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기독교 강요를 읽어야 하는가?- 기독교 강요의 역사, 배경, 주제 -I기독교 강요 독서의 중요성과 필요성
1. 기독교 강요와 우리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현실
기독교강요는 성도들의 필독서다.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 있어서는 필독서중의 필독서다. 기독교강요는 성경이해에 있어서나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볼 때 성경 다음으로 꼭 읽어야 할 중요한 책이다. 아마도 성경 이외의 기독교 필독서 목록 10권을 선정한다면 기독교강요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만일 그 가운데서 한 권만을 선택하라면 기독교강요를 읽는 것이 최대의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 중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혹 한번쯤 기독교강요의 명성을 듣고 읽은 사람들이라도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피상적으로 읽은 경우가 많다. 기독교강요를 읽어서 신앙과 신학에 피와 살이 되도록 소화시킨 사람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 부요함에 비한다면 우리가 지금 얻어내고 있는 양은 너무나 적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2. 왜 우리는 기독교 강요를 읽어야 하는가?
1) 성경 해석적 측면에서 살펴본 기독교 강요 읽기의 필요성
기독교 강요는 성경해석의 길잡이와 같다. 우리는 기독교 강요를 통해서 '성경의 가장 중심내용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는 성경에 어떤 자세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하는 성경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장 분명하게 배울 수 있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성경공부, 신학공부, 경건 공부에 있어서 기독교 강요만큼 유익한 책을 찾기도 어렵다.
기독교 강요는 성경해석의 안경이요 지도요 길잡이로서 쓰여졌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해석의 가장 충실한 안내자로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안심하고 택할 수 있다. 성경해석의 왕도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광맥을 찾아 들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지름길이 있다면 아마 기독교 강요일 것이다.
2) 교회사적 측면에서 살펴본 기독교 강요 읽기의 필요성
(1) 종교개혁 이전의 신학을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총 정리하고 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빈 진공상태에서 칼빈이라는 한 천재에 의해서 갑자기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기독교 강요 속에는 16세기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약 1600여 년간의 성경해석의 전통이 녹아 들어가 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어떤 의미에서 교부신학과 중세신학과 개혁신학의 엑기스를 모아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속에는 바로 칼빈의 교부들에 대한 이해와 중세신학에 대한 이해와 개혁1세대의 신학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종교개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체 서양문명과 개신교 역사와 특히 개혁신학과 장로교 역사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강요는 이후 개혁신학의 목차와 같은 것이 되었다. 특히 17세기부터 시작되는 개혁신학의 후예들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라는 목차 속에 담긴 내용들을 더욱 상세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칼빈의 해석과 다른 해석들을 전개시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신학을 확대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개혁신학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개신교 역사와 개혁주의 신학과 장로교 역사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 뿌리에서 오늘 우리가 어떤 열매를 거두었는가를 보기 위해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읽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3) 현실 목회적 차원에서 살펴본 기독교 강요 읽기의 필요성
(1) 목회자의 신앙적, 신학적 자기 점검을 위한 거울로서 삼을 수 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16세기 우리 성도요 신학도요 목회자인 한 믿음의 선배의 평생에 걸친 지적 성장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강요는 칼빈의 영적, 지적, 신학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통해서 목회자 개인 혹은 성도 개인의 영적, 지적, 신학적 수준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거울로 삼을 수 있다. 성도들을 성경말씀으로 먹어야 하는 목회자라면 성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목표해 해야 하는가? 그에 비해서 나는 현재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 현 한국교회의 수준 점검을 위한 저울로 삼을 수 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우리 개신교의 신앙과 삶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우리 개신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어떤 신앙과 신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지금 개신교 신앙에 어느 정도 충실한가? 등을 평가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을 기독교 강요는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기독교 강요에 담긴 성경적, 신학적 지식은 어느 특정 신학자만의 것이 아니다. 사실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알아야 할 기본지식이 아닌가?
3. 종교개혁 2세대로서 칼빈이 처한 역사적 환경
1) 종교개혁 2세대로서의 문제의식
종교개혁 1세대인 루터와 종교개혁 2세대인 칼빈이 처한 문제의식의 핵심이 달랐다. 루터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학적으로 혼탁한 상황 속에서 복음의 핵심인 '이신칭의'의 문제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었다. 즉 루터 개인에게 있어서나 로마 카톨릭의 혼돈 속에 있는 개인들에게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핵심인 개인적으로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서 칼빈은 이제 새롭게 출발한 개혁교회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의 영구적인 분리가 확실해진 즈음 로마 카톨릭과 구별되는 그리고 잘못된 급진적 종교개혁의 공동체들과는 구별되는 참으로 성경적인 교회관과 교회제도를 바르게 형성해야 할 역사적인 시점에 처해있었다. 따라서 칼빈의 관심은 단순히 개인구원의 차원을 넘어서서 새롭게 성경적인 공동체 성경적인 바른 교회를 형성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칼빈의 주된 관심은 평생을 통해서 루터의 구원론적인 관심을 넘어서서 성경이 말하는 삶의 전 영역에 대한 부분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되 특히 교회론을 바르게 정립하는 그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명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문제는 '참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교회개척과 양육과 조직과 훈련의 책이라 말해지기도 한다.
2) 극단적 양 대적자들과의 2개의 전선에서 싸움
칼빈이 처한 시대는 로마 카톨릭의 반(反)종교개혁과 극단적 종교개혁(재침례교파 등) 사이에서 이들의 잘못된 신학을 비판하고 성경적 입장에서 개혁신학을 변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따라서 칼빈은 평생토록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신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 종교개혁 내의 급진적 무리들을 논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진리의 전사로서 이 책임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이런 면에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진리를 사수하고 또한 진리를 전파하려는 진리를 위한 탁월한 전사의 진리를 위한 투쟁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통해서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3) 개혁신학의 총정리 및 기초확립
칼빈이 활동하기 전에 개혁신학은 벌써 개혁1세대들에 의해서 20여년 간 토론되면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 1세대 개혁신학자들 사이의 많은 이견도 있었다. 칼빈은 이러한 1세대 종교개혁자들의 성과를 계승하여 확실한 종교개혁의 신학적 기초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칼빈은 이러한 사명을 훌륭하게 해 냈다.
사실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없었더라면 개신교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기록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비로소 종교개혁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독교 강요가 기록됨으로써 이후의 개신교 역사는 기독교 강요를 기초로 계속해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되었다.
4. 기독교 강요의 성장과정 비교
기독교 강요는 칼빈이 26살에 초판(1536)을 쓴 이후 마지막 최종판(1559)을 쓰기까지 23 여년 동안 칼빈이 임종(1564)을 몇 년 앞두기까지 거의 칼빈의 평생 동안 계속 개정 증보되면서 칼빈의 생애와 더불어 기독교 강요 또한 성장해 갔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이 과정에서 초판의 소책자 1권 6의 분량에서 최종판의 큰 책자 4권 80장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칼빈의 신학적 수준과 사상체계는 거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적인 분량 면에서는 계속 증가했지만 질적인 내용 면에서는 거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마치 기독교 강요의 초판이 최종판의 요약처럼 읽히기도 한다.
1) 초판(1536)
(1) 1535년 8월 23일에 완성되어 1536년 3월 개혁주의 도시 바젤에서 인쇄업자 토마스 플라터에 의해서 출판. 책의 원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구원의 교리에 대하여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과 경건에 대한 거의 완전한 요약으로 구성된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훈. 경건에 대해 연구하는 모든 사람에 의해서 읽혀져야 할 대단히 가치가 있는 새롭게 출판된 작품. 저자인 노용 출신의 존 칼빈이 가장 기독교적인 프랑스의 왕에게 드리는 신앙 고백적 서문.'
(2) 칼빈의 기독교 강요 초판은 루터의 1529 소요리 문답을 모델로 했다. 칼빈이 어느 정도 루터의 교육적인 작품을 참고했느냐 하는 것은 구조와 내용에서 드러난다. 516페이지의 포켓판사이즈로 만들어진 초판의 전체 6장 중에서 처음 4장이 루터를 모델로 했다. 그러나 암송을 통해서 배우는 교리문답이 아니었기 때문에 루터보다 좀더 심도 있게 문제들을 토론할 수 있었다.
1장은 본질적으로 십계명의 강해다. 2장은 본질적으로 사도신경의 강해다. 여기에서는 부처의 영향이 엿보인다. 루터의 사도신경은 3부분(성부, 성자, 성령)으로 되어있지만 칼빈은 교회문제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중요성을 고려하여 교회에 대한 내용이 풍부한 네 번째 부분을 첨가한다. 5장의 '거짓성례들'과 6장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2개장은 다소 논쟁적이다.
(3) 칼빈으로 하여금 그 유명한 기독교강요를 쓰게 한 저술 동기는 두 가지였다. 즉 신앙의 형제들을 위한 교리문답서의 필요성과 박해를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 형제들의 실상을 왕에게 탄원해 알려야 하는 필요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목적 때문에 칼빈은 이중의 신학적 대응자세를 취했다. 제도화된 로마 카톨릭을 거부함과 동시에 극단적 분파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칼빈의 향후 신학의 행로가 결정되었다. 그것은 좌단과 우단 사이의 중도를 견지하는 것으로써, 현명한 절충이 아니라 독자적인 성경연구에 근거한 확신이었다. 이후 그의 신학체계상의 발전은 이 초기의 경향을 확대하고 완성해 가는 것이었다.
2) 제2판(1539년판)
(1) 칼빈의 스트라부르그 기간 중에 기록되었다.
(2) 초판의 6장에 비해 17장으로 되어있는 초판의 3배 분량으로 증가되었다.
(3) 2개의 시작 장이 이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으로 되어있으며, 삼위일체, 신구약의 관계, 회개, 이신 칭의, 섭리와 예정,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내용들이 추가되었다.
(4) 초판에서 많은 내용 그대로 가져왔지만 강요의 특성과 지위가 변화되었다. 이제 더 이상의 교리입문서가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비교되는 기독교 신앙의 본격적 진술서로 방향이 잡혀갔다. 이제 성경안내서로서 성경의 복잡함을 풀어주는 필수품이 되었다.
(5) 기독교 강요가 이제 칼빈 사상의 일차적인 자료로서 자리 매김 하게 되었다. 강요에 비해서 칼빈의 주석과 설교는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지만 이차적인 자료라 할 수 있게 되었다.
3) 1543-1550판
(1) 1543판에는 교회론 부분 강화되었다. 그러나 구조는 다소 엉성한 상태에 있었다.
(2) 1550판에서는 이런 문제 해결하기 위해 21장을 절로 세분했다. 그러나 구조적 결함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4) 1559최종판
(1) 내용은 별로 추가된 것이 없었다.
(2) 칼빈이 스스로 아주 만족스럽다고 할 정도로 자료의 배열과 조직을 새롭게 했다. 서로 관련성 없이 늘려있던 자료들을 통일성 있게 배열한 점이 특색이다. 그리하여 강요는 4권 80장으로 조직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세부적 항목이 체계적으로 구분되었다.
(3) 루터, 멜랑크톤, 쯔빙글리의 경쟁적 작품들을 무색케 할 정도의 개신교 종교개혁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작품으로 정착되었다.
(4) 1559년 기독교 강요의 성공은 뛰어난 구조를 반영해준다. 이는 멜랑크톤의 일반총론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구분된다. 이후 루터파는 멜랑크톤의 엉성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개신교의 지적 지배가 이루어진 것은 칼빈 기독교 강요 최종판의 내용과 구조 때문이다.
가. 1559년 강요의 성공으로 강요의 요약판과 안내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20세기 베스트 셀러 안내서와 같은 현상)
나. 1562년 어그스틴 마로랫은 기독교 강요 주제 및 성구인용 색인집을 발간했다.
다. 1576년 니콜라스 콜라동은 의미 있는 구절들의 여백에 요약을 해놓은 판을 발간했다. 주로 신학생들의 연구부담을 덜어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라. 1576년 에드문드 버니는 칼빈의 스타일과 이해하기 어려운 논증들을 취급했다.
마. 1583년 구랄메 델람은 칼빈의 구조분석을 위한 도표를 첨가한 370페이지 요약판을 출판했다.
바. 욘 칼로인에 의해서 영어로 요약판이 발간되었다.
사. 1586년 가스터 올레비아누스의 연구안내서가 나왔다.
아. 1589년 요하네스 피스카토르의 연구안내서가 나왔다.
자. 1628년 다니엘 드 콜롱의 연구안내서가 나왔다.
5. 기독교 강요의 신학적 배경 및 강요가 점점 불어난 배경
1) 성경에 대한 지속적인 깊은 연구와 해박한 지식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철저히 성경에 뿌리박고 있다. 이는 칼빈이 평생 동안 기독교 강요를 계속 개정, 증보해 나가는 동시에 거의 신, 구약 주석 또한 완성해 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강요와 주석은 서로 보완이 된다. 강요가 성경의 숲을 보는 것이라면 주석은 성경 속의 나무를 살피는 작업이었다.
예: 칼빈의 성경인용에 대한 빈도통계표(배틀스)
1536년 초판 1559년 최종판
로마서 162회 598회
시편 67회 580회
마태복음 185회 542회
요한복음 139회 466회
고리도전서 133회 428회
이사야 78회 324회
2)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서에 대한 평생연구
칼빈은 성경을 창조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부들의 해석전통에 충실했다. 칼빈은 초대교부들의 풍부한 신학유산에서 배웠다. 초대교부들은 칼빈의 영적 스승들이었다. 이중에서도 칼빈은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크리소스톰에게서 그리고 신학에 있어서는 어거스틴에게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칼빈에게 가장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준 교부는 바로 어거스틴이었다. 칼빈에게 있어서 어거스틴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지적 동료였다. 칼빈은 문자 그대로 어거스틴의 저작 전부를 철저하게 독파했다. 청출어람. 어거스틴에게서 칼빈이 나온 것이다. 칼빈은 어거스틴을 평생의 멘토로 삼았다.
(1) 칼빈은 일생 동안 초대교회 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다.
(2) 1536년 강요 초판에 이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미스티우스, 키케로 뿐만 아니라 크리소스톰, 오리겐, 어거스틴을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다. 아니 이전에 칼빈의 최초의 학문적 저작인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에서 벌써 칼빈은 고전작가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쓰기 몇 년 전에 벌써 고전작가들에 관한 당대 최고급의 학자였다. 이러한 고전작가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이제 교부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연결되었다.
(3) 초기에는 크리소스톰을 선호. 성서해석분야에서는 크리소스톰이 다른 모든 교부들을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4) 칼빈에게 있어서 어거스틴의 영향이 가장 크고 중대했다. 칼빈은 어거스틴으로부터 자유의지와 성찬, 성경의 영감, 예정론 등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3) 중세신학자들에 대한 연구
칼빈은 중세신학자들의 해석전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칼빈은 당시의 카토릭 신학의 토양을 형성하고 있었던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의 신학적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비평했다. 중세 신학자들 중에서 버나드는 칼빈에게 상당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 안셀름
(2) 롬바르드
(3) 토마스 아퀴나스
(4) 버나드 연구(1599판에서 21번 이상 언급)
4) 동시대의 개혁1세대로부터 개혁신학 흡수(20년간 개혁신학 토론됨)영향
칼빈은 자기보다 앞선 1세대 개혁신학자들의 개혁신학을 자신의 입장에서 종합 정리했다. 개혁 1세대 신학자들의 기초가 없었더라면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미 상당히 진전된 개혁신학을 칼빈의 흡수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초 위에서 칼빈은 기독교 강요라고 하는 개혁신학의 위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1) 루터의 영향
(2) 멜랑크톤의 영향
(3) 부써의 영향
5) 자신의 스트라스부르그 및 제네바 목회경험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책상머리에서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자신의 스트라부르그 및 제네바에서의 평생의 목회경험으로 빚어진 아주 목회적인 책이다. 그래서 메마른 조직신학보다 훨씬 더 유익과 감동을 준다.
6) 적대자들과의 지속적인 논쟁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신학적인 적대자들의 논쟁을 통해서 점점 내용이 불어나게 되었다. 기독교 강요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칼빈 당시에 있었던 양극단적인 로마 카톨릭 신학과 급진적 종교개혁의 여러 소종파들의 비진리를 논박하는 진리의 싸움터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6. 기독교 강요의 탁월성
1) 철저한 성경중심 사고방식.
칼빈은 철저한 성경중심의 삶을 살았고, 또한 신학을 했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원칙을 하나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칼빈의 생각은 성경이 멈춘 곳에서는 멈춘다. 그리고 칼빈은 성경이 말한 것은 말한다. 즉 칼빈은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간다.
기독교 강요는 칼빈의 철저한 '솔라 스크립투라'의 원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칼빈의 성경 중심적 원칙은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의 쓸데없는 호기심과 사변 그리고 급진적 종교개혁주의자들의 성경무시에 태도와는 좋은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2) 간결하고 명쾌한 서술방식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널리 퍼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데는 칼빈의 간결하고 명쾌한 문체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칼빈의 사고방식이 명쾌할 뿐 아니라 칼빈은 자신의 사고를 글로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명쾌했다. 칼빈은 진리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서술하는 것을 기독교 강요 저작의 원칙으로 삼았다. 이러한 간결하고 명쾌한 글쓰기 방식은 칼빈의 다른 모든 저작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칼빈은 간결체의 대가였다. 칼빈의 문체는 아주 힘이 있고 우아하며 감동적이다.
7. 칼빈이 26살에 이런 대작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
1) 칼빈의 개인적 천재성 때문인가? 시대의 교육적 환경 때문인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 초판을 읽어본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칼빈이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위대한 작품(강요초판)을 썼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참으로 경이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 칼빈이 어떻게 이렇게 일찍 신학적 대작을 쓸 수 있었는가? 단순히 이것을 칼빈의 개인적 천재성으로만 돌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었을까?'
2) 칼빈 시대의 교육적 환경을 주목해 보자
칼빈의 신학적 조숙성은 아마도 칼빈의 개인적 천재성과 당시의 교육적 환경 2가지가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칼빈의 개인적 천재성보다는 그 시대의 교육환경이다. 칼빈이 살았던 16세기의 유럽은 비록 시대적으로는 우리 보다 500여 년 앞서있지만 지적 엘리트들이 교육을 받는 과정은 오늘 우리 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1) 칼빈이 공부한 당시의 주된 교육방식은 토론과 논술이었다. 칼빈은 일찍부터 토론과 논술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가 있었다. 특히 칼빈이 살았던 시대의 인문주의는 이러한 영향에 있어서 아주 결정적이었다. 당시 인문주의적 훈련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수사학' 이었다. 즉 자신의 사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훈련은 지적 훈련 과정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입시위주, 시험위주의 단답식 암기식으로 공부해왔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부가 부족하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과 글로써 펼치기 위한 논술과 토론에 대한 부분이 너무나 약하다.
(2) 칼빈이 살았던 당시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라틴어 문법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그래서 지성인들은 라틴어를 오늘날의 국제어가 된 영어처럼 자유 자재로 활용할 수가 있었다. 라틴어를 익힌다는 것은 1600여 년간의 신학적 보고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칼빈은 또한 인문주의의 물결 속에서 고전어에 대한 강조를 받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도 능통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약원어인 히브리어와 신약원어인 헬라어 그리고 대다수의 신학적 저술들이 기록되어 있는 라틴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 오늘 우리의 어학공부는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너무 빈약하다. 고전어(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대한 접근 나이가 너무 늦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고전어 교육은 너무 형식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냥 맛만 본다. 이러한 고전어를 신학공부를 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거기에다가 우리는 수 백 년 혹은 수 천년 동안 토론되어온 영어, 독어, 불어 등으로 된 신학유산을 접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래 저래 고전어(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이건 현대어(영어, 독어, 불어)이건 우리가 어학을 한 가지 마스터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신학적인 대가를 기대하기 힘들다.
(3) 신학대학원의 현실 또한 너무 공부방식에 있어서 열악하다. 백화점 식으로 나열된 단편적 지식만을 배우고, 레포트 쓰기에 바쁘다. 자기의 신학적 사상의 기반을 만들지 못한다. 정보는 수없이 많이 배우는데 자기의 삶과 신앙과 신학을 형성할 사상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오호애재라.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3) 칼빈의 엄청난 개인적 학구열을 고려해야 한다.
칼빈은 강요를 쓰기 이전의 10대와 20대 초반의 학창시절 무서울 정도로 공부했다. 하루에 4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을 취하며 요즈음 고시생 이상의 공부를 했다. 이때 얻은 위장병으로 칼빈은 평생 병약한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에 비해서 우리는 너무 공부를 안 한다. 공부 안하는 데는 만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4) 칼빈은 선배들의 어깨(교부들과 중세신학자들과 1세대 개혁자들의 저서)를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칼빈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우리 신앙선배들이 수 천 년간 쌓아놓은 신앙적, 신학적 유산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관심이 소홀하다. 즉 교회사와 조직신학(수많은 시대의 성경해석의 공통분모)공부를 너무 안 한다. 교회사가 무엇인가? 조직신학이 무엇인가? 신앙선배들의 수 천 년간의 피와 땀과 눈물이 아닌가? 이러한 선배들의 노력의 결정체가 아닌가? 이러한 보물을 우리가 무시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한 자들인가?
(1) 칼빈 이전의 교부신학, 중세신학, 개혁신학이 없이 칼빈의 작품은 불가능했다. 어거스틴 또한 어거스틴 이전의 교부신학 없이 종합 불가능했다.
(2) 우린 이런 면에서 어거스틴보다 칼빈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단 이런 장점은 교부신학, 개혁신학 그리고 이후에 발달된 성경해석과 신학적 발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흡수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3) 우리는 지금 원점에 서있다. 교부시대이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냥 피상적인 현세 구복 신앙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저 4영리 전도지 수준의 복음이해에 머물러 있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8. 기독교 강요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1)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왜 쉽게 읽혀지지 않는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중요한 책인지는 알겠는데, 막상 읽어보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서 읽지 못하겠다. 즉 피부에 와 닿지가 않는다. 좋은 책인데 왜 그런가?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자 고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외면하거나 덮어두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마음을 가지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도전을 하려면 어떤 좋은 방법이 있는가?
2) 칼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
기독교 강요가 어려우면 책이 문제가 아니라 어렵게 여겨지는 나의 신학적 지식이 문제라는 증거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이해되지 않는 만큼 사실은 그 만큼 나의 부족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가 이해될 때까지 기독교 강요를 붙들고 영적, 지적, 신학적 씨름을 해야 한다. 이것은 곧 내가 성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3)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알기 위해서는 사전 신학지식을 가져야 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무턱대고 읽는다고 술술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고 무지한 생각이다. 중학생이 영어 좀 배웠다고 해서 ‘타임지’나 ‘뉴스 위크지’가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타임과 뉴스 위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즉 이러한 분야의 전이해가 쌓일 때만이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기독교 강요도 마찬가지다. 라틴어 원전에서 한글로 번역된 번역본을 읽고 있다고 해서 그냥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속에 담긴 내용 즉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 전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 강요를 제대로 읽으려면 사실은 아주 많은 준비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 강요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책이 아니다. 등반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독교 강요는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 같은 아주 고봉이다. 그렇기 때문에 꼭 정복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1)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개혁신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개혁1세대인 루터와 쯔빙글리의 사상 그리고 당시 중세 로마 카톨릭 신학, 그리고 급진적 종교개혁 신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1세대 개혁신학을 총 정리하고 요약하는 동시에 로마 카톨릭 신학과 급진주의신학과 대결하면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교부신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어거스틴을 알아야 한다.
(3)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칼빈 이후 발전된 개혁신학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칼빈 이후 개혁신학과 칼빈의 사상을 비교 검토하여 어떤 점에서 개혁신학이 칼빈의 신학을 계속 계승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를 살펴야 한다.
출처: 포도나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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