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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기독교, 삶을 떠나다8

by 【고동엽】 2021. 10. 2.
 
기독교, 삶을 떠나다
4. 5 세기에 성서와 다른 신학이 정립되다 3
기독교가 시작되었을 때, 유대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조상 신앙을 버리고 심각한
죄를 저지른 광신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로마 그리스인들로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제국 수호신에 대한 경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무신론자로 몰렸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기독교가 미신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임을 입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철학은 오늘날과 같이 이론 학문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종교와 구별이 없었습니다.
4 세기 초에 기독교 아킬레스건이 될 예수가 누구인가를 철학으로 설명하는 정확한 교리를 키워나갔습니다.(*1)
5 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풍토에서 성서 바탕으로 신학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성서에는, 예수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법 밖 소외된 죄인들, 병자들에게 참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부여하고 지금 이 땅 하나님나라에서 낮은 자, 약한 자가 존중받고 인간 존엄이 지켜지는 정의 - 평화 사회를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된 삶이 이루어지기를 가르쳤습니다. 3 년 여 사역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차별 상징이 된 성전에서 채찍을 휘드르며 항쟁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기득 세력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에게 너희가 법(모세) 자리에 앉아 판단하며 사람들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질타하십니다.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 그 기득 세력에게 뱀 새끼, 독사 새끼라고 상욕하시며 저항합니다.(마태23장)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성서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이 예수 사역과 가르침을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찾는, 성서 중심 신학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리스 철학에 따라 1. 자신 안에서 하나님 찾는 내면 성찰 신학과
2. 지적 동의를 위한 교리를 정립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내면 성찰 신학에 대한 비판 이해
거듭 말씀드리지만, 참 자아를 찾는 내면 성찰은 모든 종교가 가는 길 입니다. 기독교도 종교 틀을 갖추기 때문에 내면 성찰과 교리를 소홀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성당은 예수 따르는 삶은 없고 내면 성찰과 교리만 있습니다. 본말이 전도된 현실 입니다.
종교학자들과 동양학자들이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내면 성찰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버무르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왜곡 입니다. 동양학과 다른 종교는 자기 길을 가고 기독교는 참 생명과 자유 평화를 위해 예수 따르는 삶의 길을 가면 그것이 세계 평화를 위한 길 입니다.
참 자아를 찾는 내면 성찰을 혼자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성당에서 신앙 생활 일환이면 내면 성찰하기 위한 바른 사람들 세가 형성되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외자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신앙 엘리트인 바리새인 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신에게서 오는 영 현상도 사랑이 아니면 무익하다는 인상적인 말을 합니다.
세계 모든 종교는 세상을 떠나서 자기 자아를 찾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계와 함께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데요,
예수는 내면 성찰 위해 수련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손 씻지 않고 식사하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자신도 손 씻지 않고 식사합니다. 당시에 손 씻고 식사는 중요한 정결법 입니다. 예수께서는 술꾼이요 먹보라는 비난을 들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랑은 자기 성찰이 아니라 상대를 용납하는 행위 입니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 성 소수자, 성 매매자, 사회 약자, 노숙인, 부랑자가 마음 편히 교회성당 참석할 수 있나요? 예수께서 이러한 사람들이 성전에 가지 못하는 것을 항의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채찍 휘두르며 항쟁하신 현실이, 지금 한국에도 같은 현실 입니다.
기독교는 자아 성찰을 통해 바른 사람되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 소외된 자가 존중받고 한 인간 존엄이 지켜짐으로써 이루는 화해 평화를 목표합니다. 기독교가 출발부터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더 살펴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영 이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을 성령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리스 철학에 따라 영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은사 개념으로 파악합니다. 영 인격성이 퇴각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대부분 중세 신학자들은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사랑과(로마5:5) 동일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사를 피조적 은사로 여기며 성령과 구분했습니다.
영은 곤란한 곳에서는 어느 곳이나 등장하는 미봉책이 아닙니다.
성령은, 나를 사랑으로 인도하시며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힘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2)
구약 성서에서 영은 숨, 바람이라는 뜻의 '루아흐'인데 신 나타남(현현)을 의미합니다.
요한 복음 6 장 63 절과 고린도후서 3 장 6 절은 영을 인격화해서 지금 삶에서 우리 생명을 살리시는 분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이러한 본문을 하나님이 지금 이 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론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3)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나라 이해
그는 정신, 심령 하나님나라와 세속 나라를 구별하여 하나님 구원 사역을 세속사 밖의 구원으로 파악합니다.
또한 교회를 세상과 구별하여 예수 재림 때까지 사회 절대자로 군림하는 사상을 닣아서 역사와 사회 안에 있는 하나님나라 사상이 없어졌습니다. 즉 하나님나라 현재성이 상실되었습니다.(*4)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역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말 입니다.
교부 가이샤라 유세비우스는 기독교를 국교화한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와 로마 제국을 하나님 도구라고 하는 제국신학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야만인 서고트족에 의해 서 로마 제국이 멸망하자(410년) 기독교 존립이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문제에 답하고, 서로마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성'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5)
성서는, 하나님나라가 지금 이 땅 우리 삶에서 이루어가는 길임을 무수히 증언합니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은 예수께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죄인, 사회 낙오자들에게 주시는 생명과 자유, 평화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사역을 방해하는 기득 세력에 저항하시는 예수에 대해 증언한 복음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서 말하는 사랑은 공허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은 20 세기가 올 때까지 기독교 신학 중심이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 대부분 교회 성당은 이러한 신학에 머물러 있습니다. 때문에, 아직도 복음서에서 하나님나라 현재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바울 서신들이 하나님나라 사역의 현실성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심령적이고 저 세상 피안 구원에 대한 진술로 여깁니다.
그래서 보수 신학은 아직도 구원을 영혼 구원이라면서 심령, 피안 구원을 말하고 사회 구조 악을 보지 못합니다. 기독교가 현실성을 잃었습니다.
진보 신학자들은 현재 신학이 현실과 맞지 않으므로 성서를 외면하고 사회과학을 교회에 그대로 접목합니다.
그래서 종교와 사회과학 구별이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성서 연구가 짧으므로 루터식 바울 이해를 그대로 따라서, 바울을 오해하여 바울 버리고 예수에게 가자고 합니다.(문동환)
삼위일체 신론과 하나님나라 현재성 실종은 예수사랑도 함께 실종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기독교 신학이 정립될 시부터 영으로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하나님나라가 현재 우리 삶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신학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신 사랑이 전혀 필요하지도, 작동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세계인들이 그리스도인을 사랑 많은 사람으로 인식하나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인 현재 신학 바탕에서, 예수 사역과 그 분 최고 가르침인 사랑이 유명무실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1.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정준형 웅진 지식하우스 서울 2013, 165-166, 177p
2.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판넨베르그 조직신학 3 새물결 플러스 서울 2019, 28p
3. 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1-1 박순경 대한기독교서회 서울 2003, 605p
4.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죽재서남동기념사업회 서울 2018, 22-23p
5. 알리스터 맥그레이브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김선일 IVP 서울 2001, 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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