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존 로저스 (John Rogers, 1500-1555) (영국)

by 【고동엽】 2021. 11. 13.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의 통치시기에 활동한 종교개혁가이자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순교자.
토머스 매튜라는 가명으로 발행된(1537) 영어판 성서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존 로저스는 버밍햄 근처 Aston 교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526년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한 뒤, 1532년경 런던 퀸히트 '홀리 트리니티'의 주임사제가 되었으며 2년 뒤에는 안트웨르펜(Antwerp)에 있는 영국 상인들의 목사가 되었다.


이때 성경번역가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을 만나 로마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 1536년 틴데일이 밀고당해 처형된 뒤 그는 자신이 번역한 〈열왕기하〉까지의 〈구약성서〉와 역시 영국인 학자 마일스 커버데일(Myles Coverdale, 1488-1568)이 번역한 〈구약성서〉의 나머지 부분을 합하고, 여기에 틴데일의 〈신약성서〉를 덧붙였다(1526). 그리고 커버데일의 외경(外經) 번역도 포함하여 성서본을 완성시켰는데, 이것은 1537년 토머스 매튜(Thomas Matthew)라는 이름으로 안트웨르펜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가명을 쓴 이유는 틴데일과 같은 비운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듯하며, 곧 그의 성서판은 영국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그는 실제적인 번역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의 주석과 귀중한 서문은 최초의 영어 성서 주해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대성서'(1539)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 대성서에서 '주교성서'(1568)와 '흠정 영역성서'(1611)가 나오게 되었다. 로저스는 1548년 독일에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독일에 있는 동안에는 비텐베르크의 프로테스탄트 신도협회에서 일하며 독일인 종교개혁가 필립 멜랑톤의 〈아우크스부르크 협정의 고찰 Considerations of the Augsburg Interim〉을 번역·출간했다.


1551년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수록(收錄) 성직자로 임명되었으며 얼마 뒤에는 신학부 강사가 되었다. 1553년 로마 가톨릭교도 메리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그는 '유해한 로마 가톨릭 의식, 우상숭배, 미신' 등을 경고하는 반(反) 가톨릭적인 설교를 하여 곧 가택연금을 당했다. 1554년 런던 주교는 그를 뉴게이트로 압송했으며 그는 그곳에 1년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1555년 1월 다른 10명의 죄수와 함께 사우스워크의 종교회의에 회부되어 심문을 받고 1주일 이내에 이단자로 몰려 화형당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