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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예화모음 31편

by 【고동엽】 2017.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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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거듭남

 

`다시 태어나다' 또는 `회복되다'.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 단지 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마19:28, 딛3:5), 많은 유사한 표현들을 통하여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를 추적할 수 있다. 이 단어와 관계되는 용어들은 "거듭나다"(요3:3), "하나님께로서 나다"(요1:13, 요일3:9), "살아나다"(엡2:1,5), "새롭게 되다"(롬12:2, 딛3;5) 등이다.


중생은 하나님의 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에 일어난 영적 변화이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유전적인 죄의 속성이 변화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생에는 마음의 조명과 의지의 변화와 성격의 갱신이 포함된다. 이것은 인간의 전인적인 성격에까지 확장되며, 자기의 성향을 지배하는 요소를 결정적으로 개혁시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데까지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이다(고후5:17, 롬6;4).


중생의 과정에서 인간은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이다. 여전히 죄의 속박가운데 거할 동안에는 수동적이며, 거기서 풀려났을 때에는 능동적인 것이다. 성령의 중생케 하는 역사는 인간이 전에 무엇에게 복종하였던가라는 것에 제약받지 아니한다. 다만 인간이 죄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즉 중생하였을 때, 인간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께로 자기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2.중생의 낱말 뜻

 

1. 다시 중요하게 태어남.
2. 원어로는 '팔린케니시아'로서 출생하다(게네시스)와 새롭게 다시한번(팔린) 에서 온 말로 영적으로 다시남. 메사야적인 회복이란 뜻.
3.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적 새사람으로 거듭남.(벧전1:3).
4. 새로온 피조물이 됨.(고후5:17).
5. 다시 나게 함. regeneration.(딛3:5). /이현 목사

 

 
 

3.거듭남에 관한 성경 말씀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5)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3- 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10)


*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4.거듭난 교회가 되자

 

사람은 누구나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가 있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거나 교도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요, 내일을 향한 꿈과 비젼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일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의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을 부단히 개선하고 아무리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라 할지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한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목표는 우리가 복을 받아 행복하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모든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18절에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교인을 세가지로 구분하면 교인들을 몰아내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 혼자만 다니는 신자,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세상이 천국이 됩니다. 참된 신자는 가정과 직장에서 이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유익을 끼치고 기쁘게 하였더니 모두가 이런 하나님을 믿고자 하였습니다.사람이 살아야 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랑은 하나님의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을 때입니다.

 

왜 교회가 존재하여야 합니까? 교회는 지역과 사회를 위해 필요한 곳이 되어야 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에게 친구가 되어야 하며, 교회의 사명은 나눔과 섬김의 봉사를 통해 빛과 소금의 역할로 전도의 도구를 삼아 복음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교회가 성장 일변도로 나아가 양적인 성장과 외적인 건물은 웅장해지고 재정은 넉넉해졌지만 지역과 사회를 향한 선교와 나눔에는 인색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때로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자기를 성찰하여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며 지역과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나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행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됩니다. 착한 행실이 세상에 빛된 생활입니다. 크리스천의 생활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겠다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유익을 끼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윤훈종 목사

 

 
 

5.배꼽줄을 자르라

 

시골집에서 키우는 개가 초산인데도 새끼를 아홉 마리를 낳았습니다. 키우는 분이 새끼를 낳으면 배꼽줄을 잘라주려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어미개가 출산 경험이 없는 초산인데도 배꼽줄을 다 잘라주고 태반도 먹어버렸는지 온데간데없더랍니다.

 

그런데 성경 에스겔16장 4- 5절에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민 이스라엘(예루살렘)의 근본을 설명하는 말씀인데 그 다음에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라는 말씀은 그들이 선민이라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결하지 못하고 더러운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중동지방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물로 씻고, 피부의 건강과 소독을 위해서 소금을 뿌리는 습관이 있는데 물로 씻지도 않고 소금도 뿌리지 않은 부정한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배꼽줄을 자르지 않았다”라는 말씀에는 영적인 깊은 뜻이 있습니다. 어린 아기가 어미 뱃속에 있을 때에는 배꼽줄을 통해서 영양공급을 받아 살지만 출생한 다음에는 엄마의 젖을 통해서 영양을 섭취하기 때문에 전혀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런데 출생한 다음에도 배꼽줄을 달고 있으면서 뱃속에서처럼 살려고 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천국백성이 된 다음에는 거듭나기 전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아야 축복도 받고 평안과 행복도 있는 법입니다. /김홍도 목사

 
 

7.거듭났을 때 삶은 빛난다

 

중국 내지 선교의 개척자 허드슨 테일러 목사의 이야기
그가 중국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신자가 되는데 몇년이 필요합니까?" 라고 물었다.
"램프의 심지는 얼마 동안 타고 빛을 발합니까?"
테일러 목사가 이렇게 반문하자 청년은
"그야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라고 대답했다. 테일러 목사는 청년의 손을 꼭잡고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삶의 빛이 그 영혼에서 타오르게 된답니다."

 
 

8.솔개의 선택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다. 솔개는 최고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세가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솔개는 약 40세가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된다.

 

이 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 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 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5)
고통스러운 재탄생 과정을 생략하고는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도태하시겠습니까? 비상하시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 행복한 미래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

 
 

9.거듭난 아들의 삶

 

어느 장로님 가정에 딸을 다섯이나 낳고 여섯 번 째 외아들을 낳았다. 너무 기뻐 이 가정에 대 경사가 되었다. 이 외아들은 귀엽게 자랐다. 그러나 그는 부모와 누님의 사랑 속에 버릇없이 빗나간 생활을 하였다. 온 마을의 골칫거리 아들이 되고 말았다.

 

이 외아들은 동네 마을에 못된 일을 저질러 온갖 손해를 입히고 아버지 장로님을 욕되게 할 뿐 아니라 교회도 욕을 먹게 하였다. 손해를 입히면 부모님은 그 사람들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손해 배상을 해주고 갖은 욕설과 창피와 모욕을 당하였다. 그러나 어찌할 대책이 없어 그들은 매일같이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을 하였다.

 

어느 날 못된 아들이 술을 먹고 인사불성 상태로 집에 들어 왔을 때 부모님들은 방에 엎드려 눈물로 뺨을 적시며 기도하느라고 눈이 통퉁 부어 있었다. 이때 아들은 "무엇을 하느냐"고 발길로 차고 행패를 부렸다. 그러나 눈이 시뻘겋게 부어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자 목석같던 아들이 숙연해지며 말을 못하고 주저앉았다.

 

날이 새자 술에서 깬 아들은 부모님 앞에 가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며 용서를 빌었다. 이때 부모님들은 "오냐, 그래야지" 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목사님을 청하여 가정 예배를 드렸다. 이때 이 아들은 마루에 나와 대들보에 무수한 못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저 못이 왜 저렇게 많이 박혔느냐고 물었다.

 

"그 못은 네가 못된 짓을 할 때마다 하나씩 박은 것이란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하며 다시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린 아들은 "아버지, 내가 좋은 일을 하고 나서 저 못을 하나씩 뽑으면 되겠네요?" 하고 말했다. 그후에 이 아들은 선행을 열심히 하여 못을 다 뽑았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이제 못을 다 뽑았으니 됐지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못 자국은 그대로 있지 않느냐? 너는 저 못 자국을 보고 겸손히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고 타일렀다.

 
 

10. 진정 거듭나셨습니까?

 

미국의 대선 주자들이 꼭 대답해야 할 첫번째 질문은 “당신은 정말 거듭났느냐”는 말입니다. 찰스 콜슨은 미국에서 교도소 선교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닉슨 행정부 때 닉슨의 보좌관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고뇌하고 기도하던 중에 친구가 넣어준 시어즈 레이스가 쓴 ‘크리스천이리라’는 책을 읽다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경험을 ‘거듭남’(Born again)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썼습니다. 이 책은 당시 기독교서점 뿐 아니라 일반서점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본 어게인’이라는 말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부터 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본 어게인’한 사람인가를 묻게 되었고 이것은 그때 이후 대선 주자들이 거쳐야 되는 첫번째 시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철재목사(서울 성서교회)

 
 

11.말씀으로 거듭남

 

성경: "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1:23)
예수님은 생명 로고스(말씀), 성경은 문자 로고스입니다.


생명 로고스는 마리아를 통해 성육신 되었고 그 예수가 성령을 통하여 성육신 되셨습니다. 생명의 정체는 아직도 신비의 베일 속에 감추어 있습니다. 종자의 갑아나 종의 정자 자체는 물질이지 생명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종자를 흙속에 묻으면 싹이 나고 남자의 종자를 여자의 자궁밭에 심으면 아기가 되는데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제삼의 손의 작업이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산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말씀이 영혼 속 믿음이란 자궁에 심어지면 성령이 거듭난 새 생명을 임신시킵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거듭날 때 성령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중생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습니까.먼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게 됩니다.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삼위일체의 제3격인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시게 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죄를 이길 능력도 없었고,신령한 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그러나 거듭날 때 성령이 들어오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매일 우리와 동행자가 되어 주십니다.(고린도전서 6:19) 거듭난 사람은 세상을 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사랑하는 친구와 같이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변화됩니다.(갈라디아서 2:20) 부자 죄인이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불러 나무에서 내려오라 하시고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실 때,삭개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자원하여 말했습니다.

 

그의 회심은 하나님과도 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과도 바른 관계를 맺게 했습니다. 한 젊은이가 어머니의 마음을 찢어놓고 아내의 생활을 망쳐놓곤 했습니다.직장을 얻었다가는 술과 도박으로 도로 잃곤 했습니다.가족들이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안되었습니다. 그는 어느날 예수 믿는 친구에게 『나는 남미로 가서 생활을 새로 시작해 볼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네가 그 곳에 가도 네 옛사람 그대로 가지고,옛 사람의 습관과 죄를 짓게 되면 아무 소용없어.외부적인 조건이나 새로운 환경이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해.자네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한가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거야.그러면 분명히 다시 태어나게 될거야』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 말이 화살처럼 그 젊은이의 가슴을 꿰뚫었습니다.그는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죄를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중생만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중생하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요한일서 5장4절).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우리가 거듭날 때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셔서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남을 사랑하게 됩니다.거듭난 사람의 확실한 표적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요한일서3: 14)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순종하고 그를 위해 살게 됩니다.정말로 거듭나서 심령상태가 바로 서게 되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교인으로서 주님께 순종하며 매일 매일 주를 위해 선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세상적인 복을 받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영생을 얻는 것은 더욱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천국과 하늘의 영광과 그 복락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거듭나기 전에는 결코 이것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학위들을 받았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BA학위,즉 Born Again(중생)의 학위를 못 받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3.중국 스파이

 

중국이 서방세계를 향하여 문을 열기전, 그러니까 문화형명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한 중국 스파이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여러해 동안 미국 정부기관에서 일하며 완전한 미국인 행세를 했습니다. 우선 그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서양사람이었고, 중국인구가 10억이 넘으니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양식 얼굴을 가지 사람을 고르기가 어렵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고 합니다. 제스춰는 전형적인 미국 사람의 제스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를 수상하게 여긴 정보요원이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럽 여행중에 한 시내버스곁에 서서 일종의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휘파람을 부르면서 미국 국가를 불러봤습니다. 반응이 없어요. 미국은 여러나라에서 온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살고 있어도 내가 미국인이라고 느끼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꼭 두가지 경우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자기가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첫 번째 경우에 미국에 살고있는 사람이 자기가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미국에 미국에서 명절이 되면 휴일이 되고 TV에 풋볼을 보고 앉아 있는거여요.

 

미식축구가 미국 사람들의 일종의 고통분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구 시합할 때 미국 국가를 부르는데 미국 국가를 부를 때서야 아 내가 미국인이지 하고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미국국가를 불러도 이 사람이 전혀 반응이 없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중국국가 휘파람으로 불러보았다고 합니다. 탁 쳐다보더래요. 쳐다보더니 그 다음에 계속 휘파람을 불고 있으니꺄 발로 장단을 맞추더래요. 이 사람이 틀림없이 스파아다라는 확신을 정보요원이 갖게 되고 체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이 사람은 완전한 미국인을 가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혈관 속에서 중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중국인의 리듬이 계속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미국인이 계속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단순한 이유가 있었다면 이 사람은 미국인으로 태어나 사실이 없었습니다.

 

그는 미국인 처럼 행동하고, 미국인이 사는 삶을 모방했지만 그가 결국 미국인이 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면 그는 미국인으로 태어나 사실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찬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찬이 되는 것이 모방에 의해 되은 것 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이 교회가니까 내가 교회간다. 남이 찬송하니까 나도 한다. 그러나 그가 거듭난 경험이 없었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동원 목사

 

 
 

14. 피를 좋아하는 표범

 

아프리카에 한 마을이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숲속에서 표범 새끼를 잡아왔다. 새끼이지만 '표범'을 아이들이 데리고 노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여서 다들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밖이 소란스러운가하고 마을의 추장이 나왔다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애들아, 너희들 그거 어디서 잡았니?"
"숲속에서 혼자 울고 있어서 데려왔어요."
"어미가 찾아오면 어떻하려구!?!"
"어미는 없는 것 같던데요?"
"얘들아, 그래도 표범은 사람을 잡아먹으니까 빨리 내다 버려라."
"괜찮아요, 여태까지 계속 풀만 주는데도 잘 먹어요!"
"지금은 새끼니까 그렇지! 나중에 크면 너희들을 모두 잡아먹고 말거다!!"
어른들이 아무리 겁을 주고, 버리라고 해도 아이들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일단은 두고 보기로 했다.

 

새끼 표범은 자라면서 풀만 먹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표범은 금세 큰 표범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순했다. 아이들과 뛰기도 하고 같이 장난도 치면서 즐겁게 놀았다. 먹을 때도 같이 먹고, 잘 때도 같이 잤다. 덩치만 컸지 고양이와 다름없었다.
아이들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풀만 먹고 자란 표범은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고 정글에서도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전과 같이 표범과 함께 정글로 놀러갔다. 한참을 재미있게 놀다가 한 남자아이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빠르게 달리다가 넘어진 터라 무릎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너무 아픈 나머지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표범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앞서 가던 아이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표범은 안쓰럽다는 듯이 아이의 무릎에 있는 상처를 혀로 핥아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표범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원래, 고기를 먹는 동물인 표범이 드디어 피 맛(?)을 본 것이다. 결국 그 표범은 아이들 모두를 덮쳐 잡아먹고 말았다!!
'에디오피아인이 그의 피부를 바꿀 수 있으며, 표범이 그의 점들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아담의 본성을 타고 난 우리들은 모두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 우리들이 아무리 봉사를 하고, 선행을 할지라도 우리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다. 표범이 아무리 고양이 같이 행동할지라도 표범은 표범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때는 아무리 착하고 순하게 보일지라도 우리의 본성 자체는 '죄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요 3:7)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행동을 개선하는 것 말고, 우리 자체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들일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15.중생의 확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경: 갈2:20


'어둠을 탓하지 말고 네가 작은 촛불이 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이 중생하지 못한 사람에게 가능할 것인가? 왜냐하면 자신의 몸을 태워 촛불이 되고 몸을 녹여 소금이 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물 중에 가장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렘17:9).

 

이것은 오로지 성령의 법으로 사는 사람(롬8:2)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을 따르기 위해서는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박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라는 중생의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중생의 확신 속에서 새 사람을 입은 사람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6.이 몸의 소망 무엔가

 

젊은 시절, 에드워드는 양철 캐비닛을 만들면서 열등 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어느 추운 겨울날, 런던 거리를 배회하던 에드워드는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한 목사님이 거듭남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다. 그 말씀을 듣던 에드워드의 마음에는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는 강한 소원이 일어났다. 그 순간 성령이 그에게 임했고,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다. 그 일 후, 에드워드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며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행복한 일꾼이 되었다. 일하면서도 찬송을 불렀으며, 일하는 보람이 생기자 일의 능률도 오르고 신용도 얻어 수입이 좋아졌다.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거듭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가 소유한 재산을 교회를 짓는 데 아낌없이 드렸고, 그 자신도 목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소망 되신 주님께 감사의 시를 지어 드렸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539장이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 드림 메이커 / 신경직

 

 
 

17.낡은 껍질을 벗자

 

제가 살고 있던 곳에 아들 하나를 둔 거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매우 착하고 평화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대째 거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거지 생활을 면해 보자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졌더라면 3대째 거지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생활이 편안하다는 암시가 은연중에 있었기 때문에 3대째 계속 거지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제가 항상 다니던 길목에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평생 다른 직업을 가져 보지도 않고 이 일만을 계속해왔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궤짝 하나만 차려 놓으면 그럭저럭 밥을 먹고사니까 별 불만 없이 그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 · 25 후에 그 분의 친구 하나가 일자리가 없어 할아버지 옆에서 조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술도 없고 하니까 옆에서 보따리를 펴놓고 비누나 칫솔 같은 일용품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수지가 맞으니까 궤짝을 놓고 팔게 되었고 거기서 발전하여 구멍 가게를 하다가 점점 더 커져서 지금은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할아버지는 자기의 구두 궤짝이 고맙기도 하지만 이 꿰짝이 없었으면 자기도 보따리 장사를 해서 친구와 같이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손해를 본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념과 의지와 노력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신념과 의지와 노력의 몇 천 배의 더 크고 더 뜻깊은 일을 신앙을 통해서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이 구두 궤짝이나 거지 생활'과 같은 궤도를 일생 동안 돌다가 죽어 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에게는 그런 구두 궤짝은 없습니까?

 

거지 보따리는 없습니까?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구두를 닦든지 무슨 장사를 하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위대한 꿈을 가지고 민족을 지도할 수 있고 세계를 지도할 수 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줄 수도 있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사도 바울같이 그렇게 쓰임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 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상점 하나에 묶여서 살고, 직업 보따리 속에서 궤도를 일생동안 돌다가 죽고, 한 번도 껍데기를 깨 보지 못하고, 한 번도 그 궤도를 벗어나 보지 못하고, 한 번도 누에가 고치 속에서 나오지 못해 나비가 되어 보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경화되어 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죽음의 궤도를 도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한번 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궤도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병아리는 껍질을 깨 버려야 병아리가 되어 나옵니다. 그 껍질을 깨 버리지 않고 그 속에서 살려고 노력을 하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아기가 엄마의 배속이 편안하다고 해서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면 아기는 죽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자기의 정신 생활에 있어서,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지적인 생활에 있어서, 신앙 생활에 있어서,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장을 할 때마다 껍질이 있는데 이 낡은 껍질을 빗겨 버려야 합니다. 아픔이 있더라도 이것을 벗겨 버리고 탈피하고 초월하고 비약하는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김준곤 목사

 

 
 

18.성령으로 거듭남

 

사람 스스로는 예수를 믿고 거듭날 수 없습니다. 중생의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는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그가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훌륭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 많거나 지혜가 더 많아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죄와 싸울 것도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도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육신의 소욕에 지고 맙니다.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에도 보면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 힘으로 신앙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8장부터 보면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승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죄를 이기는 능력은 성령을 따라 사는 생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은 영적인 일에 무능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봉사에 쓰여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의 목적은 영적인 봉사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무디(D.L. Moodv)는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못나온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키도 작고 목소리도 나빴다고 합니다. 배운 것이 없고 훌륭한 체모를 가지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무디와 같은 부흥사는 없다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성령에 사로 잡힌 사람이 될 때에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나타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 보면 "빌기를 다 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나 기도나 봉사나 무엇이든지 성령을 받아야 그 능력이 오는 것을 믿으시고 아무쪼록 열심히 기도하고 사모하고 기다려 성령 충만히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19. 두 번 태어나야 한다

 

계란이 어미 뱃속에서 한 번 태어나서는 닭구실을 못합니다. 다시 한 번 태어나야 보기도 먹기도 다니기도 하는 닭이 됩니다. 예수께서 "사람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한다"(요한3장)고 할 때 종교지도자였던 니고데모가 깨닫지 못하고 늙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오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육신이 태어난 것은 육신이고 속사람은 영혼이다시 태어나야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 번만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고 (계21:8 불못에 들어감)두번 태어난 사람은 육신의 죽음 한 번 밖에 당하지 않고 천국에 갑니다. 거듭나는 과정은 바람이 부는 것같이 신비로워 설명할 수는 없으나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됩니다.(요1:12, 3:16) 마치 난자가 정자를 받아 들일 때 생명체가 되는 것처럼, 영의 세계는 믿음으로 됩니다.

 
 

20.거듭날 가능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셨을 때 박식한 종교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이야기를 통하여 중생의 깊은 이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옛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황야를 헤매고 있을 때의 일이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뱀을 보내어 많은 백성들이 뱀에게 물려 죽게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이들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청동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걸어 두면,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과연 그 청동뱀을 쳐다본 자는 모두 살아났다.
예수님은 다시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21.거듭난 사람의 증거

 

미국에 있는 어떤 자매가 변화된 모습으로 자신의 가정을 살펴보니 남편은 여전히 세상의 쾌락을 좇고 있었다고 한다. TV프로도 세속적인 것만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 자매도 전에는 그런 프로를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설교가 나오는 프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자매의 모습을 본 남편은 빈정거렸다.
“당신, 완전히 돈 사람 같군. 술이나 담배도 안하고 바가지도 안 긁고 욕도 안하고 이젠 하루 종일 기도하고 성경만 읽네. 그러고도 얼굴엔 늘 기쁨이 가득하니 미쳐도 제대로 미쳤군 그래.”


주일이 되어 성경을 들고 집을 나서면 남편과 시누이들이 비웃었다.
“아니, 성경은 왜 가지고 가?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읽어 주시는데 뭐하러 귀찮게 성경을 가지고 가?” 미국의 교회 목사님들은 성경 말씀보다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의 세상적인 말을 더 많이 하고, 또 성도들은 그런 말만 듣고 성찬만 행하면 다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줄로 알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답답한 일인가? 거듭나기 전의 자매 모습도 물론 이들과 같았지만, 이제 은혜를 받고 나니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이웃에게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불길같이 일어났다.


그래서 마리아가 주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던 것처럼, 복 있는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처럼, 그 자매님은 말씀을 즐거워하고 가까이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으로서의 증거인 것이다. /염명수 목사

 

 
 

22.거듭나야 할 이유

 

누가 거듭나야 하는가?
인생은 그 누구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안 된다. 분명히 성경은 거듭나야 할 대상이 사람임을 말씀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거듭나야 한다. 왜 그럴까? 왜 거듭나야만 할까? 히브리서 2장 7절에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웠다고 했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인가? 근심에 싸여 있다. 낙심하고 가슴을 쥐어뜯는다. 양심은 벌써 화인 맞았고, 저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인생들이다. 또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태어난다. 부정이며 부패며 완전한 타락이다. 어찌 이러한 인생인 천사보다 조금 못하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운 존재란 말인가? 그러므로 사람은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변한규 목사

 

 
 

23.존 뉴튼의 거듭남

 

존 뉴튼은 당시 지중해를 오가는 상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나이 열한 살부터 선원이 되었다. 어렸을 때에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앙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선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성격도 거칠어지고 삐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난폭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오는 노예선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배 안에서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1748년 3월 1일 그는 배 안에서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그의 영혼 속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와 찬송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된 것이다.


그후 그는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의 정리하고 그가 대적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교회에서 27년간을 사역했다. 그런 중에 그가 회개한 지 29년 되는 1779년,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하여 미국 민요 Amziging Grace곡에 붙여 부르게 되었다. 이 찬송가에서 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방황하던 자신을 건져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24.날마다 죽노라

 

농촌에서 짧은 시간에 목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누에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씨로부터 부화를 해서 고치를 따서 출하하기까지 30일이면 작업이 끝나는 일이다. 매우 힘이 들고 어려운 듯하지만 해마다 봄과 여름철에 누에고치를 생산하는 일은 수고한 보람이 있었다. 누에는 5령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시기까지 온도와 습도, 그리고 먹이를 시간에 맞추어 보살펴 공급하지 않는다면 실패를 하는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누에가 잠을 자는 모습을 살펴보면 그렇게도 열심히 뽕잎을 먹던 부지런하던 누에가 머리를 들고 가만히 멈추어 있다. 만 하루 동안 가만히 있다가 마지막 순간의 모습을 보면 먼저 입 마게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작은 구멍으로 몸이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너무도 힘들어 보이지만 전심전력하여 빠져 나오게 되면 누에는 잠자기 전보다 상당히 성장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힘이 약하거나 병든 누에는 잠을 자고 난 다음에 입 마게는 떨어졌어도 몸이 그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지 못하여 결국은 살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달 동안 누에는 다섯차례나 이러한 힘겨운 잠을 잔 후에 껍질을 벗는 일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정상적으로 치루어야 고치를 짓고 나방이 되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생산하는 성공적인 생애를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 살이를 살펴보면 날마다 거듭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거듭나는 일은 날마다 죽는 것과 같은 경험을 체험하게 되어야 한다. 어제의 일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려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험난한 시험들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통과해야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중간에 멈출 수 밖에 없는 실패한 생애가 된다. 누에의 모본을 통하여 나의 인생을 날마다 새로와 지는 경험을 체험하기를 빕니다.

 

 
 

 

25.바닷가재의 탈피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바닷가재(lobster)를 닮았다. 바닷가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속살을 보호해 주던 단단한 옛 껍질을 스스로 벗어 버리고 더 커다란 새 껍질을 뒤집어 써야 한다. 이처럼 낡은 껍질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탈피’라고 부른다. 바닷가재는 5년간의 성장기를 보내면서 무려 25번의 탈피 과정을 거치며, 다 자란 뒤에도 1년에 한 번씩 껍질을 벗는다.


탈피는 끔찍하고도 성가신 과정이다. 낡고 단단한 외피가 압력을 받아 쪼개지면, 바닷가재는 모로 누운 채 근육을 꼼지락거려 벌어진 각질 사이를 빠져나온다. 낡은 껍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외피가 생길 때까지,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바닷가재는 외부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벌거벗은 상태에서 지내야 한다.


명실상부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낡고 단단한 껍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한다. 케케묵은 관습을 벗어나자면, 한꺼번에 밀려드는 괴롭고 고된 일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모험적이고 두려운 결정이긴 하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움직이면 곧이어 다른 이들과 교감할 수 있으며, 결국 교회가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도록 자신을 맡기는 그 고단한 일을 감당해 나가다 보면 시스템 전체를 바꿔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 피터 스카지로「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

 

 
 

26.거듭나는 도리

 

영국의 에드워드 모트는 37세까지 캐비닛 제조공으로 일했다.이 사람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의 삶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소망이 없었다.
어느 겨울 그는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 교회를 보고 예배당에 들어갔다.그때 존 하야트 목사가 요한복음 3장으로 ‘거듭나는 도리’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래,나도 거듭나야 한다’는 강렬한 소원을 가지게 됐다.성령께서 그의 마음의 문을 여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내 망치 소리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그리고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나는 거듭났다”고 말했다.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그 소망은 산 소망이었다.


그는 전에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행복한 목공으로 완전히 변화됐다.삶도 점점 풍요로워졌다.자기가 일하던 목공소가 그의 소유가 됐고 점점 커졌다.결국 에드워드 모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됐고 예수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찬송시를 기록했다(찬송가 539).
/고수철 목사(흑석동제일교회)

 

 
 

27.거듭나지 못한 마음

 

러시아 우주 비행사인 가가린(Yurii A. Gagarin)은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만에 지구의 상공을 일주함으로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그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감상을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하나님은 우주의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러나 1971년 아폴로 15호의 승무원으로 달을 탐사한 미국의 우주 비행사 제임스 어윈(James B. Irwin)은 가가린과 달리 이렇게 말했다. “달나라에 있는 동안 나는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서 체험했다.”


신자는 골방에서도 하나님을 느낄 수 있지만, 불신자는 온 우주를 돌아다닐지라도 하나님을 느낄 수 없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완전히 굳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 굳은 마음을 ‘돌의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반면에 부드러운 마음은 ‘살코기의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한번 생각해 보라. 여러분의 손에 칼이 들려 있고, 여러분 앞에는 딱딱한 돌덩이와 부드러운 살코기 한 덩어리가 놓여 있다. 이 두 물건을 칼로 자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처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돌과 같은 마음이다.- 김남준 <마음지킴>

 

 
 

28.거듭나는 콩

 

콩나물을 기르기 위해 콩 고르기를 하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모든 콩이 다 콩나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흠 없고 온전한 콩이어야 콩나물로 자랄 수 있다. 벌레 먹은 콩이나 반으로 쪼개진 것은 콩나물로 거듭날 수 없다. 콩을 한 움큼 쟁반위에 올려놓고 한쪽으로 기울이면 온전한 콩은 한 방향으로 굴러 한곳에 모인다. 모가 난 콩이나 벌레먹은 것은 제 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는다. 예수 닮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신 예수님처럼 된다. 모가 나서 구르지 않고,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심이 강한 교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 중에서 의인들을 골라내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뜻을 이뤄가신다. 나는 어떤 콩인가?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29.세상에 성질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화가 났는데, 압력이 찼는데,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면 속으로 들어가 속병이 될 수밖에 없지요. 자꾸 참은 것이 모아져서 어느 한 순간에 큰 화산이 되어 터질 수도 있습니다. 몸의 원리상으로도 화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소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간을 상하게 하고 여러 가지 질병을 유발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것이 바로 홧병, 가슴의 죄입니다. 그렇다고 마구 화를 내뱉으면서 살수는 없는 일. 분냄, 성냄, 격분으로 인해 서로가 상처받고 망가지는 인간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두가 체험하고 있는 일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여전히 화를 내고 살까요? 도대체 그리스도인은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화를 내지 말아야지 결심하고 노력하고 다짐하고 참는다고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 자기 의(義)이고 땅의 방법이고 육체의 길이며 육체의 길은 사망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도 자유가 없고, 기쁨이 없고, 삶은 지치고 건조해져 불평이 일고 불만이 쌓이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자기가 살아서 자기 의로 어떻게 성경에 나오는 삶을 살아 보려고 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삶은 애쓰면 애쓸수록 원하는 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며 살게 된다는 바울의 고백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러면 도대체 화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애초부터 화날 일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한 좋은 세상을 처음 본 그 첫 새벽. 열린 눈으로 보니 화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화날 일은 애초부터 없었구나로 보여지던 순간. 아! 그런 거듭남의 체험의 순간을 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본래 화날 일이 없는 세계로, 싫음이 없는 세계로, 원망과 탓이 없는 세계로 지으셨는데, 죄와 허물의 기운에 씌워 내 생각과 내 느낌으로 보고 산 것이구나! 실제와는 아무 상관없이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내면서 말이야..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그동안 화날 일과 싸웠는데 그게 아니지요? 화날 일이 없으니 이제는 더 이상 싸움은 저절로 그치는 것입니다. 결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원리를, 이치를 발견하면 이렇게 저절로 삶의 방향이 바뀌고 주께서 원하시는 삶의 길로 저절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최용우

 

 
 

30.살았으나 죽은사람

 

유치원에 다니는 밝은이는 마당에 피어있는 꽃들을 이빨로 물어 끊어서 한 주먹씩 따와 엄마아빠에게 꽃선물 하기를 좋아합니다. 꽃선물을 받으면 고마워하며 꽃병에 꽂아놓지요. (마당에 꽃이 많아서 그 정도 꺾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싱싱한 꽃이라도 3일만 지나면 시들어버립니다. 꺾인 꽃은 뿌리가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라는 칼이 하나님을 알아보는 우리의 영혼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겉은 멀쩡한데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 안에서 새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거듭남(다시 살아남)'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동안 영이 살아있는 사람과 영이 죽은 사람을 구별하게 해달라고 매달리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영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지를 들고 노방전도를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 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그냥 얼굴만 봐도 압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한 눈에 영이 죽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영적 민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며 찬송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혼의 상태와는 무관하게 신앙생활을 취미로 하는 사람 정도는 척! 가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헛된 일에 진액을 빼지 않고 탈진하지도 않게 됩니다. ⓒ최용우

 

 
 

31.다시 태어남

 

어떤 사람이 얘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병원에 실려와 하얀 천을 쓰고 침상에 누워서 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애통해 하면서 장례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차가 충돌하는 순간 심한 충격으로 몸의 생물학적 기능이 정지되었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흔한 일은 아닌데,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장례준비를 하던 가족들은 부랴부랴 취소를 하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음을 알립니다. 장례식장에 오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갑자기 다시 살게된 새 생명에 대한 축하의 발걸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입니까!


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의 삶... 그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삶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며 살까요?
그리스도인은 어둠 가운데서 죽어 버렸다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새 생명을 얻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거듭남, 중생이라고 합니다. 다시 사는 제2의 인생입니다. 재창조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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