워라.’하지 않습니다.
제가 고향에 가면 어머니가 냉장고에 있는 것을 다 꺼내어 주십니다.
“이것은 뭐다. 이것은 뭐다. 이것은 뭐다. 이것 먹어라. 이것 먹어라 …”
얼마나 많이 내어 놓으시는지, 어머니가 주시는 것을 다 먹으면 배가 터질 것입니다. 자식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들이 군에서 휴가를 오면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하며 아까운 것 없이 다 줍니다.
사랑하면 아까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사랑하고 의지하여 주만 따라가겠네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거예요. 제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에요. 제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에요. 주님 마음대로 쓰세요. 한 방울의 땀이라도 주님만 위해 흘릴게요. 일 초의 시간이라도 주님만 위해 쓸게요.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에요.’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면 이런 기도가 나오고 이런 소원으로 불타게 됩니다.
우리 가슴 속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끼지 않으십니다. 이 지구촌을 만들어 선물로 주시고 꽃과 벌과 나비, 아름다운 뭉게구름, 바다, 물고기, 과일나무, 땅콩, 이 세상의 채소, 별의별 오곡백과를 다 주셨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아내에게 돈을 맡기지 않는답니다. 장을 볼 때도 남편인 자기가 가서 보고, 아내에게는 장도 보지 못하게 한답니다. 미장원에 갈 때만 아내에게 돈을 준답니다.
그 부인이 눈물을 쏟으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된 남편입니다.
사랑하면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한 남편은 아내가 사랑스러우니 아내의 머리가 바람에 파도치는 것을 볼 때마다 ‘저 멋있는 머리에 머리 핀을 꽂으면 더 빛이 나고 멋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계줄이 없는 자기 시계를 팔아서 머리 핀을 사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시계줄이 없어서 시계를 차지 못하는 남편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잘라서 팔아 시계줄을 사왔습니다.
머리 없는 머리 핀과 시계가 없는 시계줄이 되어도 그 부부는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면 바보처럼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바보처럼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하나님께서도 바보처럼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사랑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받을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이 내게 무엇을 해줄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부모님께 무엇을 드릴까를 생각합니다.
저는 철이 들고부터 한 번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내게 무엇을 해 주시나? 내가 결혼할 때는 무엇을 해 주시려나?’하고 바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해 주실 것도 별로 없었지만, 바란 적이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드릴까?’하고 십 몇 년간 기도하다가 집을 지어 드리고, 또 ‘무엇을 해드릴까?’를 생각했고, 또 생각했습니다.
정말 사랑을 하면 드리고 싶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다 드리고 싶고, 물론 우리가 늘 구하지만 이미 받은 것도 너무 많아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 항상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사랑이 변함 없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6장 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사랑할 때도 변함 없으면 얼마나 귀합니까? 3년 동안 사랑하다가 싫어하고, 2년 동안 사랑하다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아가씨는 한 남자를 사귀다가 1년이 지나면 버리고, 또 다른 남자를 사귀다가 1년이 지나면 버리고 한답니다. 참 희한한 여자입니다.
춘향이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죽게 되어도 “내 님은 이도령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변함이 없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변함이 없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윗 왕이 말합니다.
“아라우나, 말은 고맙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 값 없는 제사를 드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가벼운 제사, 부담 없는 제사를 드리고 싶지 않아요. 내가 이 모든 것을 사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내게 팔아요.”
그래서 후한 돈, 은 50세겔을 주고 타작 마당과 소와 농기구와 멍에를 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공짜를 바라면 안 됩니다. 한국 사람은 공짜라면 양잿물도 집어 먹는다는데, 공짜를 바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성공의 비결을 원하는 사람은 이리로 오세요. 성공의 비결을 알려 드립니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성공의 비결을 듣고 싶거든 모두 돈을 내세요.”
돈을 내는 것이 아깝지만, 성공하기 위해 모두 돈을 냈습니다. 그 사람이 돈을 다 받더니 말했습니다.
“자, 이제 성공의 비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도망을 갔습니다.
따라합시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편하게 그냥 있는데 누가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야 성공하지, 노는데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대학에 가지, 노는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합니다. 열심히 산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자리가 있지, 농땡이에게 영광스러운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일도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부담없이 그저 편하게 믿는 것, 그것은 평범한 것입니다.
대가를, 값 있는 것을 지불해야 합니다. 귀한 시간을 주님께, 귀한 물질을 주님께, 거기에 무게를 실어서 바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도 기도 방석에 무릎을 꿇고 여러분의 십일조 봉투, 감사 봉투, 선교 헌금 봉투, 방송 선교 헌금 봉투 등 모든 헌금 봉투를 보며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이 드린 헌금을 회계부에서 집계하고 나면 빈 봉투가 제게 옵니다. 그것을 보며 제가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매주에 제가 여러분을 심방하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도 십일조가 불어나는 가정이 많아서 감사를 드리는데, 어떤 가정은 형편이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 큰 것을 바칩니다. 그러면 제가 한참 ‘주님!’하며 그 봉투를 봅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헌금 궤 앞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십니다. 부자들이 헌금할 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가난한 과부가 작은 돈이지만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을 때는 “아멘, 아멘. 부자들보다 이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은 헌금을 냈구나. 그 생활비 전부를 넣었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과부는 큰 복을 받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값 있는 헌금, 생활비 전부를 바친 힘든 헌금, 그것을 바치면 콩나물 살 돈도 없는데 하나님을 사랑해서 바친 그 헌금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아멘 아멘’ 하셨단 말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께 값 있는 제사를 드리고 싶어서 아라우나에게 말했습니다.
“아라우나, 고마워요. 그러나 나는 값 있는 제사를 드리고 싶어요. 내 하나님께 나는 값진 제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은 50세겔을 주고 사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 자세를 기뻐하신 줄로 믿습니다.



사실은 내 생명, 내 물질, 내 시간을 바칠 대상이 있을 때 행복한 것입니다.
내 사랑, 내 인생을 바칠 대상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한 권찰님이 금요일마다 자기 구역 식구를 방문하면서 헌금 봉투를 나누어 드립니다. 한 새신자가 그것을 받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이것은 십일조 봉투고, 이것은 감사 봉투고, 이것은 생일 감사 봉투고, 이것은 선교 헌금 봉투고, 이것은 건축헌금 봉투입니다.”
“아니, 이것을 다 해야 되나요?”
“예, 은혜 받은 대로 생각하고 드리십시오.”
“아이고, 권찰님, 교회가 그렇게 가난합니까?”
“교회가 가난한 것이 아니고 교회가 살아 있기 때문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매일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용돈 주세요.’‘책 값 주세요.’‘친구랑 놀러 갑니다. 차비 주세요.’‘등록금 주세요.’‘옷을 사야 되니 돈 좀 주세요.’매일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내가 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그 아들이 열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니 돈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돈을 줄 대상이 없어졌습니다. 내 아들이 살아 있어서 돈을 달라고 할 때 그것이 내 행복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한국 교회가 죽으면, 북한처럼 교회가 없어지면, 교회에 돈이 필요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헌금도 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없으며 바치지 못합니다. 기도도, 찬송도, 헌금도 바치지 못합니다. 그것은 불행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살아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할렐루야!
그렇지 않습니까? 내 믿음이 죽어도 바치지 못하는데 내 믿음이 살아 있으니까 바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의 믿음이 살아 있으니까 하나님께 값 있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바칠 기회가 있는 것에 감사하고, 바칠 믿음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바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예배를 받으시고 재앙을 그치게 하시고 다시 축복의 물꼬를 터 주셨습니다.
예배는 재앙을 막습니다. 예배는 축복의 물꼬를 터 줍니다.
예배에 모든 것을 바쳐서 망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예배를 드려서 망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한 샘을 파자.”
여러분, 탤런트 최불암씨를 아시지요? 저는 그분을 좋아합니다. 제가 TV를 보지 않지만 그분이 선전하는 것은 다 좋아 보입니다.
그분이 군에서 제대를 한 후에 가난해서 복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방송국에서 다 자리를 잡고 일을 하는데, 자기는 가난해서 학교도 못 다니고 부산에 있는 작은아버지의 염색 공장에 가서 염색하는 일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적성이 맞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할 일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이 부는 어느 날,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교회나 가 볼까?’하고 허름한 잠바를 걸치고 터벅터벅 교회에 갔습니다. 혼자 기도하시던 목사님이 최불암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가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공부도 하고 싶고, 연기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사람아, 자네는 욕심이 너무 많아. 자네가 먹을 수 있는 떡 덩이는 오직 한 가지야. 한 떡만 택해. 한 샘만 파. 여러 가지를 잡으려면 아무것도 못 잡아. 한 가지만 해.”
그때 목사님께 힌트를 얻어 비록 학교에 가서 공부는 못해도 혼자 연기 연습을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해에 국립 극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계속해서 연기 연습을 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현장감 있게 하려고 얼마나 뼈 빠지게 연습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의 최불암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 샘을 파야 됩니다.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산 상고를 졸업한 강성갑이라는 분은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내가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나? 사람이 공부를 해야지.’하고는 연세대학교(그 당시는 연희전문) 입학 시험을 쳤습니다. 졸업하고 4년 동안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가 조금 공부해서 시험을 쳤으니 합격하겠습니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복을 사서 입고 뺏지를 사서 달고 강의실에 들어가 공부를 했습니다.
백낙준 교수가 출석을 불렀습니다. 모든 학생이 대답을 하는데 한 학생만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네 이름을 내가 불렀는가?”
“아닙니다.”
“출석부에 이름이 없다는 말인가?”
“예, 없습니다.”
“입학 시험을 쳤나?”
“예, 쳤습니다.”
“합격했나?”
“아닙니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떨어졌으면 학생이 아니네.”
“예, 아닙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앉아 있나?”
“공부하려고 앉아 있습니다.”
“학생도 아니잖아.”
“제가 연세대학교에 입학 시험을 친 목적은 합격보다 공부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목적을 따라 공부하려고 앉아 있습니다.”
“참 맹랑한 친구구먼. 수업이 끝나면 교수실로 오게.”
그는 수업이 끝난 후에 교수실로 갔습니다.
“이름이 무엇인가?”
“강성갑입니다.”
“자네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입학 시험에 떨어졌는데 학교에 오다니?”
“교수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 학기만 기회를 주세요. 만일 제가 1등을 못하면 학교에 오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1등을 하거든 저를 학생으로 받아 주세요.”
요즈음 같으면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때는 대학을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앞문으로 나올 수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백낙준 교수님이 허락해서 공부를 했는데 한 학기를 마치고 나자 강성갑이 1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세대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목사님이 되고 김해 한얼중학교를 세웠습니다.
열심히 하면 사람도 감동을 받습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하는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유행가이지만 이런 노래는 부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것은 좀 잘못해도 예배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예배의 샘을 파자. 예배의 전문가가 되자.”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좀 못해도 예배의 전문가가 되면, 예배에 생명을 걸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시는데 우리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입학 시험에 떨어진 아이에게 교수가 감동을 받으니 그 학교 학생을 만들어 주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키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해 주실지 모릅니다. 어떻게 도와 주실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예배의 샘을 깊이 팝시다.
예배 시간을 우리의 시간 중에 제일 첫째(The first), 제일 첫 시간에 두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을 내 삶의 우선 순위로 정해야 합니다.
나의 삶의 가장 우선 순위는 예배, 둘째는 가족을 돌보는 것, 셋째는 사업이나 직장일로 정해야 합니다. 첫째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김건도 목사님은 세계적인 목사님들입니다. 이 네 형제 목사님의 교인들을 합하면 15만 명이 됩니다.
그런데 이 네 분 목사님의 어머니가 첫 이삭을 바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뒤로는 텃밭을 가꾸면서도 무엇이든지 제일 먼저 열린 것에는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오이가 열리면 제일 먼저 열린 것에 ‘이것은 첫 이삭이다. 아무도 손대지 마라.’라는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호박도 제일 먼저 열린 것에 ‘이것은 첫 이삭이다.’라고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잘 익으면 따다가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또 가장 큰 것을 보면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술 찌끼를 먹고 술 냄새를 풍기며 교회에도 가고 학교에도 갔습니다.
“너희들, 아침에 술 마셨지?”
“아닙니다. 술 찌끼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돼지고기 세 근을 사오셨습니다. 돼지고기 세 근을 사오니 아이들이 좋아서 야단이었습니다.
“야! 돼지고기다.”
“좋아하지 마라. 이것은 우리가 먹을 것이 아니다.”
“누구 줄 건데?”
“목사님 생신이다.”
“우리는 술 찌끼를 먹는데, 목사님은 돼지고기를 세 근이나 ….”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다.”
아이들이 통곡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목사님을 다 드리나? 나누어 먹자.”
“안 된다.”
그때 아이들이 맹세했답니다.
‘목사는 되고 볼 거다. 목사는 되고 볼 거다.’
어머니도 아이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주의 종이라고 목사님께 갖다 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귀한 것, 첫 이삭은 우선 교회, 우선 주의 종에게 바치니 그 자녀들이 다 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면 하나님께서 어떤 길을 열어 주실지 모릅니다.
먼저 하나님, 먼저 주의 종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먼저 예배, 먼저 예배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을 아까워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시간도 값진 시간, 물질도 값진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내 몸도 깨끗하게 목욕하고 교회에 올 때는 옷도 제일 좋은 것, 신발도 제일 좋은 것을 신어야 합니다. 항상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값 있는 제사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살이를 끝낼 때까지 값 있는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며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된 예배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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