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매돌은 있으십니까? 살전5:19
*원제목 : 성령을 소멸치 말며
◑서론 : 역사상 커졌던 교회는 다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올해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5백주년 되는 해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로마 천주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교회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교회의 원형은 우리가 늘 꿈꾸고 이상으로 삼고 있는 초대교회였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으로 거듭나서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했던 교회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끊고
카타콤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신앙의 저력
그것이 있었던 교회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불에 태워져 죽고
맹수에 밥이 되어 죽고 하면서도 신앙 지키기를 기뻐했던 교회가
로마 교회의 원형이었습니다.
▲핍박 앞에서는 순수하고 강했던 교회가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공인을 받으면서부터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국교가 되고, 교회의 권위가 교회의 부가
국가와 왕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중교개혁자들이 나왔습니다.
저들은 마치 로마제국으로부터 탄압을 받듯
교회로부터 탄압과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재판을 받고 죽기도 했습니다.
화형도 당했습니다.
로마 천주교의 탄압과 핍박속에서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무리들, 거룩한 무리들,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개혁주의자들이었습니다.
개혁교회 였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의 탄압과 핍박을 이겨내고 승리하였듯이
개혁자들의 개혁교회들도 로마제국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로마천주교회의
핍박을 이겨내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승리 후 개혁교회는 즉 개신교는
로마천주교회를 앞서가리만큼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개혁교회들이 부흥하고 성장하면서부터
개혁교회들도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중세로마천주교회가 무너지는 패턴과 모습이 똑같았습니다.
경영학에 ‘성공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인자가 있는데, 일단 성공하면 그게 패망의 인자로 바뀐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로마천주교회도 성장했을 때 무너졌고
개신교 개혁교회도 그랬습니다.
불행하게도 한국 개신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불행하게도, 대형교회의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졌던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의 순수성과 본질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를 살리기 위하여
갱신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고, 이곳에 모여서
따로 예배드리며 거룩한 싸움을 시작한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설교부탁을 받고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까?
참 생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이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묵상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려고 애썼고
느껴지면 그 말씀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얼마전 이런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자신을 늘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그건 좋은데, 과연 물매돌은 있느냐 하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물매돌은 있으십니까?”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묻는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매돌은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다윗이십니까?
처음에는 다윗이었는데,
싸우면서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 자신도 혹 골리앗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걱정이 되어서 묻는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을 깎아내리고 분열시키려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만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싸울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시고 끝까지 지키고 싶어하는 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다윗의 물매돌 :
소망을 가장한 야망을 버려야.. 골리앗을 이깁니다
야망은 욕심입니다.
성경은 욕심을 죄의 뿌리로 보고,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야망과 욕심 때문에 빚어진 죄와
불의와 싸울 수 있겠습니까?
누가 다윗처럼 이미 골리앗이 되어버린 자들과 싸워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 다윗의 손에 골리앗을 물리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물매돌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욕심과 야망을 끝까지 포기하는 철저한 자기부인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소명과 야망은 너무 모습이 비슷해서
자신도 속을 때가 많습니다.
소명에서 시작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야망으로 변질됩니다.
저는 1982년도에 영락교회 부목사로 부임했습니다.
32세 어린 나이였습니다.
영락교회가 제게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기회의 교회였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영락교회는 모든 목사가 성경공부반을 하나씩 인도해야만 했습니다.
저도 제 성경공부반이 하나 있었습니다.
막내로 들어가서 제일 자그마한 중년3부 약 15명 모여서 공부하는 작은 반을 맡았습니다.
열심히 했더니, 늘기 시작했습니다.
늘어서 방을 바꾸고, 바꾸고, 몇 번 바꿨는데
(조금만 참고 들어주세요. 지금 자랑하고 있는 거거든요)
어느 날 제 성경공부반 복도 창문을 뜯었습니다.
사람들이 ‘야, 김동호 목사 성경공부반 창문 뜯었대’
복도에서 사람들이 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소문이 나는 바람에, 굉장히 어린 나이에 담임목사로 승동교회로 청빙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34세의 나이에 담임으로 갔는데
150명 정도 모이고 있었고, 싸워서 나워진 교회였고
입지 조건이 별로 좋지 않은 조건이었습니다.
친구들, 동기들, 선배들이 말렸습니다.
왜 그렇게 덤비냐? 이제 34살이
김목사 지금 영락교회에서 잘 나가고 있는데
여기서 한 몇 년 잘 있으면 큰 교회 담임으로 가겠구만
왜 이렇게 조그만 교회, 그것도 싸우는 교회를 가?
그럴 때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제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냐?
너는 안돼
나는 돼
나는 창문 뜯었거든!’
좋은 교회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든 교회, 남이 가서는 잘 안 되는 교회를 가고 싶었습니다.
가서 부흥시키면 ‘와 김동호 역시 다르네!’ 이 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이게 제 의식속에 있던 생각이 아니라
무의식에 있던 생각으로 나중에 제가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1984년 6월 첫 주일에 승동교회에 부임했습니다.
가자마자 한 것이 교회 배가운동 이었습니다.
연말까지 3백명 출석하자!
저는 일을 저지르고 몰아붙이는 것을 잘 합니다.
정신 없이 교인들을 몰아치며
저도 열심히 교인들 많이 모이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장로님들, 교인들이 기뻐했습니다.
‘젊은 목사 모셔오니까 저렇게 교회 살리겠다고, 부흥시키겠다고 새벽부터 저 난리다!’
온 교인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내버려만 두셨으면
3백명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 하는데, 하나님이 ‘왜 3백명이냐?’ 라고 제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조금 시비조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황했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셔야 되는데, 격려하셔야 되는데
잘한다고 응원하셔야 되는데, 목사가 와서 교회 부흥시키겠다고 하면 잘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새벽부터 저렇게 못마땅해서 저렇게 시비조로 저러실까?’
그런데 자꾸 ‘왜 3백 명이냐?’ ‘왜 3백 명이냐?’ 라고 물으셨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언제 너더러 교회 부흥시키라고 했냐?’
하나님이 제게 교회 부흥시키라는 소명을 주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내 야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랑하려고!
내가 뽐내려고!
으시대려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소명을 가장한 야망에 속았구나!’
비슷하지만 남들은 다 소명있는 열심있는 목사라고 속아주겠지만
심지어 나 자신도 스스로 속았지만
하나님은 안 속으셨어요. ‘그게 네 야망이지, 어디 소명이냐?’
▲이 소명의 가장한 야망에 한국교회가 속아넘어가면서부터 교회는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미워하면서 닮습니다.’
그 말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깨달아도, 조금만 방심하면
소명인줄 알았는데, 야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한다고 그랬는데
결국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자리 차지하려고 일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결국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골리앗을 이기지 못합니다.
왜요? 자기가 골리앗이 되었는데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여러분의 교회는, 지금 여러분의 공동체는 순수하십니까?
여러분의 공동체는 정직하십니까?
여러분의 공동체는 투명하십니까?
여러분의 공동체는 민주적이십니까?
늘 자신을 정비하고 되돌아보고 새로 무장을 고치고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선한 싸움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승리하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쟁에 나가 싸우려는 군인은, 먼저 전장에 나가 적과 싸우기 전에
먼저 자신과 싸웁니다.
피나는 훈련이 그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을 처절하게 하지 않는 군인은
전쟁에 나가면 백전백패 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그동안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그리고 너무 분주하고 바빠서
싸움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에
훈련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전쟁에 임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니십니까?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송하지만) 상대방과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 두 번째 다윗의 물매돌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욕심없는 깨끗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과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지막 말이 중요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이건 참 어려웠습니다. 싸워본 사람은 압니다.
선으로 악을 싸운다는 일은, 싸우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냥 앉아서 들을 때는 근사한 말인데, 막상 싸워보면
‘그냥 지라는 말이구나, 망신 당하라는 말이구나, 패배하라는 말이구나’
어떻게 선으로 악을 이깁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리앗과 싸워이길 다윗의 물매돌은 “선”입니다.
하나님의 선, 정의입니다.
저는 그것을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욕심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악과 싸우는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힘을 덧입으면
그것도 가능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까닭도,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을 힘입었기 때문이고
초대교회 교인들이 욕심을 버리고 모든 소유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까닭도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성령의 능력은 많은데, 가장 큰 능력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을 긍정적인 어법으로 바꾸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너희들도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보는 일은 굉장한 능력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 여러분, 세상 나라에 대한 욕심이 사라집니다.
▲저희 막내가 지금은 결혼해서 애가 둘을 두었습니다.
그 막내가 3살 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아빠 백 원!’이란 말을 곧잘 했습니다.
그 돈을 받아서 수퍼에 가서 사탕도 사고, 껌고 사고 했습니다.
하루는 제 주머니에 백 원짜리가 없고, 오백원 동전이 있어서
오백원 동전을 막내에게 주었습니다.
막내가 갸우뚱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제가 살짝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막내는, 오백원 동전을 내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백원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백원, 백원!’
오백원의 가치를 아는 아이에게
오백원과 백원을 놓고 둘 중 하나를 가지라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백원을 포기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 세상 나라에 대한 욕심은
노력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에,
“못 보면 못 버립니다!”
욕심은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도 백원에 욕심 안 가집니다.
백원보다 더 큰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백원짜리 세상에 욕심부리고 그것 때문에 추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남은, 능력입니다.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과 싸울 수 있는 힘은
성령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다’
▲다윗의 두번째 물매돌은
‘성령으로 거듭남’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욕심을 이기니까 그것은 강력한 힘이 되고, 파워가 되고, 능력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다윗의 물매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눅11:1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장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면 주시리라’의 또다른 버전입니다.
하나 첨가된 것은 ‘성령을 주시리라’
모든 것을 다 주시지만,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받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령은, 받기는 받는데,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성령은 잘 소멸됩니다.
성령이 불완전해서 성령이 잘 소멸되는 게 아니라
우리 질그릇의 불완전함 때문에 성령은 잘 소멸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서도
교회 문을 나서면 절반 소멸되고요
집에 가서 조금 지나면 거의 없어지고
다음 주일이 되면, 거의 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낡은 부대 같으면
새포도주가 줄줄 샙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세워진 교회인데, 이럴 수는 없지..
그의 나라와 그 의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애를 쓰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때 그 의로운 마음과 순수함이 아직도 계속 유지되고 있으십니까?
수 년이 지나면서 소멸되지는 않았을까요?
여러분, 지치지 않으셨습니까? 힘이 나십니까?
▲성도는 무장이 되어야 됩니다.
세상의 무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전략을 세워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싸움을 하십시오.
그런데 전쟁에 나간 군인은 보급을 잘 받아야 합니다.
잘 먹어야 됩니다. 잘 쉬어야 됩니다.
충전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싸움을 끝까지 하려면, 이 공동체 예배에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주일에 올 때마다,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힘도 들지만, 은혜가 더 많아’
‘싸우는 게 옳아서 또는 습관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주일날 여기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은혜가 더 많아’
저희 높은뜻 교회는 처음에 숭의대학교에서 시작하다가
학교에서 나가라고 통보했습니다.
저희는 예배당 지을 돈이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탈북자 재단 세워지고 사회적 취약 계층,
집 지어주고 하는 일에 쓰기로 약속했는데, 약속만 바꾸면 교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우리교회가 2백억 있었는데, 그 중에 단 돈 십원도 우리 예배당을 짓는데는 쓰지 않는다
사탄은 ‘길바닥에서 예배드려볼 거야?’
그러지 뭐, 길바닥에서 예배드리면 재밋겠네
교인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때 3천명 정도 모일 때인데
광고했습니다.
‘정 해결 안 되면 길바닥에서 예배드릴 것입니다.’
결국 숭의학교에서 나왔습니다.
교회를 4개로 나누어 잘 수습했습니다.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쫓겨나면 ‘광야교회’로 가겠다는 각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겁낼 것 없습니다. 끝까지 싸울 힘이 있다면
사실은 광야면 어떻습니까?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사실은 모였을 때, 여기서 모이든 저기서 모이든
길에서 모이든지 여러분, 초대교회의 힘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카타콤에 모이는데, 세상의 궁궐보다 여기가 좋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거기는 은혜가 있었고,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게 없으면 여러분은, 싸움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싸워야 하는 명분만 있지
무장이 점점 빠져나가면 안 됩니다. 싸움에서 못 이깁니다.
그래서 예수 죽어라고 잘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뭐로 승부거실 겁니까?
돈으로 안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으로 이겨야 됩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는거야
이게 참 교회야!
그거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기 있는 분들도 천국에 가야 됩니다만
저기 화려하고 모든게 편리하고 넉넉하고 좋지만
옹색하고 그렇지만
‘여기에 은혜가 더 많아,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야’
이걸 여러분이 만들어내야 됩니다.
슬슬 지쳐서 슬금슬금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위기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소멸하면 자멸합니다.
여러분, 지금 싸워서 패배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자멸하는 걸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약하고,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때(시류)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면이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여러분,
다른 교회와 다른 분별력, 변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저기는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 믿는다’
이런 새로운, 교회의 원형,
사랑의 교회의 원형!
하나님이 옥목사님을 통해서 여러분께 가르쳐주시려고 했던 그 원형!
그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의 무기가 될 줄 믿습니다.
▲늘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늘 말씀과 기도로 보충해야만 합니다.
‘예언을 멸시치 말며’
여기서 예언은 앞날을 예언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러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듣기 힘들어도 순종해라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해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주십시오.
예수 믿는 기쁨을 주십시오. 은혜 충만함을 주십시오.
순수함을 회복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세상에서 지치고 힘들다가도
이 공동체 마당 기도회에 오면
세상 살아갈 힘을 얻게 해 주십시오.
자식들에게도, 예수는 이렇게 믿는거야
사람은 이렇게 사는 거야!
그걸 몸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3. 다윗의 세 번째 물매돌 : 선으로 악을 이김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악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악과 싸우다 보면, 악에 받칩니다.
악을 악으로 이기려고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악은 악으로 싸울 수 없습니다.
절대로 악으로 악을 이기는 법은 없습니다.
악은 선으로만 이기는 것입니다.
악은 선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선은 신spirit이지만, 또한 신바람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으면, 신이 납니다.
여러분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배는 신이 나야 합니다.
이 공동체로 모이면 신이 나야 합니다.
신이 안 나면 기가 빠지고..
성령이 약화되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기를 살리십시오.
우리의 무기는 세상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그 능력입니다.
기쁨입니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 나서니까 사울이 자기 칼을 주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그 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이 보기에는 우스워 보였겠지만
하나님의 물매돌을 챙겨서 들고 나갔습니다.
그것으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신 선한 싸움,
교회다운 교회, 들어오면 교인들이 은혜 받는 교회!
하나님의 사람 되어지는 교회!
옥목사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고, 세우고 싶어하셨던 교회!
이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밤나무 베어질 수 있죠, 상수리나무도 베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루터기는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거기서 새싹이 나옵니다.
여러분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올 때는 삐져서 나옵니다.
그게 결국은 또 나무가 됩니다.
여러분 그걸 내다보셔야 돼요.
그런데 그것마저 죽으면 큰일입니다.
우선 여러분이 정통성, 하나님의 진짜 교회다운 교회!
그 순수성의 정통성을 이어나가는, 그 일에 더 열심내실 수 있는
우리 공동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자멸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무장하세요.
그리고 욕심 없는 마음으로 욕심과 싸우세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싸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가 나중에 교회가 되든, 공동체로 이어가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구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원형,
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과도 피나게 싸울 수 있는
갱신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명인 명설교편◑ > 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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