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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부지런히 가르치라(신명기 6장 1절~9절)

by 【고동엽】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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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가르치라(신명기 6장 1절~9절)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자녀교육에 쏟는 열의는 가위 세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연 금메달감이지요.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열의는 있는데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빗나간 수고는 아무리 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른 목적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이 먼저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가끔 자녀들의 문제로 상담하러 오는 부모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꼭 하고 싶은데 못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십시오" --- 바로 이 말입니다. 눈앞의 자녀 문제로 걱정이 태산같은 분들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오늘 한번 공개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공부를 하십시오. 자녀교육은 공(空)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 할 때에도 공부하고 깊이 생각해서 하십시오. 행동 하나 보여줄 때에도 공부하고 기도한 다음에 하십시오." 너무 직감적으로 반사적으로 행동해서 자녀교육을 이미 다 그르쳐놓고 이제와서 해결 방안을 찾으면 무엇합니까? 공부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날로 성장하는데 부모들은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나왔다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자신 먼저 살피고 자녀교육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사람들을 보십시오. 미국에 사는 이스라엘사람은 인구비례로 볼 때에 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 전체 대학교수의 30%가 이스라엘사람이요, 노벨상 수상자의 24%가 이스라엘사람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자녀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합니다. 그들은 누구도 추종하지 못할 만큼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이스라엘사람은 어떻게 해서 자녀들을 잘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을 좀 일러주십시오." 랍비가 대답합니다.
"일찍부터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대답입니다. 두 살난 어린아이를 업은 여인이 랍비에게 와서 묻습니다. "아이들을 몇 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좋겠습니까?" 랍비가 되묻습니다. "아이가 몇 살이오?" "두 살입니다." "그러면 만 2년 늦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바로 그 시점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학교 갈 때부터 가르치려고 하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구세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 여사의 자녀교육관도 본받을만합니다. 이분은 구세군 창시자인 부스(William Booth) 대장의 부인으로 훌륭한 어머니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힙니다. 이 부스 여사는 8명의 자녀 모두 어떤 방면에서든지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게 했을 뿐더러, 부친의 전도사업에 혼신을 다해 도움을 주는 인물로 양육했습니다. 누가 그에게 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언제나 악마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을 배우기 전에 좋은 습관을 먼저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생각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생각을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지혜를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고, 악마가 사단의 거짓과 위선과 악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육은 간단한 것입니다. 본문에 "쉐마(Shema)"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래 이 말은 "들으라"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오늘의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 이것이 쉐마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대문 밖이나 문설주 위에 이 성경구절을 써서 붙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예 새겨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나갈 때에나 들어올 때에 그 성경구절을 한번씩 읽습니다. 읽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가 입을 맞춥니다. 이러한 예식을 통해서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신앙교육의 대명사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교육의 기본입니다. 여기에 '마음을 다하고' - 마음이란 히브리어로 지성의 소재(所在)를 말하며, 지식과 재능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성품을 다하여' - 감성과 인격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즐거워함은 하나님이요, 우리의 행복도 하나님이니 인격 전부를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 체력을 말합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생활 전부를 기울여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그들의 교육 이념이요 철학입니다.
이스라엘의 교육형태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바벨론 포수(捕囚)시대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바벨론 포수시대까지 내려오는 그 수천 년 동안에는 학교가 없었습니다. 가정교육이 전부입니다. 부모가 교사이며, 교육내용은 성경과 신앙적 전승뿐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가르치고, 사람의 사람됨을 가르치고, 직업을 가르치고, 행동을 가르치고, 구전(口傳)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칠 뿐만 아니라 너도 남을 가르치고 자손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승되었던 것입니다. 회당이나 학교가 생겨난 것은 바벨론 포수시대 이후입니다. 시골에서는 회당이자 학교요 학교이자 회당이었지만, 도시에서는 회당과 학교가 구분되었습니다. 대체로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나이가 되면 '벧 핫세퍼'-성서의 집-라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여기서는 다른 교육이 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외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서당에서「천자문(千字文)」이나 「논어(論語)」「맹자(孟子)」「사서삼경(四書三經)」을 무조건 외게 했던 것과 같습니다. 암기할 때에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왜 외어야 했는지 자연히 깨닫게 되지요. 중학교에 해당하는 나이에는 '벧 탈무드'--설명의 집--에 다닙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탈무드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것입니다.
그 탈무드와 미슈나 같은 것을 두고두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알게 했습니다. 고등교육기관은 '벧함미드라슈'인데 이는 '연구의 집'을 뜻합니다. 실습을 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실천하는 하나의 훈련도장입니다. 이 세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기술교육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것만 가르쳤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모본(模本)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교육현실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중요한 것은 쏙 빼버리고 중요치 않은 것만 가르치려드는 데에 많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여자대학의 학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입학 때만 되면 부모들이 찾아와 저를 괴롭힙니다. 떨어진 아이를 뒷문으로 좀 넣어달라는 이야기지요.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무조건 넣어만 달라고 사정합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입학시키고 안 시키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그렇게 입학시켰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겼을 때, 그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단 한번도 진실하게 가르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일생을 불행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래서 저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인 부모들이 있습디다. 앞날은 어찌되든 당장 합격을 시켜달라고 조릅니다. 여러분, 무엇이 중요한 것입니까? 진실을 팔아 얻은 대학졸업장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러면서 사람되기를 바랍니까? 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이요, 신앙이요, 진실입니다. 변변치 않은 물질 세상 욕심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맙시다.
오늘의 본문말씀에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그를 사랑하는 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리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 말씀합니다.
사랑하라, 새기라, 가르치라 --- 이 세 가지가 가정교육의 기본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다음에 입을 열어 가르칠 것입니다. 가정교육이란 보여주는 것이요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함께, 성경도 함께, 봉사도 함께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은 구제(救濟)할 때에 꼭 자녀들과 함께 한다고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의 경험이 있습니다. 걸인이 집으로 구걸을 하러 오면 쌀을 내주는 일은 늘 제차지였습니다. 어머니나 할머니께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꼭 저를 시킵니다. 여러분, 봉사는 훈련입니다. 우선 함께 하여 본을 보이고 그 다음에 가르쳐야 합니다.
대화 또한 중요합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생님이 원아들에게 종이를 나누어주고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라고 했답니다. 여러 그림 가운데 선생님은 좀 특이한 그림 한장을 골라낼 수 있었습니다. 입과 손은 지나치게 큰데 귀가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그림을 그린 원아를 심리적으로 유도하여 말을 시킵니다. 이야기인즉 잔소리를 많이 하니까 입만 크게 보이고, 걸핏하면 때리니까 손바닥만 크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귀는 왜 없느냐고요? 아이가 말하는 것은 도무지 들어주지 않으니까 귀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들어야 됩니다. 어느 교육가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은 태어나서 15세가 될 때까지 50만 번 정도로 부모에게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뭐죠?" "왜 그런가요?" 자꾸 묻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사람으로 키우는 기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쓸데없는 것을 왜 묻니?" "귀찮으니 저리 가!" 자녀들의 물음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면 그 부모에게는 듣는 귀가 없는 것입니다. 듣고 싶은 때에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부지런히'라는 말은 그저 열심히 가르치라는 것보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샤난'이라고 하는 이 말은 영어로 'repeat' 반복하여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원래는 '갈다'라는 뜻이며 'sharpen' 날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혹 칼을 갈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낫을 갈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칼을 갈 때에는 숫돌에 물을 뿌려가면서 살살 갈아야 합니다. 서두르면 날이 넘어버립니다.
앞뒤로 살살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갈아야 제대로 날을 세울 수 있습니다. 급하다고 박박 밀었다가는 날이 훌렁 넘어버립니다.
그래서 목수들을 보면 쉬는 동안에 마냥 대팻날을 갈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가르치라, 서두르지 마라, 반복해서 가르치라 - 칼을 갈듯이 창을 갈듯이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어 알도록, 사랑하도록, 순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고등부 학생들을 보면 자부심을 느낍니다. 30년 동안 목회하면서 보아온 일인데, 대체로 고등부 학생들은 고3이 되면 교회에 발을 뚝 끊습니다. 교회활동도 안하고 성가대에도 빠집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초조감 때문에 교회에 나올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교회의 고3학생들은 다릅니다. 저는 언제나 삼백 명이 넘는 고3학생들을 특별히 지도하고 상담하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자주 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열심히 교회에 나오더군요. 삼 년 전에는 교회에 나오면서 입시준비를 하던 고3학생들이 모두 대학에 합격하는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안나오던 학생들은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 뒤로는 고3이 되면 더 열심히 교회에 나옵니다.
나와서는 목사님들께 기도를 받고 상담을 자청하곤 합니다. 썩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느껴야 할 문제는 학생들의 태도가 아니라 '교회에 가지 말고 공부나 해라'하는 부모들의 그릇된 생각입니다. 본보기가 되지 못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근본인지를 가르치지 못하고 가치관만 흔들어놓으면 자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잠을 잘 때나 늘 말씀을 강론하고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말씀이 늘 귓가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렸을 적에 저는 잠들 때에 늘 성경말씀을 들었습니다. 호롱불을 켜놓고 제 잠자리에서 성경을 읽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언제나 눈에 선합니다. 지금도 그런 어머니의 가르침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폭력영화나 괴기영화를 보고 잠듭니다. 꿈에 강도를 만나고 귀신을 만납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겠습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나깨나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8-9)" --- 나갈 때에나 들어올 때에나 성경만 보이게 하라는 뜻입니다.
한번은 제가 어느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현관을 늘어서는데 벌거벗은 여자의 조상(彫像)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예술에 대해서 얼마나 조예가 깊은지는 모르겠으나 예술품(藝術品)이랍시고 그것을 버젓이 세워놓았습디다. 첫인상이 중요한 것입니다. 들어서면서 하나님의 말씀, 나가면서 하나님의 말씀,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일 때에 자연스럽게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교육학자 머레이 교수는 말했습니다. "기독교 교육에서 훈육(訓育)은 가르침을 초월한다. 예방은 치료보다 낫다. 습관은 도덕적 원리에 선행한다. 감정의 교훈은 판단의 훈계보다 선행한다. 본(本)을 보이는 것은 훈계보다 우월하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랑이 명령적 방법보다 낫다." 기도와 사랑으로 훈육하는 것보다 더 귀한 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녀 앞에서 본을 보여야 되겠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댁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지요. 목사님의 아들은 좋은 아이였는데 이제는 교회 밖으로 나돕니다. 교회가 어지러울 때에 장로님 집사님들이 목사님 사택으로 몰려와 좋지 않은 말을 하며 싸우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이는 마음에 충격을 받아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는 싸우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아픈 상처를 누가 치유해줄 것입니까? 여러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집안에서 교회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하지 맙시다. 교역자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이나 신도를 헐뜯는 말도 입 밖에 내지 맙시다. 가정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가정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이야기, 거룩한 이야기, 덕스러운 이야기, 칭찬하는 이야기만 존재해야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만 자녀들은 아름답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밴 뷰렌이 쓴 '부모의 기도'는 오늘날의 부모님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함께 듣고 가슴에 깊이 되새겨 봅시다. "오 하나님, 저를 훌륭한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자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그들이 말하려는 것을 진지하게 듣게 하시며, 그들의 모든 질문에 부드럽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나로 하여금 그들의 생각을 가로막거나 꾸짖지 말게 하시고, 그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거나 실수했을 때에 웃지 않도록 하여주옵소서. 그리고 제 자신의 만족이나 저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그들을 나무라는 일이 없게 하여주옵소서. 매 순간마다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을 통하여 정직한 것이 옳다는 것을 일러줄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제가 기분이 언짢을 때에 저의 입술을 지켜주시고 그들이 어린이라는 것과 그들이 어른과 같이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들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회를 허락할 수 있도록 저에게 참을성을 주시고 그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저를 정직하고 바르며 친절한 부모가 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존경하고 본받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귀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의 그릇됨을 나무라기 이전에,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기 이전에 훌륭한 부모가 되려는 기도부터 하십시오.
'백 명의 교사보다 한 사람의 어머니가 낫다'고 허버트는 말했습니다. 훌륭한 어머니만이 훌륭한 자식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것이 많겠지만 이 어린이 주일에는 우리가 훌륭한 신앙의 부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너는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하면 네 날이 장구하리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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