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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심는 데로 거둔다

by 【고동엽】 2021. 10. 16.

시 126:5-6

풍요로운 계절, 결실과 보람으로 나날이 즐거움으로 채워져 그 넉넉함으로 이웃의 얼굴들이 평화로 채워져야 하는 이 계절에 우리는 원치 않는 국가적 대형 참사들과 부도덕한 일로 우리의 마음이 한없이 우울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우울하기 그지없는 일들로 말미암아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여 평생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을 우리 민족 전체가 받을 수 있다면 이 값비싼 희생의 대가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성수 대교의 붕괴나 충주호 선박 화재 사건, 백화점 붕괴 사건 대통령 구속 사건 등등의 엄청난 충격과 슬픔의 원인도 잘 분석해 보면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심어서 거두는 이 시기에 성경이 가르치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살펴, 우리가 이 혼곤한 세대에 어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무엇을 심고, 어떻게 심으며, 어떤 결실을 기대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고, 이와 함께 심는 자(뿌리는 자)의 자세 또한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단순한 최고의 진리는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는 진리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이 법칙은 種의 재생산 개념입니다. 심어 거두는 이 이치에는 종이 개념을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팥일 때는 팥이고 콩일 때는 콩이지 콩심은 데서 팥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심는데로 거둔다는 이 진리의 말씀을 식물에나 적용되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식물의 種의 법칙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種의 법칙을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을 어린아이도 알 것입니다. 즉 사람이 증오를 심었으면 증오를 거두고 불의와 해악을 심었으면 고통과 수치와 멸망의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곧 헛된 것, 이웃을 몰라라 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둔다(갈 6:8) 라고 말하고, 이에 반하여 성령을 위해 심는 자(영원한 것, 선하고 아름다운 것,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온유와 겸손의 행동)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갈 6:8)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좋은 것을 심어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은 나쁜 씨를 뿌리는 것보다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좋은 씨를 뿌리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인내와 대단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쉽게 이루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렇게 심는 일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근심하지 말라'라고 우리를 북돋으며 피곤치 아니하여(꾸준히 하면)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심읍시다. 그렇게 심는 것으로 나날을 채우도록 부단히 노력합시다.

그러면 좋은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 생전에 그의 죽음이 예감되던 무렵, 한 여인이 전 재산에 필적할 만한 값어치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의 긴 머리털로 감아 씻겨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값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구제하였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힐난을 하자 예수께서는 여인의 행위를 칭찬 하사, '저가 나에게 좋은 일 양질(良質)을 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이야 너희랑 계속 있을 것이니 너희가 구제하는 그 일을 하고, 이 여자가 내게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사를 위한 것이다"라고 높이 평가하신 사실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 드리는 일이 더 값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 특히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최선의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잘 키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더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이삭을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의 한가지 큰 문제는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思考에 있어서 그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으며, 행동과 생활에 있어서 그 가치관이 엄청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 양되어 버렸고, 이런 이기주의가 모든 파렴치한 사건들의 원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광신적인 작태요,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팽대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극도의 이기주의 사고방식 속에서 온갖 나쁜 것, 흉폭한 것, 잔인한 것으로 심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세태를 이런 말로 한탄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왜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구나”(마 11:16-17).

우리가 방송을 보면 물건을 팔기 위한 선전은 대단히 많은 시간 방송이 됩니다. 스포츠 중개도 많이 방송이 됩니다. 나쁜 사람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다는 방송은 하루 종일 합니다. 치고 박고 하는 폭력 영화는 몇 시간씩 방송합니다. 그리고 선정적인 영화와 코메디는 시간을 더 늘려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진부하기 그지없는 연속 방송극은 아침저녁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없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옛 성현들의 지혜의 말씀들은 영상으로도 자막으로도 한 번도 방송되지 않습니다. 가끔 방송 도중에 우리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고루 고루 즉 예수님의 말씀. 석가의 말씀, 공자의 말씀, 이퇴개의 말씀, 소크라테스의 말씀, 에디슨의 말씀 등등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인류 스승들의 말씀을 멋진 자막으로 보여 주고 화면으로 보여 준다면 얼마나 아이들에게나 어른 모두에게 좋은 교훈이 되겠습니까?

참으로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주님은 이런 일을 “(마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좋은 것을 많이 심어야 합니다.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심는 만큼” 거두는 量의 법칙의 인식을 심는 자의 기본 자세입니다(고후 9:6).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비범한 이 진리는 바로 우리가 인식해야 할 절대 명제입니다. 인색함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삶을 황폐하게 합니다. 인색함으로, 욕심으로 이웃의 절박한 형편이나 고통을 나 몰라라 하기 일쑤입니다. 그런 삶이 영위하는 사회는 온갖 비리의 부정, 그리고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것은 그 始源이 인색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넉넉하게 심어라. 풍성함으로 이웃을 대하고, 풍성함으로  사회를 채우고, 풍성히 하나님께 드리고, 억지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지 말아라, 오히려 후하게 내어놓고, 후하게 주고, 넉넉히 베풀어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되 갚아 주시되  충분히 주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신다(눅 6:38)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많이 심은 자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이가 열매를 더하게 하실 것(고후 9:10)이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움켜쥐고 있지 말고 많이 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예는 좋지 않은 예입니다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전씨는 돈을 모아서 자기 부하들에게 많이 주는 사람이고 노씨는 돈은 모아서 자기 부하들에게 적게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전씨에게는 충성스러운 장세동 같은 부하가 있고 노씨는 배신자인 이현우 같은 자가 생겼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한 자들도 많이 주면 충성을 하는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많이 드리는 사람에게 어떻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심는 것을 거두게 되는 절대 質의 법칙을 따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고, 量의 법칙을 따라 많이 드리는 소망스러운 삶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깨끗한 생활과 믿음을 심고 가꾸는 자(良質)는 주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요 1:47). 심고 심되 바로 심으시고 많이 심되 좋은 씨앗으로 심도록 하십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날마다 나의 삶에서 '뿌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심는가, 얼마큼 심는가, 심는 것들의 내용은 선하고 아름다우며, 조화롭게 평화스러운가를 살피고 점검하는 나날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일꾼으로서 보상을 얻는 때(마 20:8, 25:23) 그것을 기쁨으로 수용해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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