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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말씀이 눈과 귀에서 멀어지면 위험하다 잠6:20~24

by 【고동엽】 2013. 6. 28.

말씀이 눈과 귀에서 멀어지면 위험하다            잠6:20~24               

잠6:20~24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참 중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잊지 않고

가까이하려고 문설주에 써 붙였어요.

 

그래서 집에 들어가면서도 보고 나오면서도 보게

늘 눈에 띄게

그래서 옷깃에도 적어놔서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그것을 보고

손목에도 차고 다니고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이

눈과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그러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특히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그걸 자랑하다가

그러다가 교만해졌다가

 

그래서 그것이 위선으로

자랑하기 위한 것이 되니깐 위선이 되었고요.

 

위선이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얻는 유익들

축복들을 다 쏟아버리게 되었지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말씀을 가까이하고 써 붙인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너무 자랑하고

자기 의로 삼았던 것이 문제지

 

저는, 문지방에도 써 붙이고

옷깃에도 써 붙이고 했던 그 일은

절대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가

성경 구절 하나라도 더 기억하게 하려고

헌 달력에다가

성경 구절 한 절씩을 써서

 

한 일주일 간격으로

자녀들이 밥 먹으려면

"그거 읽고, 기도하고 나서 밥 먹어라!" 그렇게 교육했어요.

 

아이들이 엄마가 시키니까 그냥 읽고

기도하고 밥 먹다가

며칠 지나면 그게 다 외워지잖아요.

 

짧은 구절이니까

그냥 보지도 않고 "와와와와와 아멘"이러더라고요.

 

그때는 '아이들이 뜻도 모르고

장난스럽게 성경을 외운 것이

무슨 신앙의, 또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생겼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뜻도 모르는 것 같이 외운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능력을 갖고 있는가를

제가 깨닫게 되었어요.

 

어느 날 우리 막내 아이가

어디서 담배 모양으로 된 껌을 들고 와서

엄마에게 장난을 쳤어요.

 

엄마 앞에서 담배 피우는 시늉을 했어요. 

그러니까 아내가 놀래서, 때려주려고 빗자루 들고

이렇게 매를 들고 아이를 혼내려 하니까

"엄마, 껌이야 껌!"하면서 껍질을 벗기면서 씹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엄마에게 매 맞지 않게 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때 우리 둘째가, 중학교 때였던가

둘째가 쇼파에 누워서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2

 

그랬는데 결국 딱 상황이 맞았죠.

저는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게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거기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인데

 

우리 둘째가 그 말씀 외울 때는 틀림없이

별 생각없이 그냥 외웠어요.

 

그리고 잊어버렸어요.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무의식적인 세계, 창고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상황이 딱 부딪히니까

그 말씀의 뜻을 그때 깨달아서

'아 이게 그런 뜻이구나' 깨달아서

 

그 순간에 말해서 시의적절하게 말씀을 인용해서

결국 동생을 매 맞게 했잖아요.

 

제가 생각했어요. '야 하나님의 말씀이 참 무서운 거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힘과 능력이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옛날 할머니들, 어른들

그런 말씀 많이 하시는 걸 들었어요

 

"김 목사, 내 나이 돼 봐

이쪽 귀로 듣고 저쪽 귀로 다 잊어버려"

 

이건 어른들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젊은이들도 이쪽 귀로 듣고 이쪽 귀로 잊어버리죠.

 

잊어버리는 건 둘째치고

뜻도 모르고 외운 말씀도

이렇게 힘이 있는데요..

 

그런데 그게 잊어버리는 게 아니에요.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이에요.

말씀 자체가 살아있어요.

 

우리가 잊어버린 것 뿐이지

말씀자체가 살아있어요.

그래서 그 말씀이 필요할 때 그 말씀이 탁 떠오르는 거에요.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지키고

우리의 삶의 길을 비춰주시고

인도해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 잠언의 말씀에

'어미의 법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네 목에 메라'  6:20~21

'말씀을 가까이 하라' 그 뜻이겠죠.

 

'그리하면 그 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남자 포함)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24

 

그런 받았던 은혜들

기억했든 잊어버렸든

말씀들이 너를 지킬 거야..

 

그렇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을 지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옛날에 '의식화 교육' 

그런 말이 참 많았죠.

 

사람을 의식화 교육시키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인 줄 알았어요.

 

근데 사실은 의식화 교육보다

더 무서운 교육이 있어요, 여러분!

 

그것은 '무의식화 교육'이에요.

 

의식보다 무서운 건 무의식이에요.

무의식은 잠재 되어 있는 것이거든요.

이게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지 몰라요.

 

우리 무의식이라고 하는 이 큰 창고에

은혜, 말씀을 자꾸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은요

 

그것들이 큰 바다와 같이 돼서요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키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우리의 삶을 비추고

우리의 삶의 축복이 되는 거예요.

 

운동 선수들이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서 훈련합니다.

'그 행동을 근육이 기억하게 한다' 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야구도 하고 뭐 골프도 하고

탁구 테니스도 하고 그러는데요

 

근육이 기억할 만큼

무한 연습과 반복을 통해서

그것이 어느 때는 무의식적인 반사작용으로 튀어나와서

본인의 실력으로 나타나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와 같은 끊임없는, 습관적인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한 거에요

무의식에 저장이 되어야 돼요.

 

여러분, 은혜 받아도요

어느 분이 제 페이스 북에서 그렇게 썼더라고요..

 

오늘 아침에 분명히 은혜를 받았는데

저녁이 되니깐 '어, 그게 무슨 말씀이었지?'

당황스럽더라고...

 

분명히 아침에 은혜를 받았는데

오후가 되니까

그때 내가 무슨 말씀에 은혜를 받았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었지?

 

잊어버리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 그게 건강한 거에요.

하나도 이상한 거 아니에요.

당연한 거에요!

 

그런데 기억은 잊었을지라도

우리의 무의식적인 영적인 근육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이 꼭 필요할 때는요

그 말씀이 살아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지..' 하지 않는데도

내 의식과 관계없이

그 말씀이 내 삶을 인도하고 지배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 받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은혜받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실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얼마 전에도 

습관적인 신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하는 얘기를 했었죠.

 

우리가 흔히 쉽게 '습관적인 신앙'

'습관적인 신앙'

그것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러 나가실 때

'습관을 좇아'

새벽에 나가서 기도하셨다 그런 표현도 있잖아요. 눅22:39

 

여러분 끊임없는 반복이 습관이 되고요.

그 습관화된 신앙이

우리의 영적인 근육 속에, 무의식 속에

잠재돼서, 기억이 돼서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키고

그 말씀이 우리를 축복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의 길을 비추게 된다는 것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만큼이나 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저는 찬송이 큰 힘이 되더라고요.

 

찬송은 이제 곡조도 중요하지만

저는 가사가 찬송은 대개 가사에 은혜를 받잖아요.

 

왜냐하면 그 작사한 작사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얻은 간증들

그것을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간증과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받지요.

 

그런데 이 찬송으로 받았던 은혜들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몰라요.

 

제가 항암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가장 힘들었을 때

산길을 걸으며 조금 운동하며 이럴 때요

가다보면 갑자기 뜬금없이 찬송가가 터져나올 때가 있어요.

 

예를 테면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뭐 이런 찬송들이에요. 그런 말씀..

 

또는 '평화 평화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이런 가사들이 뜬금없이 툭 터져나와요

 

그럼 하루 종일 고장 난 레코드처럼

그 구절만 '평화 평화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이런 찬송들이 그냥 툭툭 나오면요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사랑하는 우리 가족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읽고

또 암송하고 은혜받고

찬송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노인들이 되었을 때 제일 위험한 게

넘어지는 거라 그러더라고요.

 

특히 이제 욕실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이제 고관절을 다쳐서 누우면

굉장히 위험해요.

노인들은요 금방 근육이 빠져나간다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걷지 못하면 아주 위험해져요.

근육은 금방 빠져나간데요.

 

제가 생각하면서 영적인 근육도 마찬가지예요.

조금만 게으르면은요

영적 근육이 다 빠져서.. 신앙의 걸을 수 없게 만들어요.

 

우리의 바른 삶을 걷지 못하게 해요.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키지 못해요.

 

그래서 늘 아침마다 날기새 하고

찬송 부르고 은혜받고

주일날 가서 예배하고

목사님 설교에 은혜받고 아멘하고

 

그래서 무의식이라고 하는 우리의 신앙의 인생의 창고에다가

은혜 말씀 찬송을 가득가득 채워서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예수님도 은혜받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다 이기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번 오늘 말씀 읽고 말씀을 마치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잠6: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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